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동안 편지를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아니 학교를 졸업한 후에 누군가 나에게 직접 써준 편지를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집에서는 아이들과 가끔 편지를 주고 받는다. 말로 전하지 못한 마음을 글로 전하는 것이다.
요사이 우편함을 열어보면 각종 고지서, 보험안내문, 광고전단지뿐이다.
일방적인 알림을 나타내는 것들.
어디에도 마음을 전하는, 나의 안부를 묻는 편지는 없다.
편지를 보내는 시간, 기다리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빠른 문자, 카톡, 인터넷의 세상에서 편지는 어찌보면 뒤떨어진 시대의 전유물처럼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김동화 화백의 <빨간 자전거>를 본 순간, 마음이 환하게 밝아졌다.
너무 오랜만에 김동화 화백의 그림을 보게 되어서였기도 했지만 자극적인 스토리로 가득한 세상에서 이토록 순수하고 따뜻한 이야기가 주목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 기뻐서였다.
어린이와 청년들이 점점 사라지고 할아버지, 할머니만 남은 시골마을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람들 사이의 온기이다.
그런 온기를 느끼기 위해서 이 책은 아주 천천히 읽어야 한다.
하루에 책 한 권을 다 읽는 것이 아니라 며칠을 두고 천천히 그림과 이야기와 추억을 오래오래 마음에 그려보는 것이다.
김동화 화백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름다운 화폭에 담아낸다. 내가 어렸을 적, 유명한 만화가이셨던 김동화 화백.
그 분의 만화를 아주 푹 빠져서 읽었던 기억이 엊그제같은데 이제는 이런 예쁜 동화로 만나보게 되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계절이 지나도록 변하지 않은 것들….
<빨간 자전거>를 읽고 있으면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듯 불현듯 떠오른다.
이런 세상에 지나간 기억, 그리움을 담아내는 감성이 무어 중요하냐 할 수 있지만
겉보기에 작고 소소한 감성 하나가 세상의 풍경을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황순원의 <소나기>같은 이야기도 할머니가 들려주던 당신의 젊은 시절 이야기도
<빨간 자전거>는 참 곱디곱게 담아내고 있다.
김동화 화백의 그림이 언제부터 이렇게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어릴적 보았던 기억으로는 서양인형같은 커다란 눈망울과 이목구비를 그려냈던 것 같은데,
이제 굉장히 동양적인 수줍고 고운 선으로 사람들을 그려낸다. 풍경도 너무 아름답고.
책을 읽고 나면 한적한 시골길을 걷고 싶어진다.
만약 시골이 고향이라면 당장 기차를 타고 내려가보고 싶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