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심리 여행: 아이의 사춘기 반항, 감당이 안 되는데 어떡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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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사는 사춘기에 있는 청소년들을 자주 만납니다. 개인적으로 상담을 받으러 오는 경우도 많지만 도서관이나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마련한 독서 교육이나 독서 치료 프로그램을 통해 만나는 경우도 많지요. 저뿐 아니라 연구소에서 함께 일하는 다른 상담사들도 거의 매일 10대들을 만납니다. 그런데 어느 책의 제목처럼 ‘십대라는 이름의 외계인’들을 만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10대 청소년들은 주로 인상을 잔뜩 찌푸리거나 무표정한 얼굴로 연구소에 들어섭니다. 그러고는 “내가 정신병자도 아닌데 이런 데 왜 와야 되는데? 오기 싫다고 했잖아.”라며 엄마에게 마구 짜증을 내지요. 엄마가 상담사에게 자신에 관해 얘기를 할라치면 가자미눈을 뜨고 노려봅니다. 모르는 사람한테 왜 자기 얘기를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10대들은 심리 검사도 초스피드로 끝내고 엎드려 잡니다. 질문은 아주 귀찮아합니다. “몰라요.” “피곤해요.” “그냥요.” 한마디 수준으로 짧게 대답하고 “왜요?”라고 되묻거나 계속 “언제 끝나요?”라며 상담사에게 종료 시간을 자꾸 물어봅니다. 상담 중에도 쉴 새 없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친구들과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채팅에 빠져 있습니다. 하여간 있는 대로, 온몸으로 싫은 내색을 하지요.
집단 독서 치료 프로그램에서는 이런 10대들을 족히 열 명쯤 마주하게 됩니다. 남학생들은 교실에 들어와서 자리에 앉을 때까지 애꿎은 의자를 발로 툭툭 차는 일이 예사입니다. 자리에 삐딱하게 앉아서는 “이런 거 왜 해야 되는데요?” “이런 거 좀 안 하면 안 돼요. 귀찮아 죽겠어요.”라는 식으로 따집니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의자를 앞뒤로 끄덕이면서 위태로운 장난을 치거나 함께한 친구들이 하는 얘기에 야유와 비웃음을 보냅니다. 여학생들은 끊임없이 단짝 친구와 수다를 떱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책상에 엎드려서 자는 아이들도 있고요.
그런데도 저를 비롯해 연구소 상담사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아이들의 이런 행동들이 무척 귀엽다는 것이지요.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들으면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적어도 상담사들의 눈에 비친 10대들은 외계인이 아니라 톡톡 튀는 매력의 소유자들입니다. 상담사들은 사춘기 청소년들의 심리와 그들의 무분별하고 때로는 위험한 행동의 원인을 알고 있기에 ‘외계인’들의 언어를 알아듣고 적절히 반응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힘은 들지만 10대들과의 만남을 감사히 여기지요.
하지만 부모의 입장은 다릅니다. 상담사들은 정해진 시간에만 아이들을 만나면 되지만 부모는 사춘기 자녀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므로 크고 작은 마찰로 하루하루가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사춘기 자녀의 독설에 눈물을 보이는 엄마들을 보면 함께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서 부모라면 한두 번은 겪어야 할 통과 의례인 내 아이의 사춘기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사춘기의 일반적인 모습 #1 변덕이 죽 끓듯 해서 어느 장단에 춤춰야 할지 모르겠어요.
말 잘 듣고 착하던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쿵쾅거리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방문을 걸어 잠근 채 대화를 거부합니다. 심지어 가출을 하고 어울리지 말았으면 하는 친구들과 함께 다니며 엉뚱한 짓을 합니다. 이유 없이 화를 내는 일은 일상이 되었고요. 조금만 간섭을 하면 그냥 내버려 두라는 둥, 자꾸 사람을 귀찮게 하니까 엄마랑 얘기가 하기 싫다고 합니다. 아빠, 엄마가 내 마음을 아느냐면서 악을 쓰고 대듭니다. 그래서 혼자 생각할 시간을 가지라고 그냥 내버려 뒀더니 이제는 자기한테 관심이 없다는 둥, 자기가 비행 청소년이 되면 모두 아빠 엄마 때문이라며 협박합니다. 종잡을 수 없는 아이의 변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사춘기라서 그런 건 알겠는데 내가 사춘기였을 때는 저렇지 않았어요.
이는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이 관찰한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로, 많은 부모들이 공통적으로 발견하는 모습들입니다.

