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빨간색 표지와 <최후의 Z>라는 제목은 다분히 도전적이다. 게다가 표지 속에는 비록 그림자의 형태이지만 총을 든 누군가가 있지 않은가. “최후”라는 어휘에서부터 지구의 종말이 연결될 수밖에 없고 내용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몇 달 전 읽었던 <인투 더 포레스트>도 비슷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과연 어디까지 내용이 확장될 것인가, 어느 부분에 작가가 중점을 두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시작 부분은 <인투 더 포레스트>와 아주 비슷하게 전개되었다. 고립된 시골 집, 이 골짜기 너머에선 이 세상에 멸종을 불러올 만한 일이 벌어졌다. <인투 더 포레스트>에선 알 수 없는 전염병 같은 것이었지만 <최후의 Z>에선 핵전쟁이다. 핵이 떨어졌고 세균 전쟁이 일어나며 전쟁은 단 일주일 만에 끝났지만 결국 살아남았던 사람들조차 분진이나 그 영향으로 인해 모두 죽었다. 버든 언덕 골짜기만이 달랐다. 이곳은 바람이 밖에서 불어오지 않고 안에서 순환했기 때문에 이 골짜기 안에 살던 두 가족은 살아남았다. 하지만 다른 가족들은 바깥 세상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밖으로 나갔고 골짜기에는 16살의 딸 앤만 남았다.
원래는 동생도 함께여야 했다. 하지만 동생은 몰래 차 속에 숨어들었고, 사촌동생의 개 파로 또한 사라졌다. 그 이후 앤은 혼자만의 삶을 이어간다. 살아남기 위해 소의 젖을 짜고, 텃밭을 일구고 골짜기 안 슈퍼마켓에 들러 필요한 것들을 가져오고 오염되지 않은 연못 물을 길고 음식을 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은 꿈은, 이미 사라졌다. 이룰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단지 한루하루를 살기 위해 버티는 삶이었고 매일매일을 기억하기 위해 일기를 적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이 골짜기에 낯선 이가 찾아온다. 지구에 살아남은 사람은 단 한 명, 자신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앤은 두려움과 희망, 기쁨을 함께 느낀다. 외로움을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어쩌면 이 골짜기에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중요한 건… 이 낯선 이 “그”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이다.
소설은 철저하게 앤의 시선으로 묘사된다. 앤이 일기를 쓰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루미스의 생각은 전혀 알 수 없다. 그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조차 앤의 생각을 따라가며 함께 추리해야 한다. 동시에 앤의 심리가 고스란히 일기에 적혀 있으므로 우리는 앤이 루미스의 어떤 행동, 어떤 말에 반응하는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할 생각인지를 잘 알 수 있다. 앤이 얼마나 적극적이고 치밀한지, 얼마나 꿈을 꾸며, 미래를 바라며 사는지를 말이다.
책을 읽기 전에 이 소설을 원작으로 최근 개봉된 영화 “지포 자카리아”에 대해 찾아봤다. 16세 보다 훨씬 나이 들어보이는 여주인공과 두 명의 남자…였다. 왠지 “사랑” 냄새가 물씬 풍겼고 삼각관계까지 될 것 같으니 이게 정말 지구의 종말에 대한 책일까 싶었는데, 영화는 원작 소설의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바꿨나 보다. 소설에선 루미스 외에 다른 누구도 나오지 않는다. 또,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최후의 지구에 두 사람 만이 남았을 때 벌어질 만한 두 인간 간의 이야기이다. 평화롭게 지낼 것이냐, 누군가를 소유할 것이냐. 그렇지 않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치밀한 심리 싸움이다.
“자카리아”는 앤이 좋아하는 책(어릴 적 알파벳을 익혔던) 속 마지막 Z의 설명이며 Z가 들어간 인물이다. 소설에선 지구의 가장 마지막 인간이라는 뜻이 담긴 듯하다. 하지만 앤이 정말 최후의 인간이었을지는 모르겠다.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 앤을 위해, 인류의 미래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