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심리 여행: "나는 나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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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도 아닌데 요즘 저는 꽃을 노래하는 그림책에 푹 빠져 있습니다. ‘꽃’은 아름다움의 대명사이고 사람의 눈과 코를 즐겁게 해 주는 귀한 선물이라 계절과 상관없이 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누구나 꽃 선물을 좋아하고 꽃말을 기억하며 의미 부여를 하지요. 기쁜 일이 있을 때 우리는 꽃으로 축하의 마음을 전하고 슬픈 일이 있을 때도 꽃이 그 자리에 놓입니다. 어쩌면 꽃은 우리의 삶과 가장 가까이, 늘 함께 있는 식물이 아닐까 합니다.
최근 몇 달 동안 제게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는데 대부분 좋지 않은 일입니다. 지치고 힘든 순간에 제 마음을 다잡아 준 꽃 그림책을 만난 것에 무척 고마워하는 요즘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게 살라는 메시지를 제게 준 두 권의 꽃 그림책. 그 감동과 깨달음을 엄마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부모 교육을 강의하는 곳마다 챙겨 가서 보여 주고 치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연구소에서 함께 상담을 하는 선생님들한테도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독서 치료 프로그램에서 활용해 볼 것을 권하고 그 반응을 공유합니다. 아무리 제게 큰 감동을 준 그림책이라 해도 그 감상이 주관적이어서는 안 되니까 다양한 연령대를 가진 이들에게 보여주고 치유 효과를 검증해 보는 것이지요.
단풍과 낙엽이 먼저 생각나는 계절이지만 시간을 거슬러 봄을 느끼듯 아이와 함께 꽃 그림책을 보며 마음을 나누어 보시기 바랍니다. 두 권의 꽃 그림책이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어떻게 상호 작용을 하면 좋은지 알아보고 나아가 아이도 엄마도 “나는 나야, 나는 언제 어디서나 나를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는 당당함을 가져 보세요.

어떤 환경에서도 본 모습을 잃지 않는 ‘자기다움’에 관하여
『민들레는 민들레』(이야기꽃)를 보고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이 책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크게 다가왔습니다. 상담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그림책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직업 때문에 그림책 해석을 자꾸 심리 상담과 연결시키는 게 습관이 되어서일 수도 있지만요. 새삼스레 상담의 본질이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임을 다시금 새겨 봅니다.
‘아름답다’란 말의 정의를 국어사전은 “보이는 대상이나 음향, 목소리 따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눈과 귀에 즐거움과 만족을 줄 만하다.”, “하는 일이나 마음씨 따위가 훌륭하고 갸륵한 데가 있다.”로 풀이합니다. 그리고 심리 상담에서는 여기에 ‘자기답다’를 하나 더 추가합니다. 결국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이란 자기다움을 뜻하는 것이지요.
이 그림책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민들레는 민들레 싹이 터도 민들레 잎이 나도 민들레 꽃줄기가 쏘옥 올라와도 민들레는 민들레”라고요. 여기까지는 평범하지만 다음 페이지부터는 통찰의 요소인 ‘아하 반응’으로 독자를 이끕니다.
이 그림책은 민들레가 자라는 곳을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여 보여 줍니다. 그런데 텍스트는 고작 “여기서도 민들레 저기서도 민들레 이런 곳에서도 민들레 민들레는 민들레”가 전부입니다. 하지만 간결한 텍스트가 오히려 독자들을 그림에 몰입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와 저기, 이런 곳은 어디일까요? 가로수 아래, 낡은 기와지붕 위, 자동차 전용도로 중앙 분리대 틈새이지요. 이처럼 민들레는 흙먼지가 조금만 쌓인 곳이면 어떤 척박한 곳이라 해도 싹을 틔우고 잎을 내고 노란 꽃을 피웁니다.
그리고 민들레는 혼자여도 민들레이고 둘이어도 민들레이고 들판 가득 피어나도 민들레이고, 꽃이 져도 민들레이고 씨가 맺혀도 민들레이고 휘익 바람 불어 하늘하늘 날아가도 민들레는 민들레라고 합니다. 마치 민들레의 굳건한 다짐처럼 들립니다. 어디서든 나는 민들레이고, 어딜 가든 노란 꽃을 피울 것이고 언제까지나 민들레로 살아남을 거라고. 민들레는 자신을 무척 사랑하고 자신의 삶에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일 때도 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 때도 있습니다. 혼자라고 해서 외로워하거나 소외당했다 생각하지 말고 그 시간을 마음껏 즐기고, 여럿이 있을 때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조화롭게 행동하되 자기다움을 잃지 말아야겠지요. 꽃이 져서 다른 사람들 눈에 잠깐은 초라해 보일 수 있지만 결코 자신을 초라하게 느끼지 않고 또 다른 의미를 찾아 준비하는 민들레처럼 우리 모두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씨가 맺혀서 무겁지만 그 순간을 잘 이겨 내고 휘익 바람 불어 어디든 하늘하늘 날아다니는 자유를 만끽하고 그렇게 정착한 곳이 어디든 환경을 탓하지 않고 또 다시 뿌리를 내리는 민들레. 그래서 사람들은 강한 생명력 하면 민들레를 가장 먼저 떠올립니다.