◇ 사춘기 아이의 알 수 없는 행동을 이해하게 하는 뇌에 관한 이론
『십대들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해나무)라는 책에 무척 재미있는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10대들의 욕망은 변덕스러운데 열정적이면서도 그만큼 덧없어 보인다고 했습니다. 한편 셰익스피어는 작품 속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청소년을 만들어 내는 한편, “청소년기는 대체로 과거와 불화하며 도둑질하고 싸우는 시기”로 정의했다고 합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대체 10대들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10대들에 대한 연구는 몇 세기 전부터 이루어져 왔는데 그들의 행동에 대해서는 인류 역사상 최고로 손꼽히는 사상가들마저 난감해 했다고 하니 무척 재미있는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춘기 증상의 원인에 대해 예전에는 청소년기에 들끓는 호르몬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신경과학자들은 10대들의 행동을 이해할 단서를 아직 발달이 완료되지 않은 10대들의 뇌에서 찾았습니다. 사춘기 아이들의 알 수 없는 행동은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바로 뇌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지요.
이에 대해 『내 아이를 위한 감정 코칭』(한국경제신문)을 쓴 존 카트맨, 최성애, 조벽 박사는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을 관장하는 ‘전두엽’이 사춘기에 대대적인 리모델링에 들어간다는 이론으로 쉽게 설명합니다. 전두엽은 기억력, 사고력 등의 고등 행동을 관장합니다. 즉 13~14세 때까지 어느 정도 발달했던 전두엽이 사춘기에 새롭게 재구축된다는 사실을 리모델링을 하는 건물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부모들께 무척 유용한 정보입니다.

리모델링을 하는 건물을 들여다보면 사춘기의 뇌가 어떤 모양일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리모델링을 하는 동안 건물은 엉망진창입니다. 여기저기 건축 자재들이 널려져 있고, 리모델링을 하느라 군데군데 부서진 곳이 많습니다. 두뇌 전선은 당연히 이어져 있지 않아 리모델링을 마치기 전까지는 다면적인 생각을 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판단하거나 우선순위를 정하거나 미리 예측해 계획을 세우는 등의 일을 어려워합니다. 이런 상태가 바로 청소년의 뇌입니다. 그러니 한 번에 한 가지라도 처리하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해야 합니다. 어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청소년들의 엉뚱한 행동은 대부분 전두엽이 한창 리모델링 중이기 때문에 나타납니다.
―『내 아이를 위한 감정 코칭』 302쪽

이처럼 청소년의 전두엽은 정리가 되지 않아 무척 어수선한 상태이므로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런데 부모들은 아이의 신체 발달이 이미 어른만큼 이뤄졌으니 판단력도 성숙할 것이라는 기대를 합니다. 감정 코칭 전문가인 존 카트맨과 최성애 박사는 청소년 자녀와의 갈등이 이런 오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청소년의 뇌가 어떤 상태인지 이해하기만 해도 그들의 예측 못할 행동을 받아들이는 일이 한결 수월해진다고 조언합니다.
따라서 부모들이 흔히 하는 “우리가 사춘기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잖아요.”라는 말은 10대 청소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의미입니다. 사춘기 청소년의 뇌에서 일어나는 리모델링 공사 자체는 과거와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해도, 주변 환경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과학 기술의 속도와 문화가 빠르게 변하고 있고 청소년들을 유혹하는 유해 환경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널려 있는 세상입니다. 거기다 학업 스트레스는 부모 세대에 비해 몇 배는 증가했고요. 그런데도 옛날 기준으로 오늘날의 사춘기 자녀를 바라보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닐까요.

사춘기의 일반적인 모습 #2 감정 기복이 심해요.
태교할 때부터 남들이 별나다고 할 정도로 신경을 많이 썼어요. 반항을 하기 전까지는 정말 예뻤어요. 공부도 열심히 하고 애교도 많았고요. 그래서 ‘태교에 신경 쓴 보람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정성들인 만큼 애가 반듯하게 잘 클 줄 알았어요. 그런데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애가 반항하기 시작하더니 지금 중학교 2학년인데 학교 선생님들도 포기했을 정도예요. 남의 집 담을 넘고요. 가출도 하고요. 집에 늦게 들어오는 일은 다반사고요. 충동 조절이 안 되고 툭 하면 화를 내는데 무엇보다 감정 기복이 너무 심해서 걱정이에요. 남자인데도 그러네요. 성적은 이미 바닥이고요. 인문계 고등학교도 못 갈 성적입니다.

