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스와 베이커 가의 아이들 1

연령 12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09년 12월 11일 | 정가 8,500원

 

내가 초등학교때 읽었던 책들인지라 제목조차 가물가물하지만 어렸을적 책욕심 많으신 엄마 덕분에 추리소설도 꽤 자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앞에도 뒤에도 챙이 달려있어서,대체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구분이 애매모호한 모자에(내가 어렸을땐 이런 모양의 모자를 쓰고 나오는걸로 묘사되곤 했다) 노상 파이프를 물고 망토를 한번 더 두른 듯한 버버리 코트를 걸치고선 늘 고심하는 표정의 홈즈와 의사친구 왓슨 박사가 미제 사건을 척척 해결해나가는 모습이 어린 내게도 어찌나 멋져보였는지 모른다. 난 숨은 그림 찾기 하나 하려고 해도 처음엔 좀 쉽게 찾다가, 성질이 급한건지 관찰력이 부족한건지 꼭 1개 정도는 못찾고 에잇~ 성질을 내며 포기해버리기 일쑤인데 우리한테는 보이지도 않는 조금의 증거들로 그사람의 직업과 그때의 상황, 거기에 처음 본 사람의 성격까지 점쟁이처럼 잘 알아맞추는 모습을 보고 어린 맘에 혹시 홈스는 마법사가 아닐까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던 기억도 난다.

 

내 기억으론 사건해결에 별반 도움이 되지 못했던 어리숙한 왓슨 박사가 그래도 한가지 잘한 일은 이 책에서도 언급했듯 왓슨 박사가 바로 친구 홈스의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해 지금까지 우리들도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단 점일 것이다.그런데 이 책을 보고 왓슨박사가 왜 홈스 수사에 아주 큰 공을 세웠다는 ‘베이커 가의 아이들’ 이야기만은 쏙 빼놓았을까 나 역시 왓슨의 의도가 궁금했다.

“셜록 홈스 이야기에 익숙한 독자라면 홈스가 혼자 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셜록 홈스의 곁에는 대단히 열정적이고 충직한 고아 소년들이 늘 함께했다.이른바 ‘베이커가의 소년탐정단’이라고 불리는 이 소년들은 수많은 사건에서 홈스를 도우면서 범죄해결을 위해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그런데도 이들 소년 탐정들을 왓슨이 쓴 작품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왓슨이 홈스의 활약을 강조하기 위해 소년 탐정단의 이야기를 드러내지 않은 것인지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다.하지만 이러한 실수를 저지른 이유와는 상관없이 분명한 사실은 그것이 매우 부끄러운 잘못이라는 점이다.모든 역사는 어느 정도의 수정이 필요하다.따라서 지금이야말로 베이커 가의 소년 탐정단에게 정당한 자기 몫을 챙겨줘야 할 때다.” -‘셜록 홈스와 베이커 가의 아이들 1’ 서문 中에서 –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어렸을적에도 베이커가의 소년탐정단 이야기가 홈스의 이야기에 등장했다면 나 역시 소년탐정단처럼 친구들과 탐정놀이도 같이 해보고 나랑 같은 또래의 친구들의 눈부신 활약상에 내 일처럼 기뻐하며 같이 환호도 해보고 내 또래 친구 이야기라 이야기속에 더 잘 빨려들어갈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살짝 들었다. 

 

도무지 연관성 없어보이는 두개의 사건이 동시에 일어난다. 첫번째 사건은 서커스단에서 줄타기의 명수들인 잘린다 3형제가 묘기 도중 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추락사한거고 두번째 사건은 왕가의 비밀이 적혀있는 『스튜어트 연대기』가 감쪽같이 도난당한 것이다.사건을 의뢰받은 홈스는 수사를 시작하고, ‘성(실은 버려진 마차 공장)’이라는 자기들만의 아지트에서 공동생활을 하고 있는 고아 출신들의 소년들(위긴스,로한,앨리엇,알피 등)과 대서소에서 일하는 오스굿이 홈스의 호출로 수사를 돕게 된다. 여기에 잘린다 형제와 같은 서커스단에서 일하는 점술가 ‘마담 에스트렐라’의 딸, 필라도 여자는 도움이 안된다는 홈스와 소년탐정단의 편견을 깨고 아주 눈부신 활약상을 보여준다. 

 

제목은 ‘셜록 홈스와 베이커 가의 아이들’ 이지만 나라면 ‘베이커 가의 아이들과 셜록 홈스’로 지었을 것 같다. 그만큼 베이커 가의 소년탐정단의 활약상은 눈부셨다. 길거리에서 잔뼈가 굵은 아이들이니만큼 아이답지 않은 수완을 발휘해 증거를 수집하고 범인들의 동태를 살피는 정도의 활약상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었지만 내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사건해결의 절반 이상은 소년탐정단이 해결한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 활약상은 실로 대단했다. 탐정단의 대장인 위긴스는 아이들을 포용하고 이끌어나가는 능력이 탁월한 아버지 같았고 항상 진중한 성격이라 위긴스의 부재시 아이들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듬직한 로한은 꼭 아이들의 어머니 같았다. 여기에 매사 무뚝뚝하고 반항적이지만 바느질 솜씨만은 끝내주는(이 바느질 솜씨가 후에 큰 도움이 된다) 앨리엇과 돈은 좀 밝히기는 하지만 탐정단의 활력소가 돼주는 귀염둥이 꼬마,알피까지 캐릭터 하나하나가 머릿속에서 자세히 그려질만큼 아주 생생히 묘사돼있단 점도 이 책의 매력 중 하나다. 그러나 무엇보다 매력적인건 미래의 셜록 홈스가 될만한 재목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오스굿의 활약이었다.어머니의 죽음으로 대서소에 맡겨진 불쌍한 오스굿은 재치와 지혜가 번뜩여 이 책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해낸다. 몸이 지나칠 정도로 약해 위긴스와 아이들의 걱정을 사는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역사지식을 갖췄을뿐만 아니라 한번 본 것은 그대로 쓸 수 있는 일급 위조 기술, 거기에 홈스에 버금가는 아니, 필적할만한큼 뛰어난 관찰력과 추리력까지 갖추었다.

 

여기에 한가지 더 흥미로운 점은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셜록 ** 2″에도 나오는 모리아티 교수의 화려한 등장이었다. 홈스의 탁월한 능력에도 잡힐 듯 하면서도 쉽게 잡혀주지 않는 모리아티 교수의 뛰어난 두뇌는 홈스 못지 않아서 홈스와 모리아티 교수의 팽팽한 두뇌싸움도 아주 볼만했다.

 

오스굿의 아버지에 대한 진실이 2편에서는 과연 밝혀질지, 2편에서는 소년탐정단이 또 어떤 활약상을 보여줄지 2편 역시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