꽃에 의미를 부여하며 대화해 보세요
아이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읽어 주는 방법을 권합니다. 동시처럼 글에 운율감이 있어서 읽는 즐거움이 있답니다. 몇 번 반복해서 읽어 주고 나면 엄마도, 아이도 어느새 외워 하루 종일 자기도 모르게 “민들레는 민들레” 하고 중얼거리게 되지요.
그다음 아이에게 민들레를 어떤 꽃으로 생각하는지 한 번 물어보세요. 아직까지 인생 경험이 많지 않아서 어른들처럼 인생에 빗대어 민들레를 얘기하지는 못하지만 아이들도 느끼는 바가 있습니다. 만약 민들레의 생태에 관해서만 이야기한다면 아이의 생각이 풍요로워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책을 다시 펼쳐 한 페이지씩 그림을 보여 주며 “민들레는 큰 나무 아래서도 자라. 나무 그늘 때문에 햇볕을 많이 받지 못해서 추울 텐데 말이야. 그런데도 민들레는 추위를 탓하지 않아.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민들레는 차가운 콘크리트 틈 사이에서도 자라. 좁아서 답답한데도 말이야. 이런 민들레를 어떻게 생각해?”, “민들레는 높은 기와지붕에서도 자라. 높아서 위험하고 흙도 별로 없는데도 말이야. 네가 민들레라면 이런 곳에서 살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을 해 보세요. 이런 질문들은 민들레에 대한 아이들의 생각을 생태적인 관점에서 철학적인 사유로 나아가게 합니다. 또한 성장 과정에서 힘든 상황을 이겨 내야 하는 순간에 직면했을 때는 민들레의 강한 생명력을 떠올리며 의지를 굳건히 다질 수도 있고요.
마무리를 하면서는 생각이나 느낌이 정리되도록 그림책의 주제를 아이와 이야기 나누어 보세요.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이 그림책을 만들었는지 아이 스스로 찾아내도 좋고, 엄마가 들려주어도 좋습니다.
“민들레는 민들레”를 “나는 나”로 바꾸어 또 다른 스토리를 만들어 보는 활동도 의미가 있습니다. 자존감이 낮은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쓴 글을 옮겨 봅니다.

“나는 나, 키가 작아도 나는 나, 목소리가 작아도 나는 나, 선생님한테 혼나도 나는 나, 학교에서도 나는 나, 운동장에서도 나는 나, 혼자여도 나는 나, 둘이여도 나는 나, 공부를 못해도 나는 나, 달리기를 못해도 나는 나, 나는 못났지만 그래도 이런 나를 싫어하지 않고 사랑할 거다.”