◇ 사춘기의 감정 기복을 이해하게 하는 세로토닌에 관한 이야기
청소년기에 감정 기복이 심한 것은 단순히 사춘기 때문이 아니라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전물질의 영향 때문입니다. 감정 조절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세로토닌은 행복감을 전해 주기 때문에 해피니스 호르몬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따라서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우울감이나 불안감에 사로잡힙니다. 그런데 청소년기에는 세로토닌이 아동과 성인기에 비해 약 40퍼센트 정도가 덜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왜 내 아이가 감정 기복이 심한지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대개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공격적이고 충동적인 행동을 보입니다. 이는 감정 회로의 핵심이라는 편도체가 여학생보다 남학생의 뇌에서 더 발달해 있기 때문입니다. 편도체는 공포를 기억하고 다른 감정 처리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격한 감정이 일어나는 상황을 편도체에서 위기 상황으로 받아들이면서 공격 태세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딸의 사춘기보다 아들의 사춘기가 더 위협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런데다 남학생은 여학생보다 세로토닌 분비량이 적고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여학생보다 10배가량 많이 나오는데 이 역시 공격적이고 충동적인 행동의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한편 사춘기 여학생도 공격적이고 충동적이기는 마찬가지인데, 주로 남을 헐뜯거나 수다로 공격성을 표출합니다. 즉 남학생의 공격성은 과격한 행동으로, 여학생은 언어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강하지요. 또 여학생들은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때 펑펑 울어 버리곤 하는데 이런 식의 감정 표출 방식에 남성인 아빠나 오빠, 남동생은 무척 당황스럽습니다.
사춘기 자녀의 감정 코칭에 대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책 『내 아이를 위한 감정 코칭』을 참고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위의 사연을 가진 엄마를 작년 봄에 처음 만났습니다. 상담으로 만난 게 아니라 부모 교육 강좌에서 인연을 맺은 뒤 계속 연락하면서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1년이 지난 지금은 많이 편해져서 아들한테만 매달려 있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들을 이해하려고 끊임없이 기다려 준 엄마의 인내심 덕분이지요. 살짝 가출을 했다 돌아온 아들에게 야단치는 대신에 “별 일 없이 왔으니 됐다. 엄마가 너 좋아하는 장조림 해 놨어.”라며 따뜻한 밥상을 차려 주었다고 합니다. 돌아오고 싶은 따뜻한 집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고 하네요.
그림책 『삐딱이를 찾아라』(비룡소)에서 가족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집을 나간 삐딱이가 집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것도 결국 가족이 자기를 기다려 줬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기다려 주는 가족이 있는 집은 사춘기 아이들에게 안식처입니다.
도저히 올릴 수 없는 성적으로 대학을 고집하는 것보다 아들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도록 방향을 찾아 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는 결론을 내리기까지 남편과 자주 대화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외동아들에 대한 기대가 컸던 터라 당연히 좋은 대학에 보내 남들이 부러워 할 직업을 갖게 하고 싶은 욕심에 금전적으로도 꽤 많은 투자를 했지요. 그런 아들이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기술을 배우겠다고 했을 때 억장이 무너졌다고 고백하더군요. 다행히도 다음 날 아침부터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초연하게 아이가 배우고 싶어 하는 학원에 등록을 해 줬다고 합니다. 요즘 아들은 집에만 오면 요즘 아들은 집에만 오면 밀가루 반죽을 하며 신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집에는 평화가 찾아왔고 예전처럼 웃음이 피어났습니다. 엄마는 아들이 일찍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것을 감사히 생각한다며, 아이가 마음이 바뀌어서 다른 걸 하겠다고 해도 수용할 수 있겠다고 하더군요.
이 엄마의 방식은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아주 중요한 가르침을 줍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어. 힘들어도 참아야 해. 다른 애들도 다 그렇게 살잖아.”라는 말 대신 “그래!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봐.”라고 말해 준다면 방황하는 아이들에게 한 줄기 희망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세요.

사춘기의 일반적인 모습 #3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는 아이 때문에 화가 나요.
딸이 중학교 2학년인데 요즘 들어 무척 예민해요. 그런데다 아침에 일어나지를 못해요. 공부는 안 하고 밤새 딴짓 하느라 새벽에 자는 것 같아요. 얼마나 한심한지. 몇 번을 깨워야 일어나는데 짜증을 있는 대로 내요. 지각하는데도 머리를 이렇게 만졌다 저렇게 만졌다 얼마나 꾸물대는지 몰라요. 빨리 하라고 재촉하면 아직 시간이 있다고 해요. 아이가 차 안에서 먹을 빵이랑 우유를 챙겨 저 먼저 차에 가서 시동을 걸고 기다리거든요. 아이는 느릿느릿 걸어와서 차에 타고는 왜 더 일찍 안 깨웠냐면서 화를 내요.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우유랑 빵을 먹어요.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아요. 한 대 쳐 주고 싶을 정도로 미운데도 아이가 아침부터 기분 상할까 봐 아무 말도 못하고 혼자 분을 삭입니다.

