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심리 여행: 옛이야기 그림책은 아이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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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공부하는 엄마들과 함께 올 여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림책에 관한 다양한 이론을 만나면서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그림책들을 감상하는 시간을 갖고 있는데 모두들 이때만큼은 집안일, 아이들, 미래에 대한 걱정을 잊고 동심으로 돌아간 듯 평화로운 표정입니다.

▲ 『해와 달이 된 오누이』

하루는 옛이야기 그림책을 잔뜩 들고 가서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 하고 시작하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비룡소)를 펼쳐 보였는데 판타지나 사실주의, 지식 정보 그림책을 보여 줄 때보다 더 관심 있게 보는 겁니다.
어릴 적에 봤던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떠올리며 대화를 나누는데, 호랑이에게 사지를 뜯어 먹히고도 아이들 걱정에 데굴데굴 굴러 집으로 간 엄마를 호랑이가 잔인하게 삼켜 버리는 장면에 큰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야기를 꺼낸 분은 여기에 덧붙여 수수밭에 떨어져 죽은 호랑이와 벌건 피 같은, 옛이야기의 잔혹함이 성장하는 아이에게 트라우마로 작용할 수도 있는지 물었습니다.
옛이야기가 유아동의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들은 수없이 쏟아지고 있지만, 그 잔혹함 때문에 충격 받아서 잘못된 사람이 있다는 연구 결과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는 저의 우스갯말에 모두들 한바탕 웃고 넘어갔지만, 한편으로 반성의 시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옛이야기 하면 ‘권선징악’이 전부라거나, 엄마들 사이에서 흔히들 명작 동화라 불리는 옛이야기들이 남녀 성역할에 대한 고정 관념을 심어 놓는다거나, 「백설 공주」나 「신데렐라」 이야기는 외모 지상주의를 부추긴다고 걱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옛이야기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이 어쩌면 옛이야기 그림책에 대한 편견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가더군요.
독서 교육을 주제로 부모 교육을 할 때마다 엄마들이 빠짐없이 하는 질문이 옛이야기 그림책에 관한 것입니다. 주로 잔혹한 내용을 아이한테 보여 줘도 되는지, 몇 살 때부터 보여 주면 되는지, 어떤 출판사 책이 좋은지에 관해서 묻습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부분은 왜 아이에게 옛이야기 그림책을 보여 줘야 하고, 이 그림책들이 한 사람의 성장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아는 것이 아닐까요? 옛이야기 그림책이 지닌 교육적 가치와 이들이 유아의 심리 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공부한다면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옛이야기 그림책이 담은 메시지가 결코 예사롭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겁니다. 이는 옛이야기가 지닌 표면적 의미를 넘어 심층적 의미까지 볼 수 있게 된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무더운 8월에는 잔혹성 때문에 조금은 오싹하지만 아이들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재미와 감동이 함께 하는 옛이야기 그림책에 관한 이야기를 펼쳐 보겠습니다. 알고 보면 더욱 재미있는 옛이야기 그림책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옛이야기는 어떤 힘을 갖고 있을까요?
옛이야기 그림책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옛이야기를 공부해 보겠습니다. 옛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을 통칭하여 옛이야기 그림책이라 부르므로 옛이야기를 모르고 옛이야기 그림책을 논할 수는 없겠지요.
먼저 아래의 글을 읽고 이야기의 힘, 즉 이야기가 어떤 가치를 담고 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200년도 더 전인 1794년, 겨우 아홉 살 난 아이가 외과 수술을 받게 되었다. 당시는 파스퇴르가 의학계에 멸균의 중요성을 계몽하기 전이었고 항생제도 발견되지 않았다. 고통을 줄여주기 위한 마취제도 없었으니 수술을 앞둔 아이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아이에게 어떤 것도 해줄 수 없는 가운데 수술실에서는 하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 이야기가 얼마나 매혹적이었던지 나중에 아이는 수술이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고 털어 놓았다. 18년 뒤에 소년은 수술대에서 들은 이야기를 출판하게 되었는데 그 이야기는 바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꾼인 Jacob Grimm(1785~1863)의 ‘백설공주’이다. 이야기가 정말 그토록 놀라운 힘을 가질 수 있는 걸까? 소년에게는 확실히 그랬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마음을 치유하는 101가지 이야기』 (학지사) 중에서

Jacob Grimm의 일화는 우리에게 이야기가 지닌 치유의 힘을 말해 줍니다. Jacob Grimm은 수술대 위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듣고 거기에 빠져듦으로써 자신이 수술을 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릴 수 있었지요. 이처럼 때때로 이야기는 우리를 두려움과 공포감에서 벗어나게 하며 육체적인 고통을 덜어 주기도 합니다. 한편 수술대 위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려 노력한 부모와 의료진의 인간적 자질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 어른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인 듯해서요.
