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작가: 『분홍이 어때서』의 하신하 작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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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분홍이 어때서』는 어떤 책인가요? 직접 소개해 주시겠어요?

▲ 『분홍이 어때서』

이 책은 분홍을 사랑하는 누리의 이야기예요. 누리는 색깔 중에 분홍색을 가장 좋아해요. 초등학교에 들어간 유리 언니는 누리가 늘 치마만 입고 유치한 분홍을 좋아한다고 해서 누리더러 공주병이라고 놀려요. 엄마는 누리의 마음을 알아주기는 하지만 분홍이 다 같다고 얘기할 정도로 분홍에 대해서 잘 모르죠. 하지만 누리는 분홍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따뜻한 색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또 분홍은 다른 색과 어울려 있어야 더 예쁘다는 것도 안답니다. 누리는 분홍색에 대한 선입견에도 “분홍이 어때서!”라고 얘기할 줄 아는 당찬 여자아이입니다.
또 늘 바닥을 뒹굴고 더러운 옷을 입고 다니는 남자아이 호준이는 누리가 좋아하는 예쁜 타이즈의 분홍 레이스를 발견하는 안목을 가지고 있지요.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행복하게 지내는 누리의 밝고 따뜻한 분홍 사랑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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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사랑스러운 분홍 공주 누리의 이야기는 어떻게 구상하게 되신 건가요?

img_0_2저는 딸을 둘 키우고 있어요. 그중에 작은 딸이 분홍색과 예쁜 것을 좋아한답니다. 이름이 윤경이인데 누리처럼 잘 웃고 친절하고 싹싹하답니다. 실제로 윤경이가 타이즈만 신고 유치원에 간 적이 있어요. 어떻게든 말려 보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타이즈만 신은 윤경이를 유치원에 데려가야 했어요. 평소 5분 정도 걸리던 유치원에 가는 길이 참 멀게 느껴진 날이었답니다.ㅠㅠ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고, 유치원 선생님도 깜짝 놀랐죠. 이 얘기를 들은 어떤 작가 선생님이 윤경이 이야기를 써 보면 재미있겠다고 글로 써 보라고 권했어요.
또 윤경이가 아기였을 때부터 함께 놀았던 남자 친구가 호준이에요. 이 친구는 개구지고 밝고 씩씩해요. 유치원에서 옆으로 픽픽 쓰러지고 입으로 뭘 빨기를 잘했어요. 지금도 둘은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여전히 잘 논답니다.
이 두 친구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요. 막상 쓰기 시작하니 무척 재미있었어요. 윤경이와 호준이의 평소 말투와 행동이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떠올라서 쓰다가 웃고 쓰다가 웃기를 반복했죠. 동화 작가가 늘 이렇기만 하다면 난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였지요. 곧 다른 이야기를 쓸 때 동화 작가는 너무 괴롭다고 생각하게 됐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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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선생님은 딸이 둘이라고 하셨는데 두 딸도 모두 분홍을 좋아하나요? 그리고 선생님은 어떤 색을 좋아하세요?

큰딸은 중학생인데 옷이나 예쁜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 그 대신 먹을 것에는 관심이 많답니다. 큰딸 주홍이는 옷이 예쁘냐보다는 얼마나 편한가가 중요해요. 윗옷 안쪽 뒷부분에 라벨이 붙어 있잖아요. 그 라벨이 불편하다고 옷을 사면 떼어 달라고 해요. 치마도 안 입고 튼튼한 청바지나 편한 체육복 바지만 좋아하지요. 색깔도 파란색과 보라색 계통을 좋아해요. 밖에서 뛰어노는 것도 좋아하지요. 그러니까 놀기 편한 옷을 찾겠지요?
하지만 작은딸 윤경이는 지금 초등학교 2학년인데 아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쭉 예쁜 것을 좋아했어요. 특히 분홍을 좋아했죠. 윤경이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오늘 입을 옷을 고릅니다. 맘에 드는 게 없으면 한숨을 쉬다가 울어 버립니다. 어린이날, 생일, 크리스마스가 돼서 무엇을 갖고 싶으냐고 물으면 단연코 예쁜 것이라고 합니다.
여자 친구라고 모두가 분홍을 사랑하고, 모두가 예쁜 것을 좋아하는 건 아닌 모양입니다.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게 따로 있고, 그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즐겁게 지내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 별명 중에는 사실 ‘패션 테러리스트’가 있었어요. 옷을 못 입는다고 친구들이 붙여 준 별명이에요. 전 예쁜 옷에 관심이 별로 없어요. 예쁜 물건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문구류는 좋아해요. 대형 문구점에서 노트와 펜, 포스트잇이 있는 코너는 그냥 못 지나갑니다. 방앗간을 못 지나치는 참새처럼 꼭 들려야 합니다. 예쁜 문구를 사서 집에 오는 길이 참 행복해요. 색깔은 굳이 들라고 하면 초록색이 좋아요. 초록색 산과 들판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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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이 책을 통해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분홍은 정말 사랑스러운 색이에요. 마음껏 사랑하라고 얘기하고 싶었어요. 색에 대한 편견 없이 그 자체만으로 사랑하는 거죠. 그리고 분홍은 이상하게 어린이에게 잘 어울려요. 분홍이 잘 어울리는 어린이 때에 분홍을 마음껏 사랑하라고 얘기하고 싶었어요. 그래야 그다음에 좋아질 다른 색도 마음껏 사랑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다 보면 세상의 온갖 색이 다 좋아지지 않을까요?
지금 딸을 키우는 엄마들은 어쩌면 아이의 분홍 사랑에 멀미가 날지도 몰라요. 또 분홍을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있을 수 있겠죠. 여전히 분홍을 사랑하는 어른도 있을 거고요. 무언가 좋아하는 게 있다는 건 아주 행복한 일이예요.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하죠. 그래서 분홍을 사랑하는 어린이들이 마음껏 분홍을 사랑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분홍을 좋아하는 건 공주병이 아니랍니다. 분홍을 좋아하는 건 따뜻하고 사랑스럽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어린이 여러분! 분홍은 유치하고 분홍을 좋아하면 공주병이라는 편견에 굴하지 말고 마음껏 분홍을 사랑하세요. 또 다른 색이 좋아지면 다른 색도 마음껏 사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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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5.작품을 쓸 때의 독특한 버릇이나 습관이라면 어떤 것이 있으신가요?

