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에게 읽히고 싶었던 소설, 판타스틱 걸
판타스틱 걸. 오랜만에 받아 본 미션이라서 기대가 된 책 이었다. 늦은 저녁 우연히 읽기 시작한 책 이었는데 왠지 모를 흡입력에 새벽 2시까지 다 읽어 버렸다. 흥미로운 장르의 청소년 소설 이고 거의다 대화체로 이루어졌었기에 그 전 책들에 비해서 훨씬 수월히 읽혀진 것 같다. 자칭 학교의 잘나가는 퀸가인 오예슬의 미래 불시착 시작으로 전개되는 소설 책 이었는데 처음에는 그저그런 뻔한 애기로만 생각했었다. 미래로 가서, 멋만 부리다가 잔뜩 망가진 일명 루저의 인생을 살고 있는 자신을 보고나서 반성하고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좀 정신 차리는 내용 이겠거니 했는데 점점 책을 읽어 나갈 때 마다 내면에서 신비한 매력이 잉태되어 쉽게 책장을 덮지 못하게 했다.
재수 없게(자기 말로)10년 후로 떨어진 퀸가 님. 자신은 온갖 기행을 하고 있으니 당연히 슈퍼모델로 살아갈꺼라 예상 했다만 이게 왠일? 온 몸에 탁구공을 연상케하는 잔살이 붙는 10년후의 오예슬, 미즈노(현실 부정 별명)와 대면하게 된다. 한 마디로 자신이 아는 별 아니꼬운 짓은 다 자갈밭에 거름주기 였다는 말. 인생무상의 참 뜻을 깨닫고 엄청난 실망과 조우하게 된다. 수많은 청소년 중에서도 더욱 멋에 대해서 발광을 하던 오예슬. 얼마나 충격적이었을지 상상이 간다. 패닉상태에 빠저있다가 어떻게는 예전 몸매를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해 주제넘은 참견도 해보지만 실패. 미즈노의 미움을 받아 밖을 싸돌아 다니고 치매노인분과 만나 땡볕에 고생도 해본다. 미래에서 살아가며 완전히 망가진 자신의 인간 관계에 충격을 받은 주인공. 미즈노 역시 도서실 평생 지킴이로 살아가는 자신은 보며 인생에 회의감을 느낀다. 그렇게 해서 궁합이 맞은 두 여자(?)는 청바지 모델 대회에 출전하게 되고 특훈의 다이어트를 통해 체중 감량에 성공한 미즈노는 당당히 예선에 통과한다. 본선 직전 예슬이와 함께 쉬고 있던 미즈노는 과거 동기 였던 싸가지의 출현과 자신에 대한 부정 접수 고발 협박으로 여자애(오예슬)과 함께 도망친다. 도중에 오예슬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미즈노의 본선 출전 모습을 끝으로 책은 마무리 된다.
(소재가 없을 법하기도 한데 작가 분들은 이래서 경외감이 든다 나도 막상 과거 혹은 미래에 대한 시간 여행기를 써볼려고 몇 달 간 머리를 짜도 막막하기만 한데 모델이라는 직업을 중심으로 해서 이야기를 어찌도 재미있게 전개해 나가는지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대다수의 책들은 전부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으로 풀어나가는데 미래로 간다는 설정을 한 게 흥미로웠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현재의 오예슬이 미래의 미즈노와 함께 모델 선발 대회를 준비하며 융화되어 가는 부분. 주인공에 변한 모습에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책 속에서는 오예슬의 꼴갑으로 현 청소년의 실태를 보여주는 부분이 나오는 데, 청소년들의 외모지상주의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저자분의 모습에 나도 함께하고 싶었다. 내가 보기에도 요새애들은 너무 멋을 부리는 것 같다. 치마 줄이고 줄일 게 없어서 체육시간에 체육복 바지마저 걷고 다니니 -_- 정말 할 말이 없다. 미즈노가 오예슬에게 던지는, 멋에 대한 말을 하는 대목을 읽을 땐 내가 여자애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 해 주는 듯해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꼭 멋을 떠나서라도 요즘 청소년들은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나도 어쩔 때는 그러기에 제목역시 나에게 제대로 읽히고 싶었던 책으로 정했다. 나약한 과거가 쌓아올린 절망의 실체를 통해서 주제를 말해주고 있는 듯한 판타스틱 걸. 나중에 현실로 돌아온 오예슬은 자신에게 언니라고 부르며 미래를 인정하고 현재의 충실한 학생으로 바뀐 것 같은데 우리에게 이런 일을 죽었다 깨나도 없으니 간접체험을 통해 정신 좀 차리라는 말을 전하려는 책 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인가. 이성을 좌지우지 한다면 누가 실패하겠는가. 그래도 가끔식 사춘기 주체할 바를 모를 이성에게 냉수를 건네는 이러한 책들이 있기에 성공, 꿈을 향해순조롭게 성장해 가는 것은 아닐 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숙련된 작가의 연륜이 느껴지는 간결한 문장과 심도있는 짜임새로 이루어져 더욱 즐거웠던 책 판타스틱 걸. 우리반 아이들에게 한 권 씩 돌리고픈, 청소년기의 또다른 선생님이 되어줄 멋진 소설 이다. 심오하진 않은 책 이었지만 추억 속에 오래도록 새겨질 듯 한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