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바꿔…

시리즈 아딸 2 | 이가라시 다카히사 | 옮김 이영미
연령 15세 이상 | 출판사 까멜레옹 | 출간일 2011년 11월 25일 | 정가 8,500원

몸이 바뀌고 영혼이 바뀌는 이야기는 낯설지는 않은 스토리다. 영화로도 본 것 같고, 얼마전 높은 시청률을 올렸던 모 방송국의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도 봤다.  이 소설에 나오는 각 장면들이 낯익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특히, 목욕하는 방법을 놓고 가족끼리 옥신각신하는 것이 그렇다. 

그러나, 이 소설이 특별한 것은 세식구가 서로 뒤바뀌었다는 점이다. 엄마는 딸로, 딸은 아빠로, 아빠는 엄마로..  이야기 첫 머리에서는 복잡한 나머지 종이에 그려가며 읽었다. 그래야지 껍데기 속의 알맹이가 누군지, 왜 그렇게 느끼는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읽으면서도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한 지붕 아래서 사는 한 가족이라 하더라도, 부모세대와 자식세대의 공감대 부족, 동일 세대라 하더라도 남녀간의 차이로 인한 이해부족 등이 많은 문제와 갈등을 일으킨다. 모두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를 이해하려하고, 나에게 상대를 맞추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집에 살아도 남만 못하다는 생각을 자주하고, 웬수가 따로 없다고 아우성이다. ^^

나 또한 중학생 딸과 참 많이도 티격태격 했다. 옷입는 거, 머리모양, 신발, 양말 등등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뭐하나 맘에 드는게 없을 때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는 내가 자랐던 시절과 아이가 크고 있는 지금의 환경적 차이,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것에서 오는 갈등이다.  결혼 초기 남편과도 잦은 다툼을 일삼았던 것이 기억난다. 내가 30년 가까이 유지해 오던 생활습관과 남편이 익숙한 생활습관이 달라도 한참은 다를 것인데 그것을 내게 맞추라고 떼를 쓰고 신경질을 냈으니 말이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느끼면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을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책은 ‘상대의 입장’을 아주 극렬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내가 상대가 되는 것이니 이보다 더 강한 ‘입장바꿔’는 없을 것 아닌가? ^^

아빠가 되어 회사에 다니는 고우메… 아빠가 회사에서 어떤 위치에서 어떤 일을 하는 지, 얼마나 맘 고생이 심한지를 아빠가 아빠입으로 얘기해 주었다면 아마도 눈감고, 귀닫고 들었을 것이다. 잔소리에 하소연이라고 듣는 둥 마는 둥 했을 거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직접 보는 것 만큼 확실한 공감이 어디 있던가.

딸의 몸으로 대학교 신입생이 된 엄마…  아! 정말 이 역할은 나도 해보고 싶다. 내가 만약 우리 딸이 된다면 아마도 잔소리는 전혀 안할 것이다. 그네들의 문화를 맘껏 느끼고 공유했으니 아마도 내가 먼저 나서서 옷도 최신 유행으로 사주고, 콘서트도 맨날 델꼬 다니고 화장품도 어느 정도는 허용을 할 것이며, 교복을 줄여 입고 다녀도 못본체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근데.. 지금은 안된다, 그게…^^  엄마가 오랜만에 맛본 젊음의 자유, 아련한 옛 기억, 짜릿한 흥분.. 비록 복잡하기 그지 없는 햄버거 알바로 인해 창피함이 하늘을 찌르고, 몸은 피곤에 쩔어 하루하루가 파김치겠지만 젊은 남자로부터의 고백, 딸의 근사한 남자친구와의 만남, 신입생 파티에서의 댄싱퀸 등극… 이건 정말로 샘나는 경험이었다.

엄마가 된 아빠라… 음.. 이것은 어찌보면 아주 심각할 수 있는 ‘입장바뀜’이다.  우리집 남편을 보아도 가사일에는 도통 무식하다. 말로는 안해본 거라 그렇다고는 하나, 아무리 안해 본 일이라도 눈치라는 게 있고, 상식이라는 게 있는데 말이다. 사실 뭐 회사일도 첨에는 대충 눈치껏 하는 것으로 시작하지 않느냔 말이다. 가족의 건강과 안전, 의식주를 책임지는 막중한 입장임에도 아빠는 서툴기 그지 없고, 그 서툼을 상식과 눈치로 해결하기 보다는 오기와 무지로 들이대어 감당하기 힘든 지경을 만든다. ^^ 물론, 적응해가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아빠가 딸의 친구엄마와의 기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고기를 3만엔 어치나 사는 장면에서는 “좋았어! 일단 지르고 보는 거야!”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와 버렸다. 통쾌하기 그지 없는 장면이었단 말이다. ^^

열흘 간의 ‘바뀜’이다. 그렇지만 세 사람은 일년같은 경험을 했고,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됐다. 그리고, 그만두고 싶고, 바꾸고 싶었던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것인지도 배웠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