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문학의 가치를 느끼게 하기에는 고전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오랜 세월을 통해 인정받은 명작들이 문학의 즐거움을 충분히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에서 여러 출판사들이 세계명작을 꾸준히 재출간하고 있는 데에 고마움을 느낀다.
<비룡소 클래식> 시리즈를 눈 여겨 보고 있는 중이다. 세계명작을 고를 때는 비슷한 내용 중에서 번역이 잘돼있고 삽화도 잘 어울리는 책을 찾기가 어렵다. 워낙 유명해서 다양하게 번역된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도 아이들에게 읽히려고 주문을 한 적이 있는데 막상 책을 받았을 때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었다. 그래서 좋은 세계명작 시리즈가 눈에 띄면 기억하고 있는 편인데 지난번에 이 시리즈에서 나온《80일간의 세계일주》를 읽고 괜찮다는 느낌이 들어서 이 책이 나오자 반가웠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뮤지컬로도 유명한 작품이다. 뮤지컬 배우 조승우가 지킬 박사의 고뇌를 부르는 “지금 이 순간”은 누구나 좋아하는 노래다. 평소 선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해온 지킬 박사가 악의 화신인 하이드로 변하려고 할 때의 갈등을 노래한 이 음악을 들을 때면 우리 안에 잠재 된 “지금 이 순간”을 우리 대신 불러주는 느낌이 들어서 전율이 인다.
지킬 박사가 이렇게 고뇌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킬 박사는 처음에는 순수한 과학자의 열정으로 선과 악을 분리해내려는 시도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악으로만 만들어진 하이드라는 인물을 만들어냈을 때는 자신이 이룬 성취에 대한 기쁨만 느꼈다. 그러나 하이드로 지내면서 느끼는 새로운 즐거움에 젖어들면서 지킬의 인생은 예상치 못했던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철저히 관리할 수 있다고 믿었던 하이드의 세계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지킬 박사는 자신이 하이드로 변했을 때 저지른 악행들에 대해 당황하면서 다시는 하이드로 변하지 않으려고 결심한다. 그러나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도 모르게 하이드로 변해갈 때의 절망감을 이기지 못해 삶을 체념하게 된다. 하이드로 살면서 삶의 쾌락을 느끼고, 지킬 박사로 돌아와 존경받는 신사로 살고 싶었던 지킬 박사는 그것이 자신의 헛된 욕망임을 느끼며 절규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 책에서 눈길이 가는 것은 삽화다. 여러 출판사에서 나온 다양한 그림들을 봐왔지만 이 책에 나온 삽화들이 그 시대의 모습을 가장 근접하게 그리고 있으면서도 그다지 끔찍하지 않아서 아이들이 읽기에 적합해 보였다.
늘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는 우리가 그 선택을 두고 갈등 할 때 지킬 박사의 고뇌를 기억해 보는 것도 좋겠다. 순수한 이중생활은 없다. 그리고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한 책임은 피할 수 없이 반드시 자신이 지게 되리라는 것도 이 책이 독자에게 던지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한 순간의 호기심이 자신을 수렁에 빠트릴 수 있는 요소가 너무 많은 현실에서 지킬 박사의 고뇌를 지켜본다면 갈등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