≪창비어린이≫ 제4호(2004년 봄)에 「옛이야기는 살아있다」라는 제목의 특집 인터뷰가 실려서 서정오 선생님을 비롯한 옛이야기 작가, 옛이야기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있는데, 그림책 심리 여행을 준비하면서 다시 펼쳐 보았지요. 그 안에는 우리 옛이야기에 관한 자부심과 현재적 가치,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관한 깊이 있는 성찰이 담겨 있습니다.
그림책 편집자이자 옛이야기 작가인 김장성 씨는 옛이야기에 대해 “특별히 마셔 본 기억은 없으나 꾸준히, 숱하게 마셔 온 정신의 ‘물’ 같은 것, 새삼 의식하지는 않았으나 삶의 중요한 조건이었던 문화의 ‘공기’ 같은 것”이라 했습니다. 이 말은 곧 옛이야기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무의식 속에 쌓인 정신의 밑거름이 아닐까 합니다.
『해치와 괴물 사형제』(길벗어린이), 『열두 띠 이야기』(보림)를 쓴 정하섭 작가는 사랑과 우정, 억압과 투쟁, 모험과 성장이라는 삶의 과제를 수행하면서 겪는 인간의 갈등 양상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다르지 않다고 했습니다. 세상살이의 근원적인 문제들을 ‘옛날’이라는 가상의 시공간에 풀어놓고 독자들을 그 핵심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시대와 환경이 바뀐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옛이야기가 어린이들로부터 사랑받는 이유이자 그 가치가 빛나는 이유라고 설명했지요.
옛이야기 들려주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많은 옛이야기 모음집을 펴낸 서정오 작가는 아이들은 이야기와 함께 자란다고 했습니다. 이야기와 함께했을 때 비로소 아이들은 아이답게 자랄 수 있으며 아기자기하고 자유분방한 옛이야기는 아이들의 잠든 상상력을 일깨우고 그 상상력은 창조의 밑거름이 된다고 했지요.
한편으로 옛이야기는 종종 현실 비판과 풍자를 통해 아이들에게 준엄한 진실을 가르치지만 결코 무겁거나 따분하지 않고 친근합니다. 그 이유는 옛이야기의 가르침이 재미와 은유의 수풀 속에 숨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직설적으로 가르치거나 작정하듯 교훈적인 내용을 내보이는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키지만 재미와 은유의 수풀 속에 자연스레 숨겨 놓은 가르침은 대부분 눈치조차 챌 수 없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쌓이고 쌓여 세상살이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는 의미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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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 브루노 베델하임이 말한 옛이야기의 가치
심리학자이자 정서 장애아 치료와 교육으로 유명한 브루노 베텔하임은 『옛이야기의 매력 1, 2』(시공주니어)이라는 책에서 우리가 왜 옛이야기를 가치 있게 여겨야 하고, 어린이 교육에 왜 꼭 필요한지를 심리학자의 눈으로 풀어냈습니다.
브루노 베텔하임은 정서 장애 아동을 교육하고 치료하면서 그 아이들에게 삶의 의미를 되찾아 주는 일에 온 신경을 쏟았습니다. 그러면서 어린이들이 보편적인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데는 부모와 보호자의 영향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작용하며 그다음으로 문화적인 유산인 문학, 그중에서도 옛이야기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지요. 도대체 옛이야기 속에 어떤 힘이 들어 있기에 심리학자가 이토록 극찬한 걸까요?

프로이트의 처방에 의하면 인간은 자기를 압도하듯 보이는 것들에 용감하게 대항함으로써 자기의 존재 의미를 찾는 일에 성공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옛이야기가 어린이들에게 다양한 형태로 전달하는 메시지이다. 삶의 가혹한 어려움에 대처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측면이다. 그러나 소심하게 피하지 않고 예기치 못한 곤경이나 부당한 어려움에 대항해 싸우다 보면 어느새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여 승리하게 된다는 메시지가 모든 옛이야기에 들어 있다.
