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마지막 이벤트

시리즈 일공일삼 시리즈 62 | 유은실 | 그림 강경수
연령 10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5년 3월 30일 | 정가 13,000원
구매하기
마지막 이벤트 (보기) 판매가 11,700 (정가 13,000원) 장바구니 바로구매
(10%↓ + 3%P + 2%P)
구매

 

열 세살 아이의 눈으로 본 할아버지의 죽음과 낯선 장례식 풍경.

바쁜 맞벌이 엄마, 아빠보다 할아버지랑 더 살가운 할아버지와 손자이기에 

죽음을 맞는 할아버지와의 이별이 꿈같고 동화같고 슬픈 드라마같은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 같아요. 아이들이 어려서 참 감당하기 힘든 이야기일테지만 언젠가는 

이별의 아픔도 슬픔의 무게를 온전히 견뎌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죠. 다만 그 시간이

더디게 더디게 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애들은 제외 대상. 이 책은 아동문학에서 보기 드문

죽음과 장례식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사람이 나고 살면서 

죽음을 자연스럽게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요.

 

내년이면 중학생이 되는 영욱이는

아직도 할아버지랑 한 방 쓰는 게 좋아요. 할아버지의 얼룩덜룩한 검버섯도 좋고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타령같은 동요도 잠이 잘 와요. 엄마나 누나 눈에는 

이름도 무서운 ‘저승꽃’ 그대로 쳐다보면 밥맛이 뚝 떨어진다는데 영욱이는 달라도 넘 달라요.

오히려 할아버지 얼굴에 그려진 보물지도같기도 하고 진짜 보물을 찾아서

부자가 되는 상상도 하고요. 주름 진 할아버지 얼굴을 줄공책 삼아서 손가락으로 

토끼, 로켓, 공룡 그림도 마구 그려요. 보통 잠투성 심한 아이가 엄마 젖 찾는 거처럼

영욱이는 할아버지 검버섯 아니면 뭐가 허전하데요. 

그래서 요런 별난 취향때문에 억울하게도

변태라는 말도 듣는 모양이에요.

 

 정작 할아버지 본인도 끔찍히 싫어하는 검버섯을

유일하게 좋아하는 사람이 영욱이인 셈이죠. 올해 할아버지 연세가 일흔아홉에 

키가 177센티미터면 할아버지 말씀대로 노인정에서 인기가 많으실 듯.

게다가 컴퓨터에 관해서는 할아버지가 직접 할아버지 얼굴을 포토샵 할 정도로 수준급

 노인정 어르신들이 잘 모르시는 휴대폰도 친절하게 가르쳐 주시는 매너남이시니

당연히 인기가 많으시겠죠. 하지만 집에서는 인기고 뭐고 자식이 아버지를 닮았다는 소리에

버럭 인상부터 쓰는 그저 별 볼일 없는 사람쯤. 가족 중에서도 이 집의 실제 가장인 

영욱이 아버지가 제일 심해요. 그러니깐 영욱이네 증조할아버지한테 물려 받은

재산도 사업 실패로 빚만 지고 깡패 협박에 남은 빚은 자식 몫이 됐으니 

자식은 자식대로 부모를 원망하고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대로 

없는 사람처럼 참고 살아요.  

 

작년, 제 작년부터 할아버지는 입버릇처럼

‘이 나이가 죽기 딱 좋은 나이’라 하셨죠.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할아버지가 죽을까 봐 걱정이 됐었던 영욱이도 지금은 할아버지가 으레 그러려니

익숙한 할아버지 코 코는 소리같데요. 그건 영욱이뿐 아니라 가족 모두 ‘다’에게

할아버지는 양치기 소년이에요. 이번에는 진짜로 죽을 거 같다고

집합하라는 전화만 여러 번.

 

할아버지 휴대폰에 저장된 아빠랑 고모들, 거기에 딸린 식구들까지

가족 ’다’에게 전화하면 다들 여러 번 양치기 소년에게 당한 마을사람들처럼 원성만 자자해요.

할아버지가 자식들 보고 싶으니까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죠. 안그래도 인기없는 할아버지가

더 형편없는 사람이 되는 게 영욱이는 넘 싫어요.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양치기 소년의 결말은

진짜 늑대가 나타났을 때 아무도 한걸음에 달려와 주는 이가 하나 없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할아버지가 평소 모습과 많이 다르게 아프셨던 건 아니어서 영욱이도 잘 몰랐어요.

걸핏하면 하루 세 병 마시는 활명수도 영욱이가 말려서 한 명만 마셨는데 

진짜로 많이 아파서 꼼짝 할 힘도 없으셨어요. 혼자 양치질도 화장실도 갈 힘이 없어

영욱이가 부축해드리다 그만 중심 잃고 할아버지랑 같이 고꾸라질 뻔 했지요.

계속해서 온 몸을 적시는 땀이 흘러 내려요.

