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심리 여행: 당신에게 그림책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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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마감하는 12월입니다. 시간은 어김없이 우리를 12월에 데려다 놓습니다. 비룡소 독자님들 모두 올해도 별 탈 없이 보내셨지요? 크게 이룬 것은 없지만, 연초에 세웠던 계획들 가운데 달성하지 못한 것이 더 많지만 이렇게 숨 쉬며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그저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 보면 어떨까요.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 하루는 어제 죽어 간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하루일지도 모르니까요.
이달에는 남편과 아내와 행복한 대화를 나눠 보시길 바랍니다. 아빠, 엄마가 되면 아침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부부 사이의 대화 주제는 단연 아이입니다. 하지만 12월만큼은 화제의 중심을 아이한테서 두 사람에게로 옮겨 부부만의 행복한 대화를 하는 것도 한 해를 마무리하는 또 하나의 의미 있는 방법일 듯합니다.

남편에게 행복한 질문을 해 보세요
최근 『행복한 질문』(북극곰)을 부모 교육에 참가한 주부들과 함께 보았습니다. 어른을 위한 그림책인 『행복한 질문』은 일본에서 40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고 3년 연속 비소설 부문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고 합니다. 부부나 연인 사이에 오갈 만한 사랑스러운 질문과 대답을 따라 책장을 넘기다 보면 기분 좋은 웃음이 납니다. 이 그림책을 보고 나면 아내의 질문 또는 남편의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지,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해 주는 간단한 방법을 알게 될 것입니다.
부부가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질문이 시작됩니다. “있잖아 만약에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내가 시커먼 곰으로 변한 거야. 그럼 당신은 어떻게 할 거야?” 만약 내 남편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요? 문득 궁금해집니다. 그림책 속의 남편은 망설임 없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야…, 깜짝 놀라겠지. 그리고 애원하지 않을까? ‘제발 나를 잡아먹지는 말아줘.’ 그런 다음 아침밥으로 뭘 먹고 싶은지 물어볼 것 같아. 당연히 꿀이 좋겠지?” 하고요. 아! 이렇게 다정스러울 수가.
남편의 대답에 내심 기분이 좋아진 아내는 내가 작은 벌레로 변한다면? 내가 고양이로 변한다면? 내가 커다란 나무로 변한다면? 하고 계속 엉뚱한 질문을 합니다. 질문이 참으로 황당한데도 남편은 머뭇거림 없이, 짜증내지 않고 느긋하게 대답합니다. 만족스러운 남편의 대답에 아내는 무척 행복해집니다.

그럼 당신이 눈을 뜨니까 내가 작은 벌레로 변해서 당신 코 위에 앉아 있는 거야. 그러면 어떡할 건데?
「한 번 날아 봐.」 그러겠지? 아하! 여행을 떠나면 되겠다. 반으로 줄 테니 말이야. 당신을 위해 작고 예쁜 침대도 만들어 줄게. 그리고 살며시 입 맞추는 연습도 해야겠다. 행여나 당신이 다치면 안 되니까.
그럼 공원을 함께 걷다가 당신이 뒤돌아보니까 내가 커다란 나무로 변한 거야. 말하는 여자 나무가 된 거지.
음… 그렇다면 이 집을 팔고 그 나무 옆에 텐트를 치고 살 거야. 그리고 당신이 좋아하는 옷을 가지마다 걸어줄게, 내가 나무는 좀 타는 편이잖아.
… 내가 갑자기 「혼자 세계 일주 하고 올게.」라고 말하면 어떻게 할 거야?
괜찮아. 당신이 돌아왔을 때 내가 눈물바다에 빠져 죽어 있어도 상관없다면.