◇ 사춘기 자녀와의 갈등 원인인 ‘잠’에 관한 진실
인간에게 잠은 아주 중요한데 청소년기의 잠은 특히 더욱 중요합니다. 저도 청소년기를 보내는 동안 잠 때문에 무척 애를 먹었습니다. 끝없이 쏟아지는 잠을 참느라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래서 저는 프로그램 시간에 대놓고 잠을 자거나 심리 검사를 일찍 하고 엎드려 자는 아이들의 행동이 얼마든지 이해가 됩니다. 그렇다고 마냥 자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아이를 이해하더라도 방관하거나 방치해서는 안 되니까요. 그래서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영상을 보면서 스트레칭 하는 시간을 자주 갖습니다.
그런데요, 사춘기 청소년들은 하루 평균 9시간가량을 자야 정상적인 뇌 활동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지요? 요즘 청소년들의 일과를 보면 하루에 6~7시간도 자기 힘든 구조입니다. 학교 수업 마치고 학원 갔다 와서 숙제를 끝내고 나면 밤 11시쯤 됩니다. 그때부터 바로 자면 좋으련만 각종 유혹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요즘 인기 있는 웹툰과 깨알 같은 글씨의 인터넷 소설을 봐야 합니다. 친구들과 새벽까지 채팅도 해야 하고요. 사례에서 엄마가 말한 딴 짓이란 주로 이런 것들입니다.
몇 시에 잤는지도 모르겠는데 벌써 아침입니다. 자기 직전까지 여러 가지 자극에 노출되어 있었는데 숙면을 취했을 리가 있나요. 잠이 모자라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니 우울하고 짜증이 치솟고 만사 귀찮아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잠이 모자라면 스트레스를 더 잘 받는 것은 물론이고 감정 조절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일단 사춘기 청소년들의 수면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부 대신 딴짓 하느라 새벽에 자는 딸을 한심하게 여기지 말고 요즘 청소년들의 일반적인 모습으로 바라보는 관대한 시선 또한 필요합니다. 그다음에 딸의 잘못된 생활 습관을 바로 잡아 주어야 효과가 큽니다.
딸은 자기보다 지각을 더 걱정하는 엄마 덕분에 지금까지 아슬아슬하게 지각을 면했습니다. 늦게 일어나도 엄마가 차에서 먹을 빵과 우유를 챙겨 주고 학교 정문까지 태워 주니까요. 학교가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데도 말이지요. 그것이 딸에게는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이는 사춘기 청소년의 일반적인 모습이기 이전에 엄마가 잘못 들인 습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엄마께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밤늦게까지 네가 무엇을 하고 자든 상관없지만 내일부터 아침에 너를 깨우지 않을 테니 알람을 맞춰 놓고 스스로 일어나고 날씨가 궂은 날 외에는 걸어서 학교에 갈 것을 단호하게 얘기해야 한다고 말이지요. 갑자기 달라진 엄마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딸은 엄마가 더 답답해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분명 내일도 엄마가 자신을 깨워 줄 것이고 변함없이 맛있는 빵과 우유를 준비해 차 안에서 자기를 기다릴 거라고 믿을 테지요. 그 믿음이 깨지는 경험을 하고 나면 아이는 지각한 탓을 엄마에게 돌리며 불같이 화를 낼 것입니다.
그때는 “사춘기를 보내는 내 딸의 모든 말과 행동을 엄마가 모두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명백한 네 잘못을 엄마 탓으로 돌리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다.”고 말해 주어야 합니다. 사춘기의 알 수 없는 짜증과 변덕, 감정 기복은 있는 대로 인정해야 하지만 잘못된 습관마저 무조건 수용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사춘기의 일반적인 모습 #4 어울리지 말았으면 하는 친구들과 자꾸 만나요.
사춘기 자녀를 둔 엄마들의 큰 걱정 중 하나는 아이가 엇나간 친구를 사귀는 것입니다. 여기서 엇나갔다는 것은 부모 기준에서 바람직하지 않아 보이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 내 아이도 같이 물이 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왕이면 공부 잘 하고 모범적인 아이, 가정환경도 좋은 친구를 사귀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요. 행실이 나쁜 친구들을 만나지 말라고 했더니 아이는 자기가 소중하게 여기는 친구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며 마구 화를 냅니다. 또 친구 집에서 자고 오겠다는 걸 허락 안 했더니 집을 나가겠다고 협박합니다.

