죽은 영혼의 저주

시리즈 구스범스 8 | R.L. 스타인 | 그림 나오미양 | 옮김 노은정
연령 9세 이상 | 출판사 고릴라박스 | 출간일 2015년 1월 2일 | 정가 9,000원

 

저희 초등 6학년 딸아이가 요즘 재밌게 읽고 있는 책.

저도 웬만해서 아이들이 보는 책은 다 좋아라하는데.. 딱 무서운 이야기책은 

쳐다도 보기 싫거든요. 그런데 비룡소 구스범스 시리즈에 꽂힌 저희 딸아이 성화에

못 이겨 저도 함 읽어 봤어요. 책 표지부터 영화 배트맨에 나오는 악당 조커 같은 

무서운 그림이 썩 내키진 않았지만 일단 아이가 재밌다고 하니깐

두 눈 질끈 감고 읽기 시작했죠. 구스범스 여덟번째 이야기 <저주 받은 학예회>

전 세계적으로「해리 포터」시리즈 다음으로 가장 많이 팔린

어린이책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이유를 알 거 같아요.

저처럼 표지만 보고 지레 겁 먹을 필요가 전혀 없어요. 

 

작가 스스로 본인 직업을 어린이에게 오싹함을 선물하는 거라 자신하잖아요.

바로 전 세계 32개국 어린이들을 열광시킨 그 오싹한 즐거움으로.. 드루와 드루와~

오즈밀 초등학교 연극반 친구들의 학예회로 여러분을 초대해요. 

 

숙제가 없는 주말이면 공포 영화 세 편을

연달아 보는 강심장에, 보통 또래 여자애들이 좋아하는 거나

평상시 노는 게 좀 유별난 십대 소녀 비키. 그의 오랜 단짝 친구 지크랑은 

서로에 대해서 모르는 게 별로 없는 친한 사이죠. 둘은 지난해 학예회 뮤지컬에서

단역을 맡았다가 올해 연극에도 출연하기로 마음먹어요. 오늘이 그 연극의 출연자

명단이 발표되는 날, 남 골탕먹이기 좋아하는 지크의 장난이 또 발동. 

꼭 이런 결정적인 순간을 그냥 조용히 넘어갈 지크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이없게 속을 비키도 아니네요. 암튼 두 사람은 나란히 극 중 제일 중요한

배역을 맡게 되는데요. 그 기쁨도 잠시 연극 연습을 하기 위해 모인

강당에서 학교에 떠도는 무시무시한 소문을 듣게 돼요.

 

여느 학교마다 있을 법한 무서운 학교 유령 이야기라 흘려듣기에는

그 소문의 진상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우연히 학교 도서관 지하실에서

발견된「유령」이란 대본에 수수께끼에 싸인 유령의 저주가..

 

이때도 어김없이 몸이 근질근질한 지크의 장난에 심장이 쿵!

심장을 쥐었다 폈다~ 각 장마다 이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 전개가 긴장의 연속이네요.  

아이들은 심란한 분위기에서 각자 대본을 받아들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는데요.

연극 내용이 어디에서 본 듯한 이야기. 알고보니 작가가 유명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패러디한 거였네요. 오래된 극장 지하에 가면을 쓴 유령하며 

운명처럼 여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 절묘하게 들어 맞아요.

비키는 여주인공답게 의상을 갖춰 입고 무대에서 연기하는 모습을 상상해요. 

같은 배역을 맡은 티나역시 입술만 달싹이며 비키의 대사를 읽고 있는 게 신경쓰여요. 

그리고 이번 공연에서 유령이 솟아 나오거나 사라질 수 있게 하는

특별한 무대장치도 여간 불안한 게 아니고요.

 

선생님이 직접 안전 점검이 끝날 때까지는 접근 말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돌아간 텅 빈 강당에 남아 이동무대 아래.. 구멍속으로 들어가보는 비키와 지크.

이상하게도 자꾸만 밑으로 밑으로 내려가고 점점 속도도 빨라지는데요.

 

학교 지하실보다 휠씬 더 깊은 곳까지 내려온 불길한 느낌. 

아무리 겉으로 용감한 척, 온갖 센 척을 다해도 영영 이곳 지하실에 갇혀 버릴까

불안한 속마음은 감출 수 없어요. 아니라 다를까 이 때, 아이들 곁으로 다가오는 거친 숨소리.

두 번 다신 이 페이지를 넘겨보고 싶은 않을 정도로 소름 돋는 유령과 맞닥뜨려요. 

전 책 표지보다 더 고약하고 무서운 인상에 이대로 유령의 실체가 밝혀지는 줄 알았죠. 

하지만 그 뒤로도 여러번 ‘내 집에 얼씬 거리면 가만 두지 않겠다’라는 경고성 메시지는

오히려 유령놀이에  빠진 아이들 장난으로 덮어 씌워요. 나중에는 누가 진짜 유령인지,

누가 가짜 유령 노릇을 하는 건지 의심 가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에요. 

학교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험상궂은 야간 경비원도 그렇고 

지나치게 비키를 라이벌로 견제하는 티나도 그렇고 

며칠 후 새로 전학 온 남학생까지.. 

 

드디어 무대의 막이 오르고 안개 속에서 서퍼런 가면을 쓴 유령이 나타나자

천연덕스럽게 연기인 척, 주어진 연극 대사가 아닌 죽어서 이 날 만을 기다린 진짜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그 때 그 자리에, 유령의 저주로 사라진 죽은 영혼이 

다시 유령이 되어 무대에 함께 서 있는 거죠. 오랜만에 머리카락이 주뼛주뼛 

날선 오싹한 기분에 몸서리 실컷 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