이 글을 보면 아이는 자신이 잘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이런 나를 싫어하지 않고 사랑할 거라고 말합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있는 모습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겠다는 다짐으로 보여서 참 다행이다 싶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런 모습이면 솔직히 곤란하지요. 그래서 부족한 점을 채워 나가면서 자존감을 높이고 좀 더 달라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상호 작용이 필요했습니다.
아이에게 앞으로도 계속 이런 모습이어도 괜찮은지, 아니면 달라지고 싶은지를 물어보았지요. 아이는 달라지고 싶고 다른 사람들한테 인정받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달라지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글로 다 썼으니 이번에는 이 글을 희망적으로 바꾸어 보자고 했습니다. 아이는 이렇게 바꾸었습니다.

키가 작아도 나는 나, 잘 먹고 운동을 하면 더 클 수 있어. 목소리가 작아도 나는 나, 그래도 내 목소리는 개성이 있어. 선생님한테 혼나도 나는 나, 잘못하면 혼날 수도 있지. 하지만 앞으로 같은 잘못으로 혼나는 일은 없어야 해. 학교에서도 나는 나, 운동장에서도 나는 나, 혼자여도 나는 나, 둘이어도 나는 나, 공부를 못해도 나는 나, 이제부터 공부도 열심히 할 거야. 달리기를 못해도 나는 나, 꼴찌해도 최선을 다해 달리면 돼. 나는 나, 노력하는 나, 나는 이런 나를 싫어하지 않고 사랑할 거다.”

그리고 배에 힘을 주고 큰 소리로 읽어 보게 했습니다. 자신이 쓴 글을 큰 소리로 읽는 행위만으로도 강력한 효과가 나타납니다. 정말 그렇게 된 것처럼 느껴지면서 자신감이 생기기 때문이지요. 바꾸어 쓴 글 내용처럼 정말 앞으로 노력할 자신이 있냐는 물음에 아이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 꽃으로 태어났어』가 전하는 메시지에 귀 기울여 봐요

▲ 『나, 꽃으로 태어났어』

어떤 그림책은 신기하게도 모양만으로 남녀노소를 사로잡는 힘이 있습니다. 전하는 메시지까지 울림이 있다면 그야말로 치유용 그림책으로 최상이지요. 『나, 꽃으로 태어났어』(비룡소)를 펼쳐 본 순간 ‘아, 바로 이거야!’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더군요. 더불어 그림책의 진화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나, 꽃으로 태어났어』는 여린 꽃 한 송이가 세상에 피어나 인내와 헌신으로 사람들을 돕고 나누며, 기쁨과 감사로 삶을 노래하는 이야기를 담아 낸 팝업 북(입체 책)입니다. 플랩 북(들춰보기 책) 기능도 겸하고 있고요. 손으로 만져서 나무에 예쁜 꽃이 피게 할 수도 있답니다. 섬세한 종이 공예로 완성된 팝업 장치는 마치 꽃잎이 한 장 한 장 벌어지듯 펼쳐집니다. 책을 세워 모든 페이지를 펼치면 ‘병풍 책’이 되어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아름답고 특별한 책 모양만으로도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앗아 가는 그림책이지요.
그런데다 삶을 향한 꽃의 아름다운 고백이 담긴 간결하고 함축적인 글은 우리에게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물음을 던집니다. 또한 삶에 대한 굳은 용기와 위로, 소망을 전해 줍니다.
 
 
 
 

나, 꽃으로 태어났어요. 따스한 햇살을 받고 따뜻한 기운을 나누며 살아가요. 알록달록 꽃들과 어우러지면 더욱 아름답게 빛나지요. 난 사람들을 가깝게 이어 주고 사랑을 전해 주기도 해요. 아이들의 머리를 예쁘게 꾸며 주고 어른들의 마음을 흥겹게 해 주지요. 세상과 나누는 마지막 인사에도 함께하고요.
난 가녀리고 연약하지만 세상을 아름답게 이겨 냅니다.