-『행복한 질문』 중에서

혼자 세계 일주 하고 온다고 말하는 아내에게 남편은 당신이 돌아왔을 때 내가 눈물바다에 빠져 죽어 있어도 상관없다면 다녀오라고 합니다. 갔다 오라는 말인지, 가지 말라는 말인지 헷갈리지만 로맨틱한 립 서비스를 하는 남편을 향해 어떻게 만족스럽지 않은 표정을 지을 수 있겠어요.
그러나 현실 세계의 내 남편으로부터는 어떤 대답을 듣게 될까요. “당신 뭐 잘못 먹었나?”, “애들은 어쩌고?”, “세계 일주하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지 알아?”, “이 여자 간도 크다.”, “나 죽고 나면 가.” 등등의 대답이 나오지 않을까요? 그림책을 함께 본 주부들과 남편의 대답을 예측하며 한바탕 웃었지요.
문득 저도 궁금해져서 남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여보! 만약 내가 아침에 일어났는데 큰 곰으로 변해 있으면 어떻게 할 거예요?” 남편이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동물원에 데리고 갈 거야.” 순간 눈을 치켜뜨면서 “왜? 동물원에 나 갖다 버리게?” 하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랬더니 “아니, 동물원에 데리고 가서 실컷 놀다가 다시 집에 데려온 다음 쑥이랑 마늘을 먹일 거야.” 이렇게 말합니다. 속으로 생각했지요. ‘아, 이 남자, 센스 살아 있네. 살아 있어.’ 하고요.
또 물어보았습니다. “만약 내가 어느 날 세계 일주를 하고 온다면 어떻게 할 거예요?” 하고. 물었더니 “선물 사 오라고 할 거야.”라고 대답합니다. 이 정도면 괜찮은 대답입니다. 그런데 딱 여기까지입니다. “만약 내가 어느 날 큰 나무로 변해 있다면?” 했더니 “아파트에는 큰 나무가 살 수 없어. 왜 말도 안 되는 걸 자꾸 물어?” 하고 ‘버럭’ 합니다. 저의 질문과 남편의 대화는 이렇게 끝났습니다.
남편에게 행복한 질문(?)을 한 번 해 보세요. 혹시 모르죠. 곰이 되어도, 벌레가 되어도, 심지어 나무가 된다 해도 여전히 당신을 사랑할 것이라고 대답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이 질문들을 아이들에게 물어봐도 재미있는 대답이 나올 듯합니다.

꿈꾸는 엄마가 되세요. 그래야 아이도 꿈꾸는 사람으로 자라요!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엄마들에게 또 한 가지, 당부가 있습니다. 묻어 두었던 엄마 자신의 꿈도 다시 펼쳐 보세요. 꿈이 있는 엄마가 아이를 건강하게 키운다고 합니다. 꿈꾸는 엄마는 부지런하고 열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짬을 내어 무언가를 배우려고 하지요. 또 이기적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꿈과 생각을 존중합니다. 이는 오랜 시간 일과 나눔 활동을 함께하는 주부들한테서 발견한 공통점입니다.
어쩌면 저렇게 많은 일을 하면서도 지친 기색 없이 움직일 수 있는지 놀랍습니다. 그 바쁜 와중에도 가족 외의 다른 사람들까지 다정하게 챙깁니다. 자녀 교육에도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고3 딸이 수능 시험 보는 날인데도 약속이 되어 있는 봉사활동을 하러 갈 정도이지요. “안 불안하세요? 그래도 오늘 같은 날은 시험장 근처에 계셔야 할 텐데요.” 하고 조심스레 말을 건넸더니 “공부는 자기 스스로 하는 거지 부모가 대신 해 주는 게 아니잖아요.”라는 말이 돌아오더군요. 내 아이와 내 아이의 꿈만 챙기기에도 바쁜 세상에 선약을 지키면서 복지 시설에 있는 이들의 꿈도 지키려는 한 엄마의 모습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부모 교육이나 상담을 하면서 엄마들에게 과거의 꿈이 뭐였는지, 지금은 어떤 꿈을 갖고 사는지를 자주 물어봅니다. 갑작스러운 질문이지만 쉽게 대답하는 엄마들도 있고, “글쎄요. 내 꿈이 뭐였더라. 결혼하고 아이 낳아 키우면서 내 꿈같은 건 잊고 산 지 오래됐어요.”라고 말하는 엄마들도 있습니다. 어떤 엄마는 아이 잘 키워서 성공한 사람 만드는 게 꿈이라고 하고, 아이가 다 크면 그때 가서 찾아보겠다고 합니다. 엄마로서 당연하다고 할 만한 말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씁쓸합니다. 아이가 꿈을 이루고 나면, 더 이상 엄마의 손길이 필요 없어지면 그때의 허허로운 심정은 무엇으로 달랠 수 있을까요.
어느 날 아들이 “엄마는 꿈이 뭐야?” 하고 묻는데 할 말이 없었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인 엄마가 있습니다. “응, 엄마 꿈은 말이지.”라며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워 그날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고 하네요. ‘아들 눈에 비친 내 모습은 어땠을까? 혹시 나를 무능한 엄마로 생각하지는 않을까?’ 이런 저런 생각이 스쳐 갔다고 하더군요.
꿈을 가져 보세요. 그 꿈이 무엇이라 해도 상관없습니다. 지금 당장 이루기 힘든 꿈이라 해도 우리에게는 아직 수십 년의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꿈=특정한 직업”이라는 공식에서 벗어나 숨겨 놓았던 꿈을 다시 꺼내 보는 겁니다. 그리고 엄마의 꿈을 가족 앞에서 당당하게 말해 보세요. 엄마도 꿈이 있는데 지금은 잠깐 쉬고 있는 중이라고요. 엄마의 꿈도 존경받아야 합니다.

