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카신을 신고 두 개의 달 위를 걷다.

시리즈 블루픽션 33 | 샤론 크리치 | 옮김 김영진
연령 12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09년 5월 15일 | 정가 17,000원
수상/추천 뉴베리상 외 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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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는 상처들이 있다. 째고 짜내고 봉합해놓은 상처는 흉터는 남겠지만 최소한 회복의 의지가 있다. 하지만 덮어두고 외면해 버린 상처는 가벼운 자극에 살짝 스치기만 해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법이다. 꽃으로 때려도 아픈 법이다. 몸에 난 상처는 상처의 경중에 따라 치료과정을 거치면 고통이 지나간 흉터가 훈장처럼 남는다. 하지만 마음에 깃든 상처는 상처 부위도 치유의 흔적도 본인만이 알 수 있는 비밀스런 흉터 자국을 남긴다. <두 개의 달 위를 걷다>는 살라망카라는 열세 살 소녀가 부정하고 거부하고 도피하는 단계를 거쳐 자신의 상처를 직시하고 치유해가는 기나긴 여정을 담고 있다. 마음의 상처는 그 상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이 치유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바로보기가 어려운 법이다.

<두 개의 달 위를 걷다>는 액자식 구성의 병렬 구조를 갖고 있는 로드 무비풍의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미스터리와 서스펜스가 가미되어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재미 또한 있다. 가족애와 인간애가 넘치는 감동을 주고, 펑펑 눈물까지 쏟게 하는 카타르시스도 제공한다. 한마디로 소설의 모든 맛이 들어있는 종합 선물세트 같은 작품이다. 대개의 경우 여러 가지 맛을 찝쩍거린 소설이 한 가지 맛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소설에는 모든 맛이 골고루 잘 살아있다. 


어느 날 갑자기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나버린 엄마를 찾아 오하이오에서 아이다호 루이스턴까지의 장장 3000킬로미터의 대륙횡단 여정을 담고 있다. 루이스턴에서 평화롭게 지내고 있는 엄마를 만나보고 싶어 했던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를 보러 가고 싶지만 두려워하고 있는 살라망카는 일주일 뒤 엄마의 생일에 맞춰 루이스턴에 도착할 예정으로 자동차로 여행길에 오른다. 오십여 년의 결혼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열세 살 손녀딸의 긴 여행에는 살라망카의 친구 피비 윈터버텀의 이야기가 양념처럼 함께 한다. 권위적인 남편과 이기적인 두 딸의 엄마이면서 가정에 헌신하며 틀에 박힌 삶을 살던 피비의 엄마가 어느 날 편지를 남겨놓고 가출을 한다. 엄마가 집을 나가기 얼마 전부터 피비의 집 앞에는 암호 같은 쪽지들이 이어졌고 정신병자 같은 젊은 남자가 피비의 엄마를 찾아오는 일이 있곤 했었다. 두 소녀는 탐정 놀이하듯 쪽지의 비밀을 추리해 가고 있었는데 피비의 엄마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그의 모카신을 신고 두 개의 달 위를 걸어볼 때까지 그 사람에 대해 판단하지 마세요.’라는 첫 번째 쪽지에서 제목을 따왔다. 모카신은 인디언들이 신는 신발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남의 입장과 처지에 있지 않으면서 상대방을 함부로 평가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 밖에도 ‘누구나 자신만의 일정표가 있다.’, ‘인생에서 뭐가 그리 중요한가?’, ‘슬픔의 새가 당신의 머리 위를 나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당신 머릿속에 둥지를 트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와 같은 알쏭달쏭한 쪽지들은 과연 누가 가져다 놓을 것일까? 남편의 시체를 뒷마당에 파묻었다는 소문에 휩싸인 마거린 아주머니는 살라망카의 아빠와 어떻게 알게 됐을까? 피비가 정신병자라고 부르는 젊은이의 정체는 뭘까? 피비의 엄마는 왜 갑자기 가출을 했을까? 이런 의문들과 함께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이야기에 끌려가다 보면 하나씩 그 정체가 드러난다.  