―『나, 꽃으로 태어났어』 본문 중에서

꽃은 존재만으로도 주위를 환하게 하는데 꽃잎을 활짝 열어 젖혀 꿀벌에게 자신의 꿀을 내어 주고 사랑의 메신저가 되어 주기도 합니다. 때로는 아이들 머리를 예쁘게 장식하는 화관이 되기도 하고, 어른들의 눈을 즐겁게 합니다. 때로는 생을 마감하고 세상을 떠나는 이가 외롭지 않도록 길동무가 되어 주고요.
이처럼 꽃의 삶은 참으로 아름다우면서 희생하고 양보하는 삶이기도 합니다. 희생과 양보 뒤에 보이지 않는 고단함과 역경이 있을 텐데도 꽃은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습니다. 늘 그 자리에 서서 바뀌는 계절을 맞이하고 거센 바람과 비를 맞으면서도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뿐 결코 인내와 헌신을 억울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때때로 엄마들이 꽃을 닮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작은 일에도 가슴을 쓸어내리며 눈물 흘리던 엄마가 아이와 가족의 행복을 위해 많은 것을 양보하고 희생하는 동안 어지간한 일에는 끄떡하지도 않는 강한 면모를 갖추어 갑니다. 여린 꽃에서 강한 꽃이 되어 가는 엄마들의 삶. 그래서 저는 엄마들이야말로 꽃으로 태어났다고 말합니다.

반전이 있는 그림책, 이렇게 보면 감동이 두 배예요
저는 상담을 할 때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이 그림책을 반드시 두 번 보여 줍니다. 처음에는 팝업과 플랩 장치를 보이지 않고 한 페이지씩 넘겨 가며 텍스트를 조용히 읽어 나갑니다. 엄마들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갈 뿐 별 반응이 없습니다. 책에 대한 느낌을 물어봐도 역시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자, 이제 한 번 더 보여 드릴게요.” 하고 다시 처음부터 숨어 있던 그림을 하나씩 펼쳐 보여 주면 그때부터 엄마들의 반응은 적극적으로 변합니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지요. 특히 나무에 꽃이 피어나는 장면에서는 “어머”, “와!”, “대단해”, “감동, 감동!” 하며 짧은 감상이 쏟아집니다. 그런가 하면 세상과 작별 인사를 나누는 누군가의 관 위에 놓인 꽃을 볼 때는 숙연해지고요. 마지막으로 책을 쫙 펼쳐서 책상 위에 세워 놓는 순간 엄마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애 사 줘야겠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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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강의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들에게 두 번을 보여 주고 책상 위에 펼쳐 세워 놓았더니 이구동성으로 반전이 숨어 있는 그림책이라며 놀라워합니다. 그러고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저 책 갖고 싶어요.”라며 감상을 표현하더군요. 갖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적극적인 욕구 표현이지요. 그러면서 책을 차례로 돌려가며 다시 한 번 보는 동안 조심스레 꽃을 펼치고 아이의 머리에 있는 화관을 돌리기도 하고 나무에 꽃이 피도록 조작하는 등 꼼꼼히 살펴보는데 그 표정이 어찌나 행복해 보이던지 옆에서 말 걸기조차 조심스러웠답니다.
지인들의 반응도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에 그림책이 이토록 신비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니.”라며 감상을 전해 옵니다. 그림책을 선물 받고 좋아하는 지인들을 보면 저도 덩달아 기쁩니다. 힘들고 지친 이들에게, 또는 고마운 이들에게 아름다운 그림책 한 권을 선물하는 것도 생활 속에서 우리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치유 활동이지요. 이 그림책이 담고 있는 것처럼 나눔이 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아빠들의 반응은 엄마들처럼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아직도 아빠들은 그림책을 보고 그 감동을 엄마들처럼 아기자기하게 표현하는 것을 어색해 하는 모습입니다. 살짝 신기한 듯 쳐다보는 정도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책을 보고 난 후 1차적인 감상을 표현하는 데는 서툴러도 상호 작용 과정에서 대화를 나눌 때만큼은 무척 진지한 생각을 내어 놓습니다.