꿈꾸는 소녀 테주처럼
‘형편이 안 되어서 꿈을 포기했다’는 말은 노력하지 않아도 될, 도전하지 않아도 될 핑계를 스스로 만드는 자기 합리화라고 합니다. 역사 속 인물들을 살펴볼 때 온실 속에서 따뜻하게, 꽃밭 길을 걸으면서 무언가를 이뤄낸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엄마들이 아이에게 인물 이야기책을 보여 주는 이유도 계속되는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무언가를 이루어 낸 위대한 인물들의 의지와 인내를 내 아이가 보고 배우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지요.

▲ 『꿈꾸는 소녀 테주』

혹시 그림책 『꿈꾸는 소녀 테주』(비룡소)를 보셨는지요? 인도 계급 사회에서 가난하게 태어난 소녀 테주가 화가로서 꿈을 이루어 가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입니다. 계급 사회이자 남성 중심 사회에서 하층민이며 여성이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사회의 장벽보다 더 큰 장벽을 넘어서야 하는 노력이 필요했을 겁니다. 그런 여건 속에서 자신의 꿈을 이룬 여성이 있습니다. 바로 테주 베한입니다. 인도의 민속화가 테주 베한은 계급 사회의 하층민이자 가부장제 사회의 여성으로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서도 담담하게 현실을 마주했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화가 덕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남편 가네쉬의 적극적인 지지에 힘입어 내면의 간절한 바람을 예술로 승화시켜 나갔지요. 가난한 하층민 소녀가 민속화가로 거듭난 것입니다.
또한 테주 베한은 자신의 삶을 경쾌하고 섬세하게 그려 내어 그림책 『꿈꾸는 소녀 테주』로 펴냈습니다. 이 책은 인도 하층민의 생활 환경과 문화를 보여 주는데, 문화권이 다른 우리로서는 이색적인 매력의 예술 작품을 보는 듯합니다. 실크스크린 기법을 이용해 수작업으로 완성한 그림책에는 각 권마다 고유번호가 표시되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책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낙천적인 의식과 자세로 마침내 화가로서의 꿈을 이루어 가는 테주의 모습을 만나 보세요. 테주의 인생을 통해 내 삶을 돌아보고 내 꿈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하루 한 권 읽는 그림책은 마음 건강을 지켜 주는 보약!
독일을 비롯하여 일본, 미국의 서점에는 성인을 위한 그림책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한 조사에 의하면 미국에서 그림책을 구매하는 사람의 3분의 1 이상이 자녀를 가질 계획이 없는 성인이라고 합니다.(임난영, 2007)
이 조사 결과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그림책이 더 이상 유아들의 전유물, 자녀 양육을 위한 도구로만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어른을 위한 그림책 『행복한 질문』이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데도 이유가 있겠지요.
일본 논픽션 작가인 야나기다 구니오는 둘째 아들이 자살로 세상을 떠난 슬픔에 빠졌을 때 그림책을 보면서 삶의 의지를 되찾았다고 합니다. 이후 그림책이야말로 성인이 더욱 열심히 봐야 하는 책이라며 그림책의 매력을 알리고 있는 야나기다의 이야기는 그림책의 치유적인 가치를 논할 때 흔히 언급되는 사례입니다. 인생이 송두리째 잘못된 것 같아 깊은 우울증에 빠진 야나기다에게 다시 살아갈 힘을 준 것이 바로 지하철역에 있는 서점에서 우연히 만난 『바람의 마타사부로』와 몇 권의 그림책이었습니다. 그림책을 보는 내내 왠지 마음이 따뜻해지고 위로받는 느낌을 받았다는 그는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그림책이 건네는 심오한 말을 재발견하고 그림책의 포로가 되어 버렸다고 말합니다. 『마음이 흐린 날엔 그림책을 펴세요』(수희재)라는 책을 통해 그림책이 인간으로 하여금 얼마나 넓고 깊은 체험을 할 수 있게 해 주는지를 감동적으로 풀어낸 바 있습니다.
이처럼 그림책은 더 이상 유아동의 전유물이 아니라 성인에게 휴식이 되어 주는 친구이자 침묵의 상담사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삶이 힘들게 느껴질 때, 혼자라는 생각에 외로울 때, 화가 날 때, 우울하고 슬플 때 펼쳐 보라며 그림책을 선물합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심란함을 털어 놓으며 위로를 받으려 하지만, 어쩌면 무작정 서점에 가서 그림책을 펼쳐 보거나 집에 있는 그림책을 보며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하루에 사과 한 개가 보약이라고 하듯이 하루에 그림책 한 권을 보는 건 정신 건강을 지켜 주는 보약이라고 생각합니다. 새해에는 아이와 상관없이 자신만을 위한 그림책 읽기를 시작해 보세요.

