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룡소 블루픽션78] 굿바이 조선 – 러시아탐사대와 걸어서 경성까지..

시리즈 블루픽션 78 | 김소연
연령 13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5년 6월 5일 | 정가 11,000원

 

비룡소 블루픽션78 굿바이 조선

김소연 지음

비룡소 펴냄

풍전등화 처지에 놓인 국운, 그러나 그러한 것은 전혀 감지하지 못한 채 게으르고 안이하게 세월을 보내는 백성들, 태풍처럼 휘몰아치는 국제 정세는커녕 나라 안의 정치적 변화조차 알아채지 못하고 그저 당에 엎드려 농사만 짓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코레야 백성들은 말 그래도 겨울 호수에 떠 있는 하얀 백조다. 아름답지만 무기력하고 조용하지만 슬퍼보이는 철새의 운명이 곧 코레야의 운명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 p. 25

아이가 한국사를 접하게 되면서부터 나도 같이 한국사 공부를 하게 되었다. 학창 시절에 그저 외우기만 했던 1592년 임진왜란과 1910년에 시작된 일제 강점기라는 역사가 이제는 처절한 아픔으로 느껴진다. 이밖에도 외침이 있었지만, 7년 간의 왜란과 30년이 넘는 일제 강점기는 당시의 상황이 너무도 실감나게 그려진다. 소중한 문화재가 파손되고 무고한 백성들이 희생되고 국토는 초토화 되었고, 백성들이 억압당하고 말과 글을 빼았겼으며 강제 징용과 위안부로 끌려가는 등… 말로 할 수 없는 아픔을 겪었다. 최근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징비록>과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독립군 이야기를 담은 영화 <암살>을 보면서 우리에겐 아픈 역사가 너무나 많았다는 것이 새삼 느껴지기도 했다.

이 소설은 같은 상황을 조금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았다. 구한말 열강들의 이권 다툼의 장이 되었던 대한제국의 처지를 낯선 러시아인의 눈으로 바라본 것이다. 작가는 이것을 ‘낯선 이방인의 눈으로 본 조선 기행’, ‘슬픈 타자화의 경험’이라고 했고, 그렇게 이 소설의 창작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러일 전쟁이 한창인 즈음.. 우여곡절 끝에 러시아의 조선 탐사단으로 길을 떠나게 되는 대원들이 있다. 스물 다섯의 젊은 러시아 청년 알렉세이와 백전노장인 비빅, 조선인이지만 러시아로 귀화한 니콜라이, 그리고 조선의 소년 근석. ‘조선 탐사’라는 명분 아래 떠나는 길 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네 명의 대원들은, 여정 가운데 각자 세상에 눈을 뜨기도 하고, 서로 진한 동지애를 느끼기도 하고, 조국의 아픈 현실에서 겪었던 절망적인 상처가 치유되기도 한다. 알렉세이의 눈에 비친 근석이의 모습은, 그가 알고 있던 하얀 백조와도 같은 순진하고 조용한 조선인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놓는다. 노름에 빠져 가진 돈을 늘 탕진했던 아비와는 달리, 근면하고 자기주도적이며 진취적인 성향을 가진 근석에게서 조선의 희망을 본다.

“대장님(알렉세이)께 삼가 여쭙겠습니다. 아라사(러시아) 군대가 언제 즈음 왜적을 몰아내 주시겠습니까?”

“작년부터 시작된 아라사와 일본의 전투가 영 심상치 않게 돌아가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아라사처럼 강성한 대국이 어찌 왜처럼 보잘 것 없는 섬나라 하나 어쩌질 못하고 절절매는지 궁금해서요.” – p. 87

여행 중 탐사대가 만난 어느 서리(귀족)의 말은, 열강들에게 시달림을 받아 지친 민족의 주체성 없는 생각을 여실히 드러내 준다. 수치심이라는 것은 전혀 모르고 어떤 상황에서든지 자신의 안위와 이권만 챙기면 된다고 여기는 한심의 귀족들의 모습. 왜적을 그렇게 보잘 것 없이 여긴다면 왜 그들을 물리치지 못한단 말인가. ‘제 땅에 들어온 도둑을 남보고 쫓아달라’는 격인 이 상황은 임진왜란 때도 마찬가지였다. 명나라는 그리 떠받들고 왜는 무시했던 안일함이 전쟁을 불러왔고, 왕은 파천을 하였고 제 힘으로 물리칠 생각보다는 명의 군사적 지원에 더 의지하지 않았나. 하지만 여행 중에 만난 의병부대는 달랐다.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의병 부대는 나라를 지켜내자는 뜻을 이루고자 목숨을 내놓고 싸운다.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탐사대는 이들의 뜻에 힘을 보태게 된다. 근석이도, 니콜라이도.. 이들이 여정 끝에 다다르게 되었을 때, 탐사대원들은 여정이 이끌어준 깨달음과 생각을 바탕으로 각자 새로운 여행을 준비하게 된다.

아픈 역사는.. 힘들지만 기억해야한다. 잊지 말아야한다. 최근 보았던 영화 <암살>과 더불어 이 소설 <굿바이 조선>은 어찌 보면 한번 쯤 얘기하고 싶었던, 잊지 말아야 한다는 작가(감독)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인물의 심리와 배경을 잘 담아 낸 묘사를 통해 당시의 상황이 실감나게 그려졌고, ‘시궁쥐’, ‘겨끔내기’, ‘개머리판’ 등 순 우리말이나 익숙치 않은 어휘들을 통해 토속적인 정취와 작가 특유의 당차고 유머러스한 전개에 흥미진진하게 빨려들어갈 만큼 이야기의 힘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