희생과 양보하는 삶,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물론 『나, 꽃으로 태어났어』가 인내와 헌신으로 돕고 나누며, 기쁨과 감사로 삶을 노래하는 꽃이 우리에게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깊이 있는 물음을 던진다 해도 저는 이 책을 치유 활동에 활용할 때는 나눔, 희생, 양보하는 삶의 아름다움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습니다. 일방적인 희생과 양보가 최선이 아닐 때도 있기 때문이지요.
상담을 하면서 “내가 이날 이때까지 참고 양보하며 살아왔는데 지금 나한테 남은 건 아무 것도 없어요.”라며 지나온 삶을 부정하고 후회 섞인 말을 하는 엄마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던가요?”라고 물으면 “그렇진 않았지만 상황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어요. 어쩔 수 없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못하겠어요. 너무 너무 지쳤거든요.”라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엄마들 대부분이 마음이 무척 여리고 착합니다. 즉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가졌지요. 인내와 양보, 희생하는 삶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황폐해지면 결국 이런 말을 하게 됩니다.
희생과 양보를 하면서도 후회하지 않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사람은 누구나 내가 하는 희생을 다른 사람이 알아줬으면 좋겠고, 내가 더 양보하고 사니까 나를 조금 더 좋은 사람으로 봐 줬으면 하는 기대 심리를 갖고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는 꽃과 달리 나의 필요를 위해 타인을 이용하고 내가 더 잘나 보이기 위해 존재감을 과시하면서 상처 주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데,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가진 이들 눈에는 그런 사람들이 대단해 보이고 부럽기까지 합니다. 전혀 부러워할 대상이 아닌데도 말이지요. 정말 본받아야 할 대상은 희생하고 양보해야 할 때는 자기 의지로 시원하게 그 길을 택하고, 또 권리를 주장해야 할 때는 당당하게 자기 생각을 말하는 사람인데 말이지요.