그림책과의 인연에 감사하며
2010년 7월, “그림책은 0세부터 100세까지 즐길 수 있는 책”이라는 가와이 하야오(일본 융 학파의 선구자, 임상심리학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림책 심리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훌쩍 시간이 지나 2014년 12월에 이르렀습니다. 4년이면 대학에서 학부 과정을 마칠 만큼 긴 시간입니다. 비룡소 새소식 학교 졸업장을 만들어 제가 제게 선물할까 봅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사연과 마주했습니다. 하지만 바쁜 일상, 크고 작은 일들,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 대부분이 그림책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림책을 계기로 만난 이들, 인연이 된 이들의 얼굴을 떠올려 봅니다. 클레이로 만든 걱정인형에게 아빠가 힘들어 보여서 걱정이라고 털어놓던 여섯 살 지민이, 『똑똑해지는 약』(북극곰)을 보여 줬더니 뒤로 넘어갈 듯 배를 부여잡고 웃던 소라는 참으로 해맑았습니다. “우리를 어떻게 보고 그림책을 보여 줘요? 유치하게끔.”라고 시니컬한 반응을 보였던 태민이는 매력이 넘치는 중2였고요.

▲ 『나, 꽃으로 태어났어 』

“어머나, 내가 유치원 다닐 때는 이런 그림책이 없었는데.” 하면서 『나 꽃으로 태어났어』(비룡소)를 신기하게 펼쳐 보던 다운이는 그야말로 참한 여고생이었습니다. 강의실 불을 끄고 그림자 그림책 『불을 꺼 봐요!』(보림)을 보여 줬더니 “와우!”, “대박!”이라는 감탄사로 격한 반응을 보인 대학 제자들은 앞으로 용돈을 아껴서 그림책을 사 모아야겠다고 합니다.
그림책의 매력에 빠진 이후 책 놀이 봉사 활동을 하거나 다시 공부를 시작한 엄마들의 이름은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2년 전 『나는 기다립니다』(문학동네)를 읽고 패러디하는 글쓰기 활동을 할 때 “어머니와 아내가 40년이 지난 지금도 서로를 어려워하며 기찻길처럼 나란히 걷고 있는데 이제는 그 어려움을 내려놓고 편하게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는 날을 기다립니다.”라고 써놓은 한 퇴직 공무원의 글을 아직도 저는 갖고 있습니다.
매주 화요일 그림책 치유 심리 강좌를 기다리는 자신을 20대의 청년의 모습으로 형상화하여 그린 72세 할아버지는 과거 화려했던 영광을 뒤로 한 채 이제는 ‘웰 다잉(well-dying)’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로 다른 참여자들을 숙연하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가져간 그림책 『엄마 마중』(보림)을 크레파스로 예쁘게 꾸며 주신 김점례 할머니는 잘 지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할머니가 계셨던 노인 요양 시설이 문을 닫고 난 후로는 연락이 닿지 않아서 소식을 모릅니다.
0세부터 100세에 이르는 분들을 모두 만나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연령대와 함께 그림책으로 했던 치유 활동들은 저로 하여금 그림책의 힘을 맹신하게 만들었습니다. 맹신은 무척 위험하지만, 그림책을 맹신한 대가로 손해 본 일은 없답니다. 사람 때문에 화가 나고 감정 상하는 일은 많지만 그림책 때문에 화가 나고 감정 상하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 이 얼마나 안전한 친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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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으로 인연을 맺은 모든 분들의 마음에 사랑과 평화가 가득하기를
꽤 오래전 누군가가 이런 질문을 해 왔습니다. “선생님은 그림책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때 제가 했던 대답이 참으로 궁색했던 것 같습니다. 그림책 이론가들의 말을 빌려 마치 제 생각인 양 이것저것 섞어 감동을 운운했으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합니다. “그림책은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친구”라고 말입니다.
헤어짐은 늘 아쉬움을 남기지만 기분 좋은 헤어짐도 있습니다. 지난 4년 동안 그림책을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받으며 독자님들의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시원섭섭하다는 한 마디 말은 그림책 심리 여행과 작별하는 이 순간 제 마음을 대변하는 단어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저 “고마움”과 “감사”라는 두 단어만 생각납니다. 멋진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비룡소 출판사와 칼럼을 읽고 기분 좋은 피드백을 해 주신 독자님들께 진심을 담아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작별 인사에 앞서 반칠환 님의 「새해 첫 기적」이라는 시를 들려 드립니다.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반칠환, 『웃음의 힘』중에서