 

그 와중에도 할아버지는 무슨 대단한 이벤트라도 준비하신 듯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자식들을 기다리시는 거 같아요. 방 안에 할아버지가 몰래 감춰 둔

비밀 상자에 뭐가 들었는지 정말 말씀으로다 이벤트다 그러시는 게 아니라 

진짜 오래되고 소중한 보물 같은 걸 숨기셨는 지 아무도 몰라요. 이왕이면 고려시대 그릇이나

오백 년쯤 된 옛날 책 같은 거.. 그걸 사랑하는 손자 영욱이에게

전부 주겠다는 편지 같은 게 진짜 깜짝 이벤트죠^^

 

그러나 영욱이의 야무진 기대가 너~무 컸을까요? 

현실은 할아버지가 쓰던 빤스 상자나 물려 받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겠어요.

비싸봤자 생활용품 가게에서 오천원이면 살 수 있는 종이 상자가 뭐라고..

보통은 여러 개의 풍선이 달리고 조금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닌 할아버지가 말씀하시는 이벤트는

일상의 소소한 별별 일이 다 무늬만 이벤트라 불러요. 옛날에는 그마저도 자식들에게 언감생심

1년에 한 두번 있는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선물은 커녕 술 마시고 들어와 식구들 깨워놓고

잔소리 하기, 지금은 이혼한 할머니랑 싸우기, 재산 날리기가 할아버지의 메인 이벤트였다니 

제대로 헛다리 짚은 영욱이도 살짝 서운할 만도 하겠네요. 미련은 여전히 할아버지의

비밀 상자에 둔 채 영욱이와 단둘이 잠이 든 할아버지는 이대로 영욱이 곁을

영영 떠나고 말아요. 아침에 일어나 집 안 구석구석 다 찾아도

집엔 남은 사람은 영욱이 혼자였어요.

 저도 어려서 영욱이네와 같이 부모님 대신 

할머니 손에 자라 할머니에 대한 사랑이 애틋했는데요. 저희 할머니는 참빗으로

항상 단정히 머리 빗고 옥비녀하셨던 기억이 여전해요. 그리고 영욱이네 할아버지처럼

활명수 비슷한 박*스를 무슨 만병통치약으로 절대 손 못대게 하셨어요. 

제가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할머니가 90세 이듬해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 내내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던 기억이 있어요. 

 

잘난 효자도 못난 자식도 부모님 돌아가시면 모두가 못난 불효자죠.

그토록 할아버지를 미워했던 영욱이 아버지도 할아버지 영정 사진 앞에서는 눈물이 납니다.

영욱이가 그 모습을 보고 어리둥절해 하고요. 할아버지가 직접 포토샵 한 ‘잘생긴’ 

영정 사진 앞에서 웃다 울다 어린 영욱이 눈에 비친 낯선 장례식 풍경이 제단에 놓는 음식부터 

화환에 적힌 글씨 하나까지 세세하게 담아내죠. 혹 할아버지가 죽어서도

인기가 없을까 화환 하나 없는 텅 빈 복도가 참 쓸쓸하게 느껴져요. 괜시리 줄줄이 늘어선

옆 화환이 부럽기도 하고 인기란 게 죽어서도 티가 난다는 게 속상해요. 

그리고 내일 입관을 앞두고 가족 회의가 한창인데 드디어 할아버지의 비밀 상자가

열리는 순간, 모두가 보고도 믿을 수 없는 표정들이 단체 깜놀. 오랫동안 장례를 진행해 온

장례식 매니저조차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니 이벤트가 혼란과 충격 그 자체네요.

나중에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보다 할아버지가 준비한 이벤트가

더 충격적이어서 말들이 많아요.

 

할아버지 살아 생전에는 요상하게 할아버지 검버섯을 좋아한다고

손주 영욱이가 변태 소리 듣더니 할아버지 장례식 때는 죽은 할아버지가 변태 소리는 다 듣네요.

  만약에 영욱이가 생각하는 영혼 세계 입장권이 누군가에 의해 뒤바뀔 수 있다면 

할아버지의 소원은 물거품이 되는 거 아닌지 가슴이 두근거려요. 

 

영욱이는 할아버지의 소원을 지키는 정의의 사도처럼

한 발 한 발 떨리는 발걸음으로 입관실 안으로 들어가죠. 마지막으로 할아버지를

가까이에서 뵙는 꿈같은 순간이에요. 뭐 하나 놓칠세라 할아버지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봐요.

그 때, 할아버지 검버섯 사이로 아주 조그맣고 하얀 점 두 개랑 길고 검은 점 하나가

움직여요. 어! 바람결에 흔들리는 하얀 쪽배를 타고 어디로 어디론가 흘러가는 토끼! 

어른들 눈에는 어린 애가 놀라 헛것이 다 보인다고 걱정하지만 영욱이는 할아버지가

죽어서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어요. 모든 비밀은 영욱이와 할아버지만 아니까요. 

이 책은 저뿐만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오래전 기억을 더듬어 조금씩 잊혀졌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나고 그리워지는

가족드라마같은 이야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