치유를 위한 상호 작용,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래서 저는 이 책에 담긴 희생과 양보, 인내의 메시지를 상기시키는 대신 밝고 유쾌하게 상호 작용을 시작합니다. 간단한 질문을 던지며 다가가 봅니다. 1. 꽃을 보면 기분이 어떤가? 2. 사람들은 왜 꽃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걸까? 3. 어떤 꽃을 가장 좋아하는가? 4. 누구로부터 어떤 꽃을 선물 받고 싶은가? 5. 희생이란 무엇일까? 6. 꽃처럼 타인의 즐거움과 행복을 위해 희생하고 양보한 적이 있는가? 그때 기분이 어땠는가? 7. 만약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꽃으로 태어나고 싶은가? 이렇게 일곱 가지 질문을 대상에 따라 적절히 써 가며 이야기를 나누지요.
1~4번 질문은 참여자들이 꽃에 대한 전반적인 생각과 느낌, 꽃에 얽힌 경험을 서로 공유함으로써 서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도록 돕는 효과가 있습니다. 때로는 웃음이 묻어나는 일상, 가족 이야기, 남자 친구 이야기, 비밀스러운 이야기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대답들에 사람 냄새가 묻어납니다. 그야말로 멀리 있지 않은, 현실에 발을 딛고 사는 우리 일상의 단면을 보여주는 자기표현이야말로 무척 귀한 결과물이지요.
5~6번 질문은 자기 삶의 방식을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자기 적용을 돕는 질문들입니다. 가슴 뭉클한 이야기, 슬픈 가족사, 개인적인 상처와 아픔에 관한 고백들이 주를 이루지만, “꽃처럼 타인의 즐거움과 행복을 위해 희생하고 양보한 적이 있는가?”라는 7번 질문에 “사촌 동생의 밥에 반찬을 올려 준 적이 있다.”고 말하며 해맑게 웃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군대 간 남친을 기다리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희생이다.”라고 힘주어 말해 웃음을 터지게 한 대학생의 대답도 있습니다.
그런데 7번 질문에서 의외의 반응이 나왔습니다. 엄마들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아름다운 꽃으로 태어나는 것도 괜찮겠다고 말하는 반면, 아이들과 대학생들은 대부분 꽃으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하더군요. 예쁠 때만 관심 받고 시들면 버려지는 꽃 같은 신세는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꽃은 사람이 물을 주고 가꾸어 주어야 자라는 약한 식물인데 그렇게 약하게 태어나고 싶지 않으며, 태어나 죽을 때까지 한 자리에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꽃의 삶은 너무 답답할 것 같아서 싫다고 합니다.
반면 이런 대답을 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꽃이 예쁘다고 하면서 함부로 꺾는데 예쁘면 그대로 지켜 줘야지 왜 그걸 꽃한테 허락도 안 받고 꺾어서 화병에 꽂아 두지요?”라며 목소리를 높이는데 그 말이 다 맞습니다.
얼마나 속 깊은 생각입니까. 어른들을 반성하게 하는 대답을 아이들이 하는 데 깜짝 놀랐습니다. 이런 대답들은 자유로움을 갈망하는 한편 강하게 자라고 싶은 마음의 반영이기도 합니다. 일방적인 희생과 양보만이 미덕인 세상은 아니니 그런 걸 우리에게 강조하지 말라고 하는 듯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드물게 꽃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학생이 있었는데 속을 들키지 않는 튤립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합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친구들 앞에서 속마음을 잘 털어 놓았는데 그걸 악용하는 친구들 때문에 상처받은 적이 많았다고 하더군요. 친구 사이에는 비밀이 없어야 된다고 생각해서 그동안 시시콜콜 다 얘기했는데 그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돼서 앞으로는 감출 건 감추고 얘기할 것만 얘기하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며 자신이 깨달은 바를 얘기한 학생의 이야기를 무척 흐뭇하게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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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어떤 꽃을 닮으면 좋을까요?
엄마, 아빠들께는 또 다른 질문을 하나 더 합니다. 내 아이가 어떤 꽃을 닮으면 좋겠는가 하고요.
엄마들은 가시가 있어서 만만해 보이지 않고 색깔과 모양이 화려해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장미나 강한 생명력으로 어디서나 뿌리를 내리는 민들레를 닮으면 좋겠다는 대답이 주를 이뤘습니다. 반면 아빠들은 의외의 대답을 내어 놓았습니다. 해바라기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뜨거운 태양을 향해 곧게 쭉쭉 뻗어가는 해바라기를 보면 목표 지향적이고 열정이 느껴지는데 내 아이도 그런 해바라기처럼 살았으면 좋겠다는 이유에서이지요. 또 딸을 둔 아빠들은 백합을 주로 얘기합니다. 백합은 순결해 보이고 깨끗한데 내 딸도 백합처럼 순수하고 상처받지 않고 곱게 잘 컸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서이지요.
그리고 어떤 아빠들은 당장 생각이 나지 않는 듯 멍한 표정을 지으며 스마트폰을 꺼내 무언가를 찾기 시작합니다. “지금 무엇을 찾고 계세요?” 하고 물었더니 “꽃말을 찾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더군요. 연애할 때는 꽃을 많이 샀는데 결혼하고 나서는 꽃과 먼 생활을 하다 보니 당장 생각나는 꽃이 없다며 수줍게 웃는 아빠들 모습이 마치 소년 같아 보였습니다.
아빠들에게는 집에 들어갈 때 아내가 좋아하는 꽃을 살 것을 권합니다. “당신은 꽃이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태어났어.” 라며 꽃 선물을 한다면, 종이 꽃이라도 그려서 선물한다면 이 그림책을 정말 잘 보신 거라고 덧붙여 얘기합니다.
아이에게 1번에서 7번까지 질문 중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한두 가지를 선택해서 대화를 나누어 보시기 바랍니다. 내 아이는 어떤 말을 할까요?

