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도 돈도 없지만(?!) 나만의 집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지금 이 순간에도 꿈을 꾼다. 성냥갑처럼 꽉 짜여진 아파트가 아니라 흙을 밟을 수 있는 마당 한 편으로 제 주인을 향해 사정없이 꼬리를 흔드는 멍멍이가 있는 곳! 수영장이나 연못, 정원수는 애시당초 내가 그린 밑그림에는 없지만 사방을 둘러보면 책이 가득하고 햇빛이 제일 첫 손님으로 찾아오는 집! ‘서향만당’이라는 당호를 짓고 옆지기랑 아이들과 도란도란 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 집을 통해 본 나는 어떤 사람일까…
‘소열무’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열다섯의 소년은 자기 세계에 갇혀 있는 두 살 터울의 형 ‘소나무’와 함께 바다가 보이는 시골 마을로 이사를 온다. 한 때는 꽤나 붐볐던 휴양지였는지 몰라도 인적이 끊어진 지금, 촌스런 벽지가 붙은 팬션에 짐을 부리는 일이 좋을리 없다. 게다가 시시때때로 초록색 담요를 돌돌 만채 꿈쩍도 않는 데다 모래사장에 죽치고 앉아 죽은 불가사리에 정신줄을 놓는 형을 쳐다보면 저절로 욕이 튀어 나온다. 여기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읽다보면 욕심이 나는 책이 있다. <칸트의 집>이 내게는 그런 책이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짓지만 짓지 않은 듯한 건축물이 좋은 것이라는 걸 가르쳐준 ‘칸트’지만 나는 자꾸 집 안에, 글 안에 내가 느꼈던 것들을 다 담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처음에는 끝도 없는 긴 침묵이 견딜 수 없어서 숨이 막혔지만 어느새 ‘칸트의 집’으로 들어가 아이들과 함께 뒹굴거렸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한 건축가지만 행복하려고 지은 공간에 자신을 가둘 수밖에 없었던 ‘칸트’의 가슴 아픈 사연을 가만가만 쓸어주고 싶었다. 철학자 칸트처럼 정해진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산책을 나가는 그를 보고 엄마는 ‘칸트’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지만 말대신 침묵과 눈빛으로 아이들을 기다려주고 보담아준 그에게 이보다 어울리는 이름이 또 있을까?
모짜르트, 아인슈타인, 다윈, 뉴턴, 고흐, 칸트…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로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람들이지만 하나같이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타인과의 교류를 힘들어 했던 사람들이다. 자폐적인 성향을 보이지만 특정 분야에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서번트 증후군’으로 부르는데 ‘나무’가 바로 아스퍼거 증후군과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이다. ‘열무’의 입을 빌리자면 자기 세계에 빠져 자기밖에 모르는 나쁜 놈이며 지나치게 솔직해서 기껏 만든 친구를 한방에 쫓아버리는 죽일 놈이지만 평생 손을 잡고 같이 걸어가야 할 형이기에 숨이 막혀도 견딜 수밖에 없다. 세상에는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고 그럴 때는 자신 뿐 아니라 누구도 탓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열무’는 일찌감치 알아버렸으니까…
누구나 자신의 집을 마음 속에 품고 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 줄을 알고 나면 자신에게 필요한 집을 알게 된다는데 그래서인지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문득 낯설게 느껴진다. 내 안에 굳어진 딱딱한 집을 걷어내지 않고서야 어찌 제대로 된 집을 지을 수 있을까… 지어야 할 것보다 짓지 말아야 할 것들을 너무 많이 지었다고, 필요한 건 집이 아니라 같이 시간을 보낼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가르쳐주고 떠난 ‘칸트’ 덕에 나는 어떤 집을 짓고 있는지 돌아본 값진 시간이었다. 생기가 넘쳐 흘러야 할 집이 관처럼 죽은 자들의 집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칸트의 집>은 집이 시멘트와 철골을 조합해 만든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 주었다. 빛이라고는 들지 않던 <칸트의 집>에 찬란한 무지개빛으로 쏟아져 내리던 햇살의 환희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자기만의 집을 지어갈 많은 아이들이 <칸트의 집>을 통해 튼튼하고 단단한 집을 지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바람도 햇볕도 잘 드는 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집,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어 조금 늦는 사람들을 위해 따뜻한 차를 끓이며 기다리는 집을 꿈꾸어도 좋지 않으랴. 자녀들과 꼭 함께 읽기를 권하며 멋진 선물을 전해준 최상희 작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