◇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내 아이가 원래는 안 그랬는데 친구 잘못 만나서 그렇다는 말을 엄마들이 자주 합니다. 사춘기는 친구들 관계에 휩쓸리기 딱 좋은 시기이지요. 아빠, 엄마랑은 말이 안 통해도 친구랑은 대화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친구든 나쁜 친구든 그들과 함께 무언가를 하는 순간 소속감 또는 동질감을 갖게 되고요. 그러면 덜 외롭습니다. 그것이 평생을 이어갈 진정한 우정이 될지 안 될지는 시간이 지나 봐야 압니다. 그런데 사춘기 청소년들은 마치 친구가 인생의 전부가 되는 것처럼 착각해서 아빠, 엄마를 서운하게 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친구, 가까이 하는 친구를 부모가 인정해 주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처럼 분노하지요.
일단 내 아이가 어떤 친구를 사귀든 인정하는 넓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물론 이는 부모 입장에서 쉽지 않은 일입니다. 딸이 사귀는 친구들 때문에 몇 년을 마음 고생한 지인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행실이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공부를 게을리하는 아이를 설득하고 회유하고 협박까지 하다 결국 타 지역으로 전학을 보냈는데 주말만 되면 아빠, 엄마 몰래 기차를 타고 친구들을 만나러 간 겁니다. 결국 아이를 외국으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아이를 미행하다 들켜서 사납게 싸운 적도 많았다고 합니다. 당연히 딸은 자신을 믿지 못하고 미행하는 엄마에게 큰 실망을 했고요.
이렇게 했다면 어땠을까요. 다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딸의 친구들을 집이나 밖에서 만나 식사하는 시간을 갖고 진심으로 내 자식처럼 여기는 마음으로 대했다면요. 내 아이가 왜 그 친구들을 기를 쓰고 만나려고 하는지, 내 아이에게 있어 친구는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청소년기에 맺어야 할 건강한 우정을 조언해 주는 일도 병행하면 금상첨화겠지요.
또 아이가 친구 집에서 자고 오겠다고 하면 “무조건 잠은 집에서 자야 한다.”며 원칙을 고집하기보다 친구의 부모에게 연락해서 하룻밤 불편함을 끼치는 것에 대해 사과하고 아이를 잘 부탁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게 안전합니다.
지금의 아빠, 엄마도 어릴 적에 친구 집에서 하룻밤 자고 오기 위해 부모님께 떼를 썼던 적이 있었을 겁니다. 친구 집에서 밤새 만화책을 보고 수다를 떨면서 해방감을 맛보았던 달콤한 시간에 대한 추억을 간직한 부모라면 아이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을 테지요. 내 아이의 친구 부모를 믿고 그 집이 안전하다고 여겨지면 하루쯤은 양보를 해도 될 듯합니다.
아름다운 우정을 맺은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이나 동화책, 청소년 문학을 권해도 좋을 듯합니다. 그림책으로는 흑인과 백인 아이의 인정을 초월한 우정을 그린 『1964년 여름』(느림보), 동화책으로는 조선시대 실학자 이덕무와 벗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만 보는 바보』(보림)는 생각할 거리를 줍니다. 또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빨강 머리 앤」에도 우정과 모험, 성장통, 그리고 성숙에 이르는 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어릴 적에 그림책으로 보았더라도 청소년 눈높이에 맞춘 책으로 다시 한 번 읽어 보기를 권합니다.

사춘기의 일반적인 모습 #5 왜 사는지,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선생님. 요즘은 내가 왜 사는지,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그냥 뭐가 잘못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하는 거랑 모든 게 반대로 가는 것 같은데 이 느낌 도대체 뭐죠?”
“내가 제 정신이 아닌가 봐요.”
이 말들은 청소년들이 곧잘 하는 얘기입니다. 아이가 무모하고 충동적이다가도 갑작스레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속내를 털어 놓을 때는 정말 진지하게 들어 주고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 사춘기 청소년을 때로 진지하게 만드는 자아 정체감에 관한 이야기
‘나는 누구인가?’ 이는 자아 정체감의 혼란을 겪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자아 정체감이란 다른 사람과 자신이 다름을 인식하고 그 차별성을 발견하는 것이지요. 즉 차별성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인데, 청소년들이 유난히 자아 정체감의 문제로 힘들어 하는 이유는 이로 인한 갈등이 이 시기에 처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내가 왜 사는지”,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어요.”라는 말을 할 때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까요. 참 어렵습니다. “글쎄!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게 인생 아닐까.” 이런 식으로 교과서에 나올 법한 얘기를 한다면 아이는 고리타분하다 할 것이고, “그건 네가 더 잘 알고 있겠지.”라고 한다면 어른으로서 무책임한 대답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놓치지 말아야 하는 사실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정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답답한 마음을 알아주길 바란다는 것입니다. 어른을 향해 자기 얘기를 들어 달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지요. 우정, 공부,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마음이 무거운 이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요? … 그림책 읽어 주기를 해 봤어요.