어느새 “나는 나”로 바뀌는 주문 “생긴 대로 살자”를 매일 되뇌어 보세요.
결국 두 권의 꽃 그림책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고 자기의 삶 또한 사랑할 것이며, 어디서든 자기다운 모습을 잃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라고 말이지요.
어느 날 특강을 마치고 나오는데 한 엄마가 저를 부르기에 주차장에 서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심각할 정도로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있어서 결혼하고서도 그저 참고 양보하고 참으며 13년을 버텼는데 지금은 시어머니한테도 죽일 놈의 며느리라는 비난을 듣고 있고, 친정 엄마조차도 자기편이 되어 주지 않는 현실을 서글퍼하며 눈물을 보였습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막내처럼 구는 오빠를 대신해 맏이처럼 집안을 돌봤던 자신의 공을 인정해 주지 않고 오히려 “누가 너보고 그렇게 살라고 했니? 너 좋아서 해놓고 이제 와서 딴 소리 한다.”라며 몰아세우는 친정 엄마 때문에 상처가 크다는 엄마는 열 살 난 딸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시어머니로부터 매번 당하면서도 아무 말 못하는 자신을 보고 자란 딸이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아무런 내색을 않아서 겁이 나는데다, 자기처럼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있는 것 같다는 것이지요. 엄마가 보기는 딸이 심각할 정도로 자기주장을 못하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매번 참기만 한다는 겁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딸을 볼 때마다 모든 게 자기 잘못인 것 같아 미안한데 그동안 걱정만 하고 달라지기 위해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은 자신을 보게 됐다며 오늘부터 강한 꽃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방법을 찾을 테니 좀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전문가의 힘을 빌리는 것도 좋지만 내가 희생하고 양보하지 않으면 내 존재감이 없어질 것이라는 불안감과 내가 내 권리를 주장하면 사람들이 나를 떠나갈 것이라는 비합리적인 신념에서 벗어날 것을 조언했습니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요.
독일 최고의 심리 상담가인 롤프 메르클레는 그의 저서 『나는 왜 나를 사랑하지 못할까』(생각의날개)에서 스스로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나 말을 자신에 대한 거부나 비판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호감가지 않는 면, 완벽하지 못한 면을 좋아할 수 있겠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스스로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스스로 위험에 처해 있으며, 공격당했고, 피해를 입었으며, 상처를 받았다고 느낀다는 겁니다. 그로써 쉽게 모욕감을 느끼고 마음 상하며, 섣불리 상심하고 아파하지요.
그리고 아이와 함께 자기를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 리스트를 만들어 보라고 했습니다. 추상적인 것 말고 아주 구체적이고 실천이 가능한 것들로요. 매일매일 실천 여부를 표시해 나가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지지해 주는 일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면 생활이 조금씩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복잡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은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심사숙고한 다음에 생각의 결과를 행동으로 옮기기보다 일단 행동을 하고 보는 게 효과적일 수도 있습니다. 행동이 바뀜으로서 긍정적인 결과를 경험하고, 이런 성공의 경험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이 가진 비합리적인 신념에서 벗어나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지요.
착한 사람 콤플렉스로 괴롭던 엄마께는 실천 리스트 중 첫 번째로 나를 받아들이기 위한 주문 “생긴 대로 살자”를 수시로 되뇌어 볼 것을 권했습니다. 이 역시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아이에게도 적용 가능합니다. 이는 롤프 메르클레가 제안한 방법인데 마인드 컨트롤에 효과적이지요. 매일 아침 또는 수시로 거울을 보면서 자기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생긴 대로 살자. 그래 나는 나야.” 하고 중얼거리는 행동이 다소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아름다운 나를 찾아 가는 길인데 조금 유치하면 어떻습니까.
적어도 사람들이 함부로 대하는 만만한 꽃은 되지 말아야지요. 자신을 보호하면서 “나는 나야.” 하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d_img4글 : 김은아 (마음문학치료연구소 소장, 행복한그림동화책연구소소장)
대학에서 국어 국문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아동가족상담과 문학치료학을 공부했습니다. 현재 행복한 그림동화책 연구소와 마음문학치료 연구소를 운영하며 대학에서 아동상담과 아동문학, 부모교육 등의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어린이책 기획자, 특별 기고가로서 어린이책의 매력을 전하기도 합니다. 그림책으로 마음 나눔을 실천하고자 행복한 도서관 만들기 운동과 다문화 가정 그림책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1. 황우진
    2015.12.24 1:2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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