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하면 떠오르는 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책보다 먼저 조용필의 노래가 떠오른다. 그러다 보면 앞부분의 그 긴 부분의 독백이 주는 진지함보다는 뭔가 알 수 없는 웃음이 떠올랐다. 킬리만자로가 어디 있는지 그 가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생각해보지도 않고 말이다. 이제 “킬리만자로”를 들으면 지금까지처럼 마냥 웃으며 노래 한 소절을 떠올릴 것 같지 않다. 대신 그곳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계 곳곳에서 하루