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를 보자마자 아이가 말한다.
“어, 이거 뿌뿌 책 쓴 사람이 지은 거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이런저런 책을 많이 보더니 이젠 그림만 보고도 어느 책을 쓴 사람 것인지 대충 안다. 그걸 보고 난 또 속으로 ‘짜슥…’하며 기특해한다. 뭐 작가를 맞췄다고 인생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뿌듯한 건 사실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사회성을 길러줘야 한다는 일념으로 많은 사람들을 집으로 끌어들이곤 했다. 가고 나면 집은 폭탄 맞은 집이 되기 일쑤였다. 그래도 아이들이 좋아하고 나도 좋아하는 일이기에 조금 힘들어도 종종 그렇게 했다. 아이들이 여러 명 모이다보면 꼭 극성맞고 제멋대로인 아이가 있게 마련이다. 이 책의 웬델처럼… 그러나 이 책의 소피와 같은 아이는 만나본 기억이 없다.
웬델은 그야말로 천방지축에 못말리는 아이다. 병원놀이 한다면서 혼자 의사, 간호사, 환자까지 일인삼역을 너끈히 해내고 소피는 탁자위의 시계나 시키니… 어디 그 뿐인가. 엄마 아빠 놀이를 한답시고 혼자 엄마, 아빠 심지어 다섯 명의 아이들 역까지 혼자 다 하고 소피는 강아지를 시킨다. 얼마나 웃기던지… 그래도 소피는 참 착하다. 아무리 손님으로 왔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가 되면 삐질 법도 한데 말이다. 하긴 그래도 나중에 소피는 근사하고 ‘우아하게’ 복수를 한다. 바로 소방수 놀이를 하면서 자신은 소방관을 하고 웬델에게는 불난 건물을 시킨 것. 읽는 내가 다 통쾌하다. 어… 그런데 아이들은 어른인 나보다 훨씬 낫다. 어른은 단순히 통쾌해 하고 있는 사이에 아이들은 서로 묵은 감정을 정리하고 친구로 거듭나니 말이다.
놀 때는 별 것 아닌 일로 싸우다가도 헤어지고 나면 아쉬워하고 언제 또 놀수 있냐며 기다리는 게 아이들이다. 어른이라면 택도 없는 일인데 아이들에게는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니 어른의 잣대로 보기에 조금 맘에 안 드는 아이가 있더라도 그냥 모른척 하자. 아이들끼리는 그래도 좋아하고 재미있게 노니까. 이 책의 웬델과 소피처럼 말이다. 소피도 웬델과 같이 있는 내내 빨리 가기를 바라지만 막상 돌아가고 나자 언제 또 오는지 기다리고 있잖은가.
이 책은 케빈 헹크스 특유의 그림과 짤막한 대화글이 재미를 더해준다. 엄마와 아빠가 간단 명료하게 대답하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특히 웬델이 떠나고 난 장면에서 엄마와 아빠의 대답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절대로 안 올 거야.’가 아니라 오지 말았으면 하는 희망사항을 얘기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니 소피는 당당하게 창문에서 인사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커튼 뒤에 숨어서 빼꼼히 고개만 내밀지… 경쾌하고 발랄한 이야기. 역시 케빈 헹크스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