―『옛이야기의 매력 1』(시공주니어) 중에서

그는 모든 관점에서 볼 때 옛이야기만큼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만족감을 주는 것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기원을 알 수 없을 만큼 오래됐거나 수백 년 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옛이야기가 현대 사회에 필요한 삶의 상황들에 대해 어떻게 하라는 식의 직접적인 가르침은 주지 않는다 해도 어린이들이 읽는 어떤 유형의 이야기보다 인간의 내면 문제들에 대해 많은 가르침을 주고 그들이 처한 난관에 알맞은 해결책을 제시한다고 했지요.

▲ 『헨젤과 그레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브루노 베텔하임은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를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가난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버리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야기 속에는 아이가 발달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분리 불안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부모에게 버려져 집에 돌아가지 못할까 봐 빵 조각이나 돌멩이를 동원해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계속 애쓰는 모습은 부모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이들의 불안한 심리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결국 헨젤과 그레텔은 분리 불안과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마녀와 대결한 끝에 행복한 결말을 맞이합니다. 위험한 상황에 용기 있게 직면해야 한다는 준엄한 가르침 또한 느낄 수 있습니다. 만약 남매가 끝까지 집으로 돌아갈 궁리만 하고 아빠 엄마에게 매달리려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시대적 배경과 상황은 다르지만 헨젤과 그레텔의 행동은 엄마랑 떨어지는 게 불안해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가지 않으려고 떼를 쓰는 아이가 결국 분리 불안을 극복하고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더 많은 경험과 배움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과도 흡사합니다.
마녀가 살고 있는 과자집 역시 단순히 아이들의 로망, 판타지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과자집은 주위에 도사리고 있는 유혹을 상징합니다. 달콤한 유혹 뒤에는 반드시 위험이 숨어 있으며, 그 유혹에 넘어가면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담고 있지요.
물론 아이들은 이런 옛이야기를 듣거나 그림책을 보면서 깊이 있는 생각 또는 해석을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재미있게 또는 오싹하게 들을 뿐입니다. 엄마들 또한 옛이야기가 지닌 심층적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옛이야기 그림책을 보여 줍니다. 하지만 옛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옛이야기 그림책을 읽어 주는 일은 분명 엄마와 아이를 동시에 성장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옛이야기는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을까요?
옛이야기의 구성은 직선적이고 단순합니다. 모든 상황을 단순화시키지요. 그래서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고 한 번만 들어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또 등장인물들은 요즘 어린이책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개성이 충만하거나 생각이 복잡하지 않습니다. 착하거나 나쁘거나, 지혜롭거나 어리석거나, 부지런하거나 게으르거나,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당연히 주인공은 전자, 주변 인물 또는 악인들은 후자입니다.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인물들은 드물지요. 이처럼 상반되는 인물을 등장시키는 것은 아이들이 둘의 차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많은 옛이야기들이 주인공의 심리적, 신체적, 환경적 결핍을 묘사합니다. 부모 중 어느 한쪽의 죽음, 계모의 학대, 쫓겨나거나 버림받음, 가난, 장애를 겪거나 남들과 다른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태어나는 식이지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콩쥐 팥쥐, 해와 달이 된 오누이, 바리데기, 백설 공주, 신데렐라,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가 대표적인데 어린 주인공들에게 가혹하다 싶을 정도의 큰 시련이 주어집니다.
엄마들은 이런 옛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을 보여 주면서도 한편으론 마음이 불편합니다. 과연 아이 교육에 적절한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지요. 주인공을 둘러싼 이들은 악하기 짝이 없고 사람을 괴롭히는 기술이 대단해 보입니다. 아직 어린 내 아이에게 사람들은 착하다고 말해 주고, 세상의 밝은 면만 보여 주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인데 콩쥐를 괴롭히는 팥쥐와 새엄마, 신데렐라를 괴롭히는 언니들과 새엄마, 딸을 질투하는 왕비의 행동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하고 어떻게 설명해 줘야 하는 걸까요?
