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킹 걸즈
-김혜정(비룡소)
-2012년 5월 11일
누구나에게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고, 가지고 있는 약점이 있다. 그게 뭐든 간에 다른 이들에게 알려지는 걸 원치 않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 약점과 비밀을 감추고 있다보면 사람의 마음은 곪는다. 이야기를 해서든, 행동으로 실천을 해서든 풀어야 하고, 똑같은 일을 나중에 반복하지 않으면 된다.
은성이와 보라는 특별한 계기로 만나게 되었다. 소년원에서 문제아 2명을 뽑아 3개월 동안 실크로드를 걷게 하는 체험이 있다. 이번 여행에는 은성이와 보라가 참여하게 되었고, 노쳐녀인 미주언니가 함께 동행했다. 불만 많고 투덜대는 은성이와 묵묵하게 그저 걷고 시키는 대로 하는 보라, 이 두 명의 아이에게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
한 마디로 당돌한 아이, 은성이. 은성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은성이는 당돌해질 수 밖에 없었다. 미혼모인 엄마와 자란 은성이는 엄마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지 못했다. 외할머니의 손에서 자랐고, 어린 시절부터 아빠 없는 아이로 놀림을 많이 받았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했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주먹 센 아이’라고 불려졌다. 어느 날, 같은 반에 있는 부잣집 공주님은 다른 친구들을 모아놓고 은성이가 ‘미혼모의 딸’이라는 욕을 했다. 미혼모와 관련된 욕을 가장 싫어하는 은성이는 화를 참지 못하고 그 아이를 때리고, 소년원에 입소하게 되었다. 나는 은성이를 보며 참 어린 나이에 참 많은 일을 겪었다고 생각했다. 트라우마와도 같은 상황 속에서 매일을 보내야 했고, 의도치 않은 일로 할머니까지 잃었으니 그 상처가 얼마나 깊게 파였을까.
보라의 이야기도 만만치 않다. 상식도 많고, 그림도 잘 그리는 보라는 도벽이라는 비밀이 있다. 만화를 잘 그리고, 좋아하는 보라에게 엄마는 “이딴 게 뭐냐.”라며 빼앗아 들었다. 집에서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친구들이 스트립 쇼도 시키고 별 이상한 행동을 보라에게 시키며 스트레스를 주었다. 보라는 이 모든 걸 견뎌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 말이다. 집에서 하지 말라는 거, 몰래 몰래 들키지 않았고 학교에서 친구들이 시키는 이상한 행동들을 안 하면 더 괴롭힐까 다 했다. 쌓여가는 스트레스 속에 생긴 습관 도벽은 보라에게 이상한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점점 더 큰 물건을 훔치게 되어 소년원에 입소하게 된 것이다. 보라는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쉴 곳이 없었던 것 같다. 마음을 풀어낼 곳이 없으니 도벽이라는 안 좋은 습관으로 자신을 위안 삼았다고 생각한다.
풀어낸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힘든 실크로드 도보 여행을 그만 두자라고 마음 먹은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던 은성이와 보라.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를 이해하면서 꼭 끝까지 가자라고 다짐한다. 마침내, 원정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 그렇게 미워했던 엄마와의 전화로 서로의 마음에 응어리를 풀어낸다.
은성이와 보라가 경험한 하이킹은 이야기의 하이킹이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마음 속 응어리를 지워내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함으로써 자신을 한층 더 성장시키는 마음 속의 하이킹말이다.
누구나 숨기고 싶어하는 자신의 비밀과 약점을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는 걸 기억하면, 자기 마음의 짐을 풀어내는 것이 한층 더 편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