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에 반해 결혼한 부부에게 서로 꿈꾸는 결혼생활과 다른 남편의 버릇, 아내의 모습보다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게 가장 큰 고민. 어느 날 남편이 황금빛 똥이 변기에 가득 쌓이는 태몽을 꾸고 결혼15년 만에 귀한 아기가 생긴 걸 알고 부부는 기뻤죠. 게다가 병원에서 가르쳐 준 출산 예정일은 행운의 7이 두개나 겹치는 7월 7일. 아내가 으레 황금색 꿈이 행운의 금덩어리로 오해할 정도로 남편은 차마 아내의 얼굴에 대고 황금색 똥꿈에 대한 사실을 말할 수 없었어요.
그러거나 말거나 아기는 엄마 뱃속에서 하루가 다르게 자랐고 아내는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면 좋을까 태교에서 신경썼어요. 그리고 드디어 7월 7일 새벽 0시 4분에 부모의 엄청난 기대를 안고 건강한 아들이 태어났지요. 부부는 아이 이름을 ‘1등하는 수재’가 되란 뜻의 일수란 이름을 지었어요. 백일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이름만 봐도 부모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넘치는지 잘 알겠어요. “자장자장 우리 아가, 우리아가 잘도 잔다. 수재되어 돈 잘 벌고 돈방석에 앉혀다오..자장자장 백점 일등, 자장자장 일등 수재.”
엄마는 아들 똥이 돈으로 보이는 행복으로 자장가 노래도 돈방석 노래로 바꿔 불렀어요. 하지만 일수 아버지의 생각은 아내랑 달랐어요. ‘혹시 나를 닮아서 공부를 못하면 어떡하지? 이름이 너무 거창한 거 아닐까?’ 좀 평범한 아이로 키우고 싶은 마음에 아내를 설득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어요. 일수 엄마는 일수가 적당히 잘 먹고 잘 크는 거 이상 애지중지 귀하게 키웠어요. 어느덧 일수는 무럭무럭 자라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일수 엄마는 흐뭇했지요. 일수가 1학년 첫 시험에서 100점, 두번 째, 세번 째 시험도 모두 100점을 받았어요. 그런데 백점은 거기까지.
받침있는 글자 받아쓰기가 시작된 다음부터는 날마다 연습을 해도 100점 맞지 못했어요. 학교에서 유일한 말썽은 코딱지를 너무 많이 파서 콧속이 허는 거외 선생님뿐 아니라 동네 아이들도 일수가 있는 듯 없는 듯한 조용한 아이, 특별히 잘하는 것도 눈에 띄는 것도 없는 평범한 아이로 그의 존재를 까먹기 일쑤였죠. 그나마 동네아이들은 초등학교 앞 일수네 문구점에서 공짜로 얻어먹는 불량식품때문에 일수를 놀이에 끼워주기도 하고 해마다 일수 생일잔치는 동네잔치 수준으로 먹을 게 많았죠. 하지만 더 이상 약간의 공짜 불량식품도 통하지 않는 고학년에 접어 들어서는 그저 ‘완벽하게 보통’인 일수의 학교생활이 좀 나아지는 듯 처음으로 특별활동부 서예부 선생님께 소질있다는 칭찬을 들어요.
틈만 나면 떠들고, 준비물 안 챙겨오고 붓으로 낙서하고, 먹물로 장난치는 아이들 사이에서 말썽 한번 안 피우는 일수는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아요. 실력이 나날이 발전하진 않았지만 일수에게도 꿈이 생겼어요. 그리고 개교 30주년 기념 전시회에 서예부 대표로 일수의 작품이 전시. 일수 엄마는 아들의 작품을 자랑스러워하며 이 다음에 한석봉 뺨치는 명필이 될 거라 확신에 차 일수를 데리고 동네 최고 명필을 찾아가는데 과연 일수는 어머니의 기대대로 한석봉같은 최고의 명필이 될 수 있을지 이야기는 저 어렸을때 밤마다 화장실 귀신이 나타나 빨간 휴지줄까? 파란 휴지 줄까? 공포에 떨었던 옛날이야기를 듣는 거 같은 재미가 가득해요.
초등 3학년, 저희집 아들역시 유치원때부터 줄곧 변함없었던 축구선수에 대한 꿈을 초등학교 입학해서 특별활동부로 축구부에 들던 때가 겹쳐 보이더군요. 그야말로 운동장에 비가 와서 축구를 할 수 없는 날 빼고는 늘 축구공을 가지고 놀았던 저희 아들은 주위에서도 축구꿈나무쯤 인정하는 눈치. 내심 이러다 국가대표같은 훌륭한 축구선수가 될 지 모른다는 기대도 가졌었죠. 그러나 축구부 특별활동 시간에 운동장에서 편을 나눠 축구 경기라도 할라치면 공을 쫓아 열심히 뛰는 게 아니라 상대편 골대 앞에서 웅크리고 앉아 흙장난 하다 공이 패스해 오면 그제야 슛만 하는 아들을 보고 일찌감치 아들에 대한 헛된 기대는 미련없이 접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더 남들이 뭐라 건 아들밖에 모르는 일수 엄마를 보며 내내 일수 아버지 마음같았어요. 더욱이 자신이 잘하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일수의 마음이 한없이 불편하다는 걸 알고나서는 더 그러하죠. 이제 그만 좀 아들에 대해 기대를 접을 만한데..아무리 부탁해도 아들 자랑을 멈추지 않는 엄마는 포기란 모르네요. 그도 그럴것이 과거에는 자식 하나만 보고 억척스럽게 살아 온 우리 부모님이 자식을 훌륭하게 키워내는 헌신적인 사랑으로 느껴졌다면 오늘날은 아이 스스로 뭐 하나 결정하지 못하는 잘못된 부모교육을 꼬집는 듯해서 뜨끔하네요.
하지만 일수 엄마가 남편의 충고에 따라서 아들에 대한 기대를 접는 순간, 삼십 분도 되기 전에 원래 마음으로 돌아오는 장면만 봐도 예나 지금이나 부모에게 자식의 미래는 살아가는 희망이고 전부란 생각이 드네요. 아무리 지나친 부모 사랑이 자식에게 독이 된다해도 부모는 그 희망으로 하루하루 힘든 나날을 버티고 살아가는 힘이 되니까요. 소위 못난 자식일수록 부모는 더 억척스럽게 이 악물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거 같아요. 반면에 주인공 일수와 한글자만 다른 일석이는 일수가 가장 부러워하는 소위 잘난 친구. 커서 어엿한 일석반점 주방장 사장님이 돼서 특별한 메뉴개발에 여념이 없는 일석이라도 묘하게 일수와 같은 고민에 힘들어해요.
마치 서예 학원 원장이 일수에게 했던 말이 메아리가 되어 우리 자신에게 되물어요. “나는 누구인가? 네 쓸모는 누가 정하는가?” 그리고 내 아이의 쓸모는 누가 정하는가? 이미 부모의 절대권력으로 자식을 손아귀에 쥐고 흔들어도 절대 겉으로 드러내지 마세요. 부모의 기대가 크면 클 수록 내 아이의 작은 실수도 엄청난 시련이 될 수 있는 만큼 아이 스스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있게 어떤 대단하고 특별하게 중요한 기대에도 너무 기대지 마시고 묵묵히 지켜봐주세요. 한편, 가훈업자 일수씨처럼 올해도 얼마남지 않은 12월에 다가오는 새해를 뜻깊게 맞이하는 자신만의 가훈찾기에 도전해 보는 것도 나를 찾는 여행일 수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