그런데다 옛이야기 그림책을 읽고 아이가 슬프고 심각한 표정으로 “엄마도 나 버릴 거야?”, “만약 엄마가 일찍 죽으면 나는 어떻게 해야 돼?”, “새엄마는 다 나쁜 거야?” 하고 물어 올 때면 정말 당혹스럽습니다. 이 같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옛이야기의 매력을 설파하는 이들은 이러한 이야기들이 아이의 내적인 성장을 돕는다고 확신합니다.
브루노 베텔하임은 주인공이 차지해야 할 지위를 일시나마 악한 사람들이 차지했다 할지라도 마지막에 악인은 벌을 받고, 착한 주인공은 시련을 극복하여 마땅히 누려야 할 자기 자리로 돌아와 행복하게 살게 되는 결말은 아이들에게 바람직한 인물과의 동일시를 통하여 인격이 자라도록 도와준다고 했습니다.
옛이야기는 무조건 권선징악만을 담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잭과 콩나무」나 「장화 신은 고양이」와 같은 이야기는 좀 다릅니다. 잭은 거인의 보물을 훔쳐서 부자가 되고 장화 신은 고양이는 속임수로 성공합니다. 도둑질과 속임수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도둑질과 속임수를 미화하는 이 이야기들이 교육에 적절하지 않다고 봐야 할까요? 하지만 오래도록 전해져 온 만큼 의미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옛이야기를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면 피곤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엄마들이 옛이야기를 공부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브루노 베텔하임은 「잭과 콩나무」나 「장화 신은 고양이」와 같은 이야기들은 보잘것없는 인물도 인생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아이들에게 심어 줌으로써 인성 발달을 돕는다고 강조했습니다. 자신을 하찮게 여기고 아무 일도 못 해낼 거라며 자신 없어 하는 아이에게 도덕성보다 중요한 것은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 주는 것이므로 이런 옛이야기도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옛이야기는 왜 그렇게 잔혹할까요?
어느 나라든 민중들이 가난과 기아에 찌들어 살았던 암울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근대 이전에는 자식을 키울 능력이 없는 부모들이 갓 태어난 자식을 죽이거나 버리는 일이 드문 일이 아니었지요. 아이들은 일찍부터 구걸을 하러 나서거나 돈벌이 수단이 되었습니다. 비좁은 집에서 부모의 성생활을 눈으로 직접 보는 일도 허다했고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문란한 성행위의 쾌락에 빠져들기 쉬웠습니다. 배움의 기회를 누리거나 자아 실현의 욕구를 채우는 일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시대를 살았던 민중들은 오직 생리적 욕구와 안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급급한 채 하루하루를 연명해 나갔습니다. 옛이야기 속에 가난과 잔혹함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암울한 시대를 산 민중들의 이야기에서 옛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엄마들 입장에서는 여전히 옛이야기의 폭력성과 잔혹성이 마음에 걸립니다. 다행히 지금 우리 아이들이 만나는 옛이야기들은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오랜 세월 계속 다듬어져 왔기에 폭력성과 잔혹성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 호랑이가 “팔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다리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면서 날름날름 엄마의 사지를 먹어 버리는 장면은 요즘 출간되는 그림책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지요.
「신데렐라」와 「백설 공주」 이야기도 원래는 어른이 들어도 소름 끼칠 정도로 잔인합니다. 신데렐라의 언니들이 유리 구두에 큰 발을 맞추려고 발가락을 잘라 내고 피를 철철 흘리며 달궈진 쇠 구두를 신은 채 평생 폴짝폴짝 뛰어다녔다는 이야기, 계모인 줄 알았던 왕비는 백설 공주의 생모였으며 왕이 욕정을 이기지 못해 친딸을 취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아 친딸을 죽이려 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지요.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서울문화사)와 같은 류의 책들이 바로 잔혹한 옛이야기를 담고 있지요.
중요한 사실은 옛이야기가 옛사람들이 살아온 모습을 숨김없이 날 것 그대로 담아내, 민중들의 삶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부끄러워해서도 안 되고, 부인해서도 안 되는 우리 역사의 한 부분으로 봐야 한다는 의미지요.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지금도 잔혹한 이야기는 계속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시대와 내용이 다를 뿐이지 어쩌면 그 옛날보다 더욱 잔인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날의 이야기들이 전해져 다음 세대들에게 전해진다면 후손들도 옛이야기가 잔혹하다고 말하지 않을까요?