피비의 맞은편 집에는 ‘시체’라는 뜻의 ‘커데이버’라는 성을 가진 마거릿 아주머니와 앞을 못 보는 페트리지 할머니가 살고 있다. 마거릿 아주머니는 살라망카의 아빠와 친분이 있는 사이지만 살라망카는 이 아주머니가 남편의 시체를 뒷마당 나무 밑에 묻었다고 생각하는 피비의 말을 더욱 신뢰한다. 엄마의 가출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피비는 엄마가 집 주변을 서성거리던 정신병자에게 납치됐거나 마거릿 아주머니에게 살해됐을 거라는 추측을 하며 경찰서까지 찾아가게 된다. 늘 완벽한 식사가 차려져 있고 옷은 깔끔하게 다림질 되어 있었던 집은 엉망이 되고, 그제야 피비네 가족들은 엄마란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그리고 또 한 가족, 늘 체계적이고 깔끔한 피비네와 대조되는 메리 루네 집도 등장한다. 아이들 다섯과 늘 한두 명쯤 얹혀사는 친척들이 뒤엉킨 메리 루네 집은 깔끔 떨고 점잔 빼고 경직된 피비에게는 끔찍한 난장판이었다. 하지만 그 상황 속에서도 책을 읽고 낮잠을 즐기는 메리 루의 부모님을 보면서 서로 뒤엉켜 마음껏 살을 부비고 뛰어놀며 거친 숨을 함께 호흡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살라망카는 아빠와 엄마와 셋이서 바로 그렇게 한덩어리로 뒹굴던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린다.


나무와 호수에 둘러싸인 켄터키주 바이뱅크스란 시골마을의 농장에서 살던 살라망카에게는 서로의 분신과 같았던 사랑이 넘치는 엄마와 가족들의 기운을 북돋워줄 소소한 기쁨들을 만들어내는 좋은 사람 아빠와 더없이 행복하게 살았었다. 하지만 살라망카의 동생을 출산하는 과정에서 사산의 아픔을 겪은 엄마는 마음의 방황을 겪는다. 산달이 다가온 어느 날 나무에서 떨어진 자신을 업고 집까지 뛰어간 탓에 엄마가 그런 아픔을 겪는 거라고 자책하던 살라망카는 작별인사도 없이 여행 가방을 챙겨 홀연히 사라진 엄마와의 이별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부정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던 살라망카는 용기를 얻고 마음을 굳게 다지는 법을 배우기 위해 이사를 간다는 아빠를 따라 어쩔 수 없이 집을 뒤로하고 유클리드로 이사를 한다. 엄마가 사라진 지 일 년쯤 후 할아버지 할머니가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에 지도를 보며 길잡이 노릇으로 따라가기로 결정한 후부터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 내내 온 세상은 살라망카에 귀에 대고 ‘서둘러 빨리 빨리’를 속삭인다. 하지만 여행길에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들려준 피비네 가족의 얘기를 통해서 자신의 슬픔을 바로 보게 된 살라망카는 엄마와의 만남이 다가올수록 ‘천천히 천천히’라는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 그 길 끝에서 만나게 될, 그래서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될 슬픔의 실체를 알았기 때문이다.       


살라망카의 이야기는 내게도 있는 비슷한 상처를 톡톡 건드린다. 후반부까지 목울대가 아프게 꾹꾹 눌러 참던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청소년 도서지만 450쪽 가까이 되는 적지 않은 분량의 글을 단숨에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 리뷰에 담지 못한 소소한 재미들을 그럴 듯하게 담아낸 작가의 역량에 있다. 오십여 년을 함께 해 동지 같은 부부로 살아온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과 살라망카와 벤의 블랙베리 맛 첫사랑도 마음을 조몰락거리는 이야기들이다.      

  

시사회에 참석한 영화 관계자 평론가 비평가들과 먼저 본 관객들이 무언의 공범자처럼 보안을 유지했던 영화 「크라잉 게임」의 충격적 여장남자 딜의 비밀처럼 「식스 센스」가 상영되던 영화관 화장실의 ‘브루스 윌리스는 유령이다.’ 낙서처럼 스포일러를 터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나 눈치 빠른 분의 시선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