제가 아는 한 엄마는 어느 날부터 중학교 1학년인 딸이 정체감 혼란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이자 매일 밤 딸에게 그림책을 읽어 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엄마는 그림책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됐는데 너도 다시 그림책을 볼래? 엄마가 읽어 줄게.” 딸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을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보면 아이의 혼란스러운 마음이 조금이라도 가라앉지 않을까 하고요. 아이가 어릴 적에 보았던 그림책은 이미 집에서 사라진 지 오래지만 초등학교에서 그림책 읽어 주기 봉사 활동을 하면서 다시 구입하게 된 그림책을 딸아이에게 먼저 보여 주었습니다.
처음에 딸의 반응은 “엄마는 생뚱맞게 무슨 그림책이야.”였지만 차츰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쯤 지나면서부터는 딸이 엄마랑 그림책 읽는 시간을 은근히 기다리는 모습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때로는 그림책 봉사 활동을 하러 가기 전에 딸 앞에서 시연을 해 보였는데 “엄마! 그건 그렇게 읽으면 재미없어서 애들이 싫어해. 조금 더 감정을 넣어 봐.”라면서 코치를 하거나, 답답할 때는 자기가 직접 시범을 보여 주기도 했고요.
딸은 엄마가 봉사 활동을 다녀온 날 저녁이면 초등학생 아이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엄마에게 묻고 자기가 어릴 적에 재미있게 봤던 그림책 제목을 찾아 주는 등 엄마의 일에 부쩍 관심을 가졌습니다. 어느새 “내가 누구인지, 왜 사는지 모르겠어.”라며 한탄하던 딸의 고민은 ‘쏙’ 들어가 버리고 그림책으로 소통하는 모녀가 되었다며 한껏 자랑을 하더군요.
딸과 함께 그림책을 읽고 나서 생각을 나누고, 만들기와 그리기, 색종이 접기를 하면서 아이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새삼 추억 놀이를 하고 또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딸이 어릴 적에 왜 조금 더 애정을 담아 그림책을 읽어 주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와 반성이 생겼다고 덧붙였습니다. 때로는 자아 정체감의 혼란을 겪고 있는 사춘기 자녀에게 가만히 그림책 한 권을 읽어주는 것도 매력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청소년의 뇌에 휴식을 주는 그림책
사춘기 청소년들이 오히려 그림책의 매력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많은 집단 상담을 진행하면서 알게 됐습니다. 빡빡한 교과서와 머리 아픈 영어 ․ 수학 교재들, 대학 입시를 위해 읽어야 하는 수많은 고전들, 일찍부터 봐야 하는 청소년을 위한 자기 계발서까지 청소년에게는 과제가 너무 많습니다. 지금 아빠 엄마들에게 다시 청소년기로 돌아가겠느냐고 물어보면 모두들 손사래를 치며 싫다고 합니다. 지금 아이들이 하고 있는 학습량을 절대 소화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청소년들은 오죽 머리가 아플까요. 그래서 저는 연구소의 상담사들과 함께 청소년 대상 독서 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도 그림책을 80퍼센트 이상 활용하면서 10대들의 뇌를 쉬게 해 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모험인 셈이지요. 아직까지 그림책 하면 유치원생이나 초등 저학년이 보는 책이라는 인식이 강해서 학교 선생님들을 설득시키는 과정이 필요하고, 라포 형성이 되기까지 그림책을 보여 주는 상담사들의 활동에 싸늘한 반응을 보이는 학생들의 마음에 가 닿는 시간도 필요하고요.
하지만 이 모험을 계속하는 이유는 처음에는 모두들 그림책을 유치하게 생각하지만 『겁쟁이 빌리』(비룡소)를 읽고 찰흙으로 걱정 인형을 만들어 자기 고민을 털어 놓는 치유 활동, 『나는 기다립니다』(문학동네)를 보고 기다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삐딱하던 사춘기 청소년들의 자세가 그림책을 향해 바짝 다가와 있는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기 때문이지요.