옛이야기 그림책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지금부터 옛이야기 그림책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옛이야기 그림책이란 옛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을 말합니다. 말 또는 글로 되어 있는 옛이야기(신화·전설·민담)를 그림책 형식에 맞추어 재창작 또는 가공해 낸 것을 말하지요.
비슷한 이야기이지만 여러 출판사와 작가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는데 그림책 작가마다 가치관과 표현해 내는 등장인물의 이미지가 달라서 그림의 분위기나 내용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엄마들은 흔히 “같은 반쪽이 이야기인데 왜 그림책마다 내용이 달라요?”, “같은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인데 왜 그림책마다 결말이 달라요?”라는 질문을 자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차이는 옛이야기 그림책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전혀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옛이야기들은 인류가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의식인 ‘원형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원형성은 이야기가 변형되더라도 잘 변하지 않는 중심 모티브입니다.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때마다, 책으로 나올 때마다 여러 가지로 변형되지만 원형성이 살아 있으면 어떤 출판사의 책을 선택해도 괜찮습니다. 옛이야기는 구전 문학이므로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동안 수많은 이야기로 변형이 되었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가 ‘맞다’, ‘맞지 않다’라는 관점에서 논할 수 없습니다.
옛이야기 그림책은 신화, 전설, 민담을 소재로 하여 만들어집니다. 신화는 그 민족의 믿음에서 연유한 이야기로 초자연적인 힘이 강하게 작용하므로 신화를 소재로 만든 그림책은 내용이 묵직하고 웅장한 느낌이 듭니다. 『해치와 괴물 사형제』(길벗어린이), 『마고할미』(보림), 『창조의 신 소별왕 대별왕』(한겨레아이들), 『백두산 이야기』(보림), 『단군신화』(보림)가 대표적입니다.
0808_img_02전설은 생물, 무생물, 자연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 또는 역사적인 인물이나 사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신화와 마찬가지로 상상의 이야기이지만 좀 더 역사적인 사실과 관계가 있고 초현실적인 것에 덜 의존하므로 전설을 소재로 만들어진 옛이야기 그림책은 신화를 소재로 한 그림책보다 재미가 있습니다. 『어처구니 이야기』(비룡소), 『도솔산 선운사』(한림출판사), 『인디언 붓꽃의 전설』(물구나무), 『신발나무의 전설』(마루벌), 『견우와 직녀』(비룡소, 국민서관)등이 있습니다.
민담은 민중들 사이에서 세대를 거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로 우리나라 옛이야기 그림책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옛이야기 그림책 역시 민담을 바탕으로 한 것들이지요. 『우렁각시』(길벗어린이), 『해와 달이 된 오누이』(비룡소, 보림), 『나무꾼과 선녀』(비룡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보리), 『반쪽이』(비룡소, 보림, 시공주니어), 『팥죽할멈과 호랑이』(비룡소, 보리, 시공주니어), 『도깨비와 범벅 장수』(국민서관), 『여우누이』(사계절), 『훨훨 간다』(국민서관), 『신기한 그림 족자』(비룡소), 『재주 많은 다섯 친구』(보림), 『구렁덩덩 새 신랑(선비)』(비룡소, 보림), 『호랑이와 곶감』(국민서관) 등이 우리나라의 민담 그림책입니다. 외국의 민담 그림책으로는 『토끼코는 왜 움쭐거릴까요?』(한림출판사), 『개구리 왕자』(시공주니어), 『태양으로 날아간 화살』(시공주니어),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 염소』(비룡소), 『수호의 하얀 말』(한림출판사)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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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오 선생님은 옛이야기 그림책이 글자에 익숙하지 않은 유아들에게 이야기의 맛을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귀로 들어야 제 맛이 나는 옛이야기들이 그림책으로 출간되면서 아이들의 상상력을 좁혀 놓는 한계를 염려했는데 이 점은 옛이야기 그림책을 만드는 이들에게 주어진 과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옛이야기 그림책으로 아이에게 추억을 선물하세요
올해 1월, 재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도서관에서 그림책을 주제로 강의하던 날이었지요. 할머니 한 분이 갑자기 옛이야기를 하나 들려주고 싶으니 10분만 시간을 달라는 겁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듣기 시작한 할머니의 이야기에 어느새 아줌마 청자들이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옛날 옛적에…….” 하고 시작되는 이야기에 말이지요.