타고난 모습, 살아가는 모습은 각자 다르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졌습니다. 앞서 출발했건, 뒤에 출발했건 한날한시 모두가 새해 첫날에 도착합니다. 그러고 보면 서두를 이유도, 조급해 할 이유도 없는 것 같습니다. 2015년 1월 1일이 되면 누구나 다 똑같이 새해 첫 출발선에 서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말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고, 각자 방식대로 자기 속도에 맞춰 2015년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그림책으로 인연을 맺은 모든 분들의 마음에 사랑과 평화가 가득하기를 바라며 그림책 심리 여행을 마무리합니다.

▼참고 문헌
반칠환, 『웃음의 힘』(지혜, 2012)
오나리 유리코, 김미대 옮김,『행복한 질문』(북극곰, 2014)
야나기다 구니오, 한명희 옮김, 『마음이 흐린 날엔 그림책을 펴세요』(수희재, 2006)
임난영,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에 대한 연구」(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7)
테주 베한, 이상희 옮김, 『꿈꾸는 소녀 테주』(비룡소, 2014)


d_img4글 : 김은아 (마음문학치료연구소 소장, 행복한그림동화책연구소소장)
대학에서 국어 국문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아동가족상담과 문학치료학을 공부했습니다. 현재 행복한 그림동화책 연구소와 마음문학치료 연구소를 운영하며 대학에서 아동상담과 아동문학, 부모교육 등의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어린이책 기획자, 특별 기고가로서 어린이책의 매력을 전하기도 합니다. 그림책으로 마음 나눔을 실천하고자 행복한 도서관 만들기 운동과 다문화 가정 그림책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1. 길미선
    2017.10.22 11:53 오후

    저역시 자녀는 없지만 그림책을 매우 애정하는 독자 입니다. 인식이 많이 개선 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림책 좋아 한다 그러면 의아한 눈길로 보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림책 보며 힐링많이 하는데, 보다 많은 어른독자가 그림책을 보는 것이 외국처럼 보편화 되었음 좋겠네요. 좋은 칼럼 너무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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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김종옥
    2015.1.3 2:29 오전

    비공개 댓글

  3. 김은아
    2014.12.30 9:48 오전

    김종옥 선생님. 잘 지내고 계시지요? 올해가 이틀밖에 남지 않았어요. 기분이 어떠세요? 올해도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림책과 함께 했던 시간은 즐겁기만 했습니다. 그 시간들 속에 선생님과 함께 한 시간도 꽤 길었습니다. 그림책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5년에도 그림책 사랑을 쭈욱 이어가실 거라 믿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오늘, 내일도 그저 행복하게 보내세요.

  4. 김종옥
    2014.12.22 12: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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