최근에는 『이랴 이랴』(아지북스)처럼 재미있고 유쾌한 그림책에서부터 『까만 코다』(북극곰)처럼 가슴 뭉클한 그림책, 팝업북으로 만나는 『어린왕자』(문학동네), 생각할 거리를 주는 『첫 번째 질문』(천 개의 바람) 같은 그림책을 두루 보여 주며 청소년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늘을 보았나요? 하늘은 멀었나요? 가까웠나요? 구름은 어떤 모양이던가요? 바람은 어떤 냄새였나요? 좋은 하루란 어떤 하루인가요? 오늘 “고마워.”라고 말한 적이 있나요? 창문 너머, 길 저편에 무엇이 보이나요? 빗방울을 가득 머금은 거미줄을 본 적이 있나요? 떡갈나무 아래나 느티나무 아래서 문득 걸음을 멈춘 적이 있나요? 길가에 선 나무의 이름을 아세요? 나무를 친구라고 생각한 적이 있나요? … “아름다워!”라고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좋아하는 꽃 일곱 가지를 꼽을 수 있나요? 나에게 ‘우리’는 누구인가요? … 몇 살 때의 자신을 좋아하나요? 잘 나이 들어 갈 수 있을까요? 세상이라는 말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풍경은 어떤 건가요? …
―『첫 번째 질문』중에서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도 있지만 어려운 질문도 있습니다. 많은 질문들에 대답하기 위해 나와 나를 둘러싼 자연, 그리고 사람들을 천천히 관찰하다 보면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에 대한 답을 어렴풋하게나마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정답은 알 수 없지만요. 생각은 자꾸 바뀌는 거니까요.
한번은 중학교 2학년 남녀 20명과 학생들의 엄마 20명과 함께 그림책 힐링 시간을 가졌습니다.『우리 엄마』(웅진주니어)를 보여 주고 나서 학생에게는 엄마의 얼굴을, 엄마에게는 아이의 얼굴을 그려 보게 했는데 극과 극의 반응이 나왔습니다. 학생들은 대부분 엄마 얼굴을 예쁘게 꾸며서 그리는 대신 뇌 구조 분석을 해 놓았더군요. 엄마의 뇌 속에는 드라마, 돈, 화장품, 피부 관리, 아빠 건강 걱정, 나의 성적 걱정이 들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우리 엄마는 ( )이다.”라는 문장의 괄호 안에는 집 주인, 이중인격자, 야누스, 돈, 잔소리 마왕처럼 부정적인 단어를 적어 놓았고요.
그런데 엄마들은 달랐습니다. 내 아들, 딸의 얼굴을 최대한 예쁘고 멋있게 그리고 “우리 딸은 ( )이다.”라는 문장의 괄호 안에는 천사, 영부인, 아이스크림, 행복, 즐거움, 환희처럼 아름다운 단어를 적어 놓았지요.
사춘기 청소년과 엄마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가 이렇게나 크다는 사실을 확인한 엄마들은 실망한 표정이었지만, 10대들의 발달 특징과 심리에 대해 설명해 주고 나니 굳었던 표정이 풀리더군요. 전쟁 같은 이 시기가 지나면 아이들의 뇌는 어느새 리모델링 작업이 마무리되어 종잡을 수 없는 외계인에서 듬직한 아들, 딸로 성장해 있을 거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습니다.

사고력이 자란 청소년들이 더 재미있어 하는 그림책 『이봐요, 까망 씨!』
최근 한 달 동안 만난 청소년들에게는 데이비드 위즈너의 『이봐요, 까망 씨!』를 부지런히 보여 줬습니다. 데이비드 위즈너의 그림책은 이해하기 난해한 판타지 그림책이라 한편으론 고약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청소년들의 반응은 굉장합니다. 자기식대로 해석해서 떠들고 웃느라 금세 교실이 왁자지껄해집니다.
『이봐요, 까망 씨!』의 주인공은 고양이 ‘까망 씨’입니다. 주인이 내민 장난감 금붕어에도, 복도에 죽 늘어선 장난감들에도 관심 없고 심드렁하지요. 그런 까망 씨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작은 금속 우주선. 우주선에는 이제 막 지구에 도착해 기뻐하는 초록 외계인들이 타고 있습니다. 까망 씨가 우주선을 이리저리 굴리자 우주선 안에서는 난리가 납니다. 외계인들은 고장 난 장비를 고치기 위해 우주선에서 살금살금 탈출하고 이를 본 까망 씨가 외계인들을 덮치려는 순간, 외계인들은 곤충들의 도움을 받아 벽장 뒤로 숨어 들어갑니다. 벽장 뒤에는 곤충들이 그린 벽화가 가득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까망 씨와 싸워 온 곤충들이 그 기록을 벽화로 남긴 것이지요.
