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에게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시리즈 비룡소의 그림동화 6 | 글, 그림 존 버닝햄 | 옮김 박상희
연령 6~10세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1996년 11월 10일 | 정가 13,000원
수상/추천 문화일보 추천 도서 외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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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대장 존’은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기발한 상상력의 작가인 존 버닝햄의 여러 책 중에서도 단연 그의 매력이 잘 드러난 책 중의 하나이다. 아이들 고유의 상상의 세계로의 여행이 잘 표현되어 있으면서도 당연히 이렇게 끝나겠지 하는 어른들의 지레짐작을 과감하게 뒤엎어버리는 결말 등이 놀랍기 그지없다. 기차놀이를 하다가 잠자리에 든 아이가 여러 동물과 기차를 타고 놀다가 잠이 들었는데, 깨어 보니 간밤에 만난 동물들이 실제로 집에서 잠이 들어 있다는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식의, 그림책을 만만히 여기는 어른들의 자만심을 여지없이 깨뜨려 버리는 버닝햄 식의 유머가 한껏 발휘된 책이 바로 ‘지각대장 존’이다.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학교에 가다가 그만 악어를 만나 장갑 하나를 잃고 만다. 당연히 학교에 늦은 존의 말을 믿지 않는 선생님은, ‘악어가 나온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또, 다시는 장갑을 잃어버리지 않겠습니다.’를 300번 쓰는 벌을 받게 된다. 그러나 다음날은 사자 때문에 그리고 그 다음날은 커다란 파도 때문에 학교에 늦게 되고 그때마다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말을 400번 외우고, 500번 쓰게 된다. 그리고 그 다음날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궁금해지는데,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고 학교에도 늦지 않는다. 존이 교실에 들어섰을 때 커다란 털북숭이 고릴라한테 붙들려 있는 선생님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이 동네 천장에 털북숭이 고릴라 따위는 살지 않아요, 선생님.” 하는 말을 남기고 존은 유유히 집으로 돌아온다. 어쩌면 이 책의 매력은 맨 마지막 장에 집약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음 날에도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이하 ‘존’)는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섰는데,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궁금해서 숨을 멈추고 있는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의 다른 그림책을 보더라도 유난히 반복을 많이 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도 그렇고, 또 ‘마법 침대도’나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도 그렇다. 이러한 반복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아주 자연스럽게 판타지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 들이는 것, 이것이야말로 존 버닝햄(이하 ‘버닝햄’)의 그림책이 보여주는 최고의 매력이 아닐 수 없다. 버닝햄의 그림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실망스러울지 모르겠다. 그렇게 잘 그렸다거나 신경 써서 그렸다는 느낌보다는 대충 그린 듯한 그의 그림은 아이들의 상상의 세계와 상당히 닮았다. 내용만이 아니라 자유스러운 그림 자체도 아이들의 눈높이에 딱 맞아떨어지고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버닝햄의 그림에 더욱 더 열광하나 보다. 책의 표지를 보면 물이 뚝뚝 떨어지는 옷을 입고 있는 존의 앞에 최대한 과장되게 표현되어 있는 선생님의 모습이 있다. 눈은 툭 튀어나올 것처럼 부리부리하고 코는 새의 부리처럼 길며 입은 길게 쭉 찢어져 마치 잡아먹으려 덤벼들 듯하다. 존의 말을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펄쩍펄쩍 뛰어오르는 선생님의 모습 앞에 존은 아주 작게 그려져 있다. 버닝햄의 그림책은 굳이 무엇을 깨우치려고 하거나 교훈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은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그림책 작가인 앤서니 브라운과 다른 점이다. 사진처럼 세밀한 그림, 여러 동화나 유명 화가의 그림에 대한 패러디, 익살 넘치는 고릴라나 침팬지가 등장하는 그림책을 즐겨 그리는 앤서니 브라운의 주된 화두는 ‘가족’이다. 그의 그림책 곳곳에는 가족의 소중함과 서로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라는 주제가 어둠과 밝음의 대비를 거치며 잘 형상화되어 있다. 그러나 버닝햄은 다르다. 지각을 하고도 전혀 뉘우치는 기색이 없는 존은, 마지막에 도와달라고 외치는 선생님을 내버려둔 채 나가버린다. 버닝햄은 초등학교를 섬머힐을 다녔다고 한다. 어쩌면 관습을 뒤집어 버리는 반전이나 굳이 교훈을 목적하지 않는 그의 그림책 스타일은 그의 성장 배경과도 관련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지각대장 존’이 어떠한 교훈도 주지 않는 괘씸한 그림책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존은 어린이 특유의 상상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어린 시절 이런 저런 이유로 지각을 하거나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게 어디 존만의 일이겠는가? 그가 지각의 이유로 대는 것은 어른들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아이들 상상의 세계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선생님은 존을 이해하지 못하고 가혹한 벌만을 가할 뿐이다. 결국 서로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중요한데 선생님은 끝까지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지각대장 존’은 내가 읽었던 최고의 그림책 중의 하나이다. 버닝햄의 책이 주는 온갖 매력이 잘 드러난 그림책이 바로 이 책이다. 처음에는 서평을 당연히 썼다고 생각해서 그 뒤에는 좀 게을러져서 미뤄두었던 ‘지각대장 존’의 서평을 이제야 쓴다. 그렇다면 나야말로 지각대장이 아닌가? 그러나 이제는 우리 집에 있는 여섯 살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의 말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보면 나도 머리가 너무나 굳어 버린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