할머니의 목소리는 참으로 구수했습니다. 손자, 손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내는 할머니의 모습에는 진정성이 담겨 있었고 가벼운 몸짓에서는 흥겨움이 느껴졌습니다. 이야기가 끝남과 동시에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하나 더 들려주세요.”라며 아이처럼 떼를 썼지만 할머니는 제 강의 시간을 더 빼앗으면 안 된다며 기회가 되면 다시 만나자고 하셨습니다.
할머니는 40~50대 아줌마들에게 추억이라는 소중한 선물을 하고는 급한 일이 있다며 먼저 가셨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여운을 곱씹으며 어린 시절로 돌아가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으로부터 들었던 옛이야기로 화제를 돌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잊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추억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요.
그렇습니다. 옛이야기는 추억을 선물하는 매개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아빠 엄마한테 “재미나는 이야기 들려줘.”라는 말 대신 “이 그림책 읽어 줘.” 하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만나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를 조르는 모습은 보기 드문 풍경이 되어 버렸습니다.
지금의 젊은 부모들도 할아버지 할머니 또는 부모로부터 이야기를 듣기보다 책을 보고 자란 세대여서 옛이야기 듣기에 관한 추억이 별로 없습니다. 어떤 측면에서 무척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할머니의 옛이야기는 연구소에 있는 서정오 선생님의 옛 이야기 모음집을 비롯해서 한국과 외국의 옛이야기 그림책을 다시 보게 했습니다. 추억 찾기의 일환인 셈이었지요. ‘언제 이 많은 책을 샀지?’ 꽤 많은 양의 이론서와 그림책에 저도 놀랐습니다. 사 놓고 읽지 않은 책도 꽤 있었습니다. 책을 홀대한 것이지요. 한편 그림책 보여 주기를 주로 해 온 저의 강의와 아이들과의 소통 방식을 돌아보며 ‘그 할머니한테서 느껴졌던 흥이 과연 내게도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더군요.
어쩌면 지금까지 그저 편하게 그림책의 텍스트를 읽어 주어 왔는지도 모른다는 반성에 이르렀습니다. 할머니처럼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외우고 또 외우는 노력도 하지 않았고요. 그래서 앞으로는 무조건 그림책을 펼쳐 보여 주기보다 어떤 책은 내용을 잘 기억해 뒀다가 이야기 들려주듯 해 보면 어떨까? 그리고 옛이야기 그림책의 활용도를 높여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부모님들은 요즘 방식에 맞춰 하루에 한 권 옛이야기 그림책을 아이와 함께 읽는 경험을 해보면 어떨까요? 아이에게 추억을 만들어 주는 것이지요. 지금까지는 옛이야기의 가치를 깊이 알지 못한 채 필독서 차원에서 읽어 줬다면 지금부터는 방법을 달리해 볼 수 있습니다.. 엄마가 옛이야기 그림책을 먼저 읽어서 내용을 기억한 다음, 아이의 눈을 맞추며 이야기로 들려줘 보세요. 그다음 옛이야기 그림책을 펼쳐 그림도 함께 보면서 또 다른 느낌으로 옛이야기를 만나 보는 겁니다. 엄마들은 최고의 이야기꾼이 될 자질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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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조지 W. 번스, 김춘경 옮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마음을 치유하는 101가지 이야기』(학지사, 2009)
브루노 베텔하임, 김옥순, 주옥 옮김, 『옛이야기의 매력 1』(시공주니어, 1998)
이지호, 『옛이야기와 어린이문학』(집문당, 2006)
현은자‧김세희, 『그림책의 이해 2』(사계절, 2005)
편해문, 염희경, 김환희, 「옛이야기는 살아있다」, ≪창비어린이≫ 제4호(2004년 봄)


d_img4글 : 김은아 (마음문학치료연구소 소장, 행복한그림동화책연구소소장)
대학에서 국어 국문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아동가족상담과 문학치료학을 공부했습니다. 현재 행복한 그림동화책 연구소와 마음문학치료 연구소를 운영하며 대학에서 아동상담과 아동문학, 부모교육 등의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어린이책 기획자, 특별 기고가로서 어린이책의 매력을 전하기도 합니다. 그림책으로 마음 나눔을 실천하고자 행복한 도서관 만들기 운동과 다문화 가정 그림책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1. 이영수
    2016.5.1 1:29 오후

    아이들이 그림책에 몇세까지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림책에 그림이 없어도 인지하는 나이를 설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