외계인들은 외계어로, 곤충들은 곤충의 언어로 말하지만 동병상련하며 우정을 나눕니다. 그사이 까망 씨는 벽장 밖에서 벽장만 주시하고 있습니다. 외계인들과 곤충들은 고장 난 장비를 고치고, 마침내 긴박한 탈출 작전을 시작합니다. 달려드는 까망 씨를 곤충들이 이리저리 유인한 사이, 외계인들은 우주선에 후다닥 올라타고 마침내 우주선은 출발하지요. 잔뜩 골이 난 까망 씨는 날아가는 우주선과 벽장을 향해 그르렁댑니다. 벽장 안에서는 곤충들이 새 역사를 쓰듯 벽화를 그립니다.
심드렁한 까망 씨의 일상인 ‘현실 세계’와 외계인들과 곤충들의 탈출 소동이 펼쳐지는 ‘판타지 세계’를 오가는 유쾌하고 재기 발랄한 이야기입니다. 상상력이 부족한 독자들이라면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도서 정보의 도움을 받으면 좋을 듯합니다.
데이비드 위즈너는 언제나처럼 글 없이 그림 위주로 이야기를 끌고 갑니다. 까망 씨의 이야기도 만화식으로 구성되어 다양한 연출과 다채로운 색감이 마치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합니다. 고양이, 외계인, 곤충의 자연스러운 몸짓과 섬세한 표정을 따라 등장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는 재미가 있지요.
청소년들은 무엇보다 여러 가지 기호가 조합된 외계인들의 외계어와 곤충들의 곤충 언어, 곤충들이 남긴 벽화에 열띤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들이 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는지 상상해서 이야기해 보라고 하면 별별 얘기들이 다 나옵니다. 마치 사춘기 청소년들의 뇌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처럼요. 자기들끼리 아는 단어로 소통하며 박장대소를 하는데, 그래서 가끔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아듣지 못해 난감할 때도 있지만 그들의 은어를 배워 가면서 소통을 하는 일이 익숙하고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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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춘기 청소년들은 심각한 것보다 재미있고 유쾌한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깊이 생각도 안 해 보고 즉흥적으로 대답할 때가 대부분이지만 그렇게라도 대답해 주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있는 대로 하기 싫은 티를 내는 것 역시 건강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상담사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다만, 친구들 사이에서 강한 이미지를 얻기 위해 욕설을 내뱉는다거나, 가만히 앉아 있는 친구의 머리를 때린다거나 비난하는 말을 할 때는 규칙을 정해 제제를 가합니다. 이해는 하지만 방치는 안 된다는 원칙을 언제나 새기기 때문이지요.

어떤 엄마는 아들의 첫 반항을 기다리면서 남편과 의논했다고 합니다. 첫 반항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고요. 드디어 아들의 반항과 처음 마주했을 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고 하더군요. “아들아! 나는 참 기쁘다. 네가 반항을 하는 것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는 증거라서 엄마는 그 반항, 인정하고 반긴다.”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들은 정말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엄마! 좀 이상한 거 아니가. 아들이 반항하면 야단을 쳐야지 뭐하는 건데.”라면서 재미없다는 듯한 기색을 보였다고 합니다. 결국 이 엄마는 그야말로 시시하게 아들의 사춘기를 맞이했다는 얘기를 하면서 씁쓸해하기에 다른 엄마들이 부러운 듯 바라보는 일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다가올 내 아이의 첫 반항을 기다리며 아이의 사춘기를 어떻게 준비하고 계시는지 여쭈어 봅니다.

▼참고 문헌
김영아, 『십대라는 이름의 외계인』(라이스 메이커 펴냄, 2012)
조아미, 『1318 청소년심리』(이너북스, 2008)
바버라 스토로치, 『십대들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해나무, 2004)
존 카트맨 ‧ 최성애 ‧ 조벽, 『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한국경제신문, 2011)


d_img4글 : 김은아 (마음문학치료연구소 소장, 행복한그림동화책연구소소장)
대학에서 국어 국문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아동가족상담과 문학치료학을 공부했습니다. 현재 행복한 그림동화책 연구소와 마음문학치료 연구소를 운영하며 대학에서 아동상담과 아동문학, 부모교육 등의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어린이책 기획자, 특별 기고가로서 어린이책의 매력을 전하기도 합니다. 그림책으로 마음 나눔을 실천하고자 행복한 도서관 만들기 운동과 다문화 가정 그림책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1. 이수아
    2014.7.9 11:5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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