저는 작품을 써 내려 갈 때는 도서관에 가서 써요. 하루에 어느 정도를 쓰면 저녁에 자기 전에 이부자리에 누운 큰딸과 작은딸에게 읽어 줍니다. 큰딸 주홍이는 저에게는 편집자예요. 아주 잘 들어 주고 꼼꼼하게 지적합니다. 매번 싫은 내색 없이 들어 줍니다. 어느 날은 다 읽어 줬는데 주홍이가 아무 말이 없는 거예요.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엄마, 어제 읽은 거에서 이름만 바뀌었어.” 그럽니다. 저는 하루 종일 고쳤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듣기에는 이름만 바뀌었다는 거예요.
윤경이는 두 번 이상 들으면 싫어해요. 차라리 다른 작가의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졸라서 이 작가 엄마를 삐지게 만듭니다. 그래도 꿋꿋하게 읽어 주면 그냥 자 버려요. 또 어떤 날은 다음 부분이 궁금하다고 어제 그 뒤로 어떻게 됐냐고 묻습니다. 못 썼다고 하면 얼마나 궁금했는데 왜 못 썼냐며 화를 내기도 해요. 순수한 독자지요. 그럼 저는 “어제 그 **는 죽었어!” 이럽니다. 짓궂은 엄마의 장난에 속아 황당해하며 슬퍼하는 윤경이의 표정을 바라보는 게 저의 큰 즐거움 중 하나랍니다.

Q6.선생님은 예전에 방송 작가로 일하신 적이 있으시죠. 어떻게 동화 작가가 되신 거예요?

방송 작가에도 여러 종류가 있어요. 크게 텔레비전인가 라디오인가 나눌 수 있고, 드라마 같은 극을 쓰는 작가도 있지요. 구성 작가도 다큐멘터리, 교양 프로그램, 오락 프로그램 등 여러 분야가 있어요. 저는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교양 프로그램 구성 작가를 했어요. 방송 프로그램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야 만들 수 있어요. 구성 작가는 번뜩이는 아이디와 함께 협동심 같은 사회성도 필요합니다. 구성 작가는 진행자의 입이 되어서 대중들이 원하는 것에 발맞추어야 해요. 또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주어진 시간 안에 일을 끝내야 합니다.
방송 구성 일을 하면서 제일 아쉬웠던 부분은 내가 쓴 원고가 전파가 되어 흘러가 버린다는 것이었어요. 늘 나만의 작품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아이들을 낳고 지내면서 동화를 쓰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을 위해서 동화를 쓰기 시작한 건 아니에요. 내 안에 있던 어떤 씨앗이 여러 장르 중에 동화를 선택했어요. 동화는 하나를 쓰면 또 쓰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어요. 더 잘하고 싶은 욕심도 났고요. 괴롭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그걸 놓지 않고 있는 걸 보면서 이게 나의 길이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지금도 아주 열심히 생각하고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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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7.다음 작품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쓰실 계획이신가요? 앞으로의 작품 계획이 궁금합니다.

지금 시간을 넘어서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쓰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그건 아주 무거운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나중엔 공간을 넘어서 외계인 이야기도 쓰고 싶어요. 저는 솔직히 외계인이 있다고 믿거든요. 이 광활한 우주에 지구인만 있을 리는 없다고 생각해요. 우주인이 지구에 와서 누군가와 첫 대화를 나눈다면 그건 아마도 어린이일 거예요. 어린이는 늘 새로운 것, 낯선 것에 마음을 잘 열잖아요.
저는 어떤 계획을 먼저 세우고 거기에 맞춰 작품을 쓰지는 못해요. 어떤 이야기가 다가와서 말을 걸어야 시작해요. 생각하다가 어느 때가 되면 어느 이야기의 주인공이 다가와서 두드려요. 내 얘기 좀 들어 보라고요. 그럼 그때 써요. 어느 것이 먼저가 될지는 저도 몰라요. 주인공이 다가와서 문을 두드려야 하니까요. 그때 문을 활짝 열어 줄 수 있도록 늘 준비를 하고 있으려고 해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허클베리 핀이나 빨강머리 앤 같은 인물들이 저를 통해 세상에 나오게 될 거라고 믿어요. 자유로운 영혼의 밝은 에너지와 아름다움에 읽는 사람도 행복하게 만드는 그런 인물들이요. 그런 인물들과 온 우주를 히치하이킹하는 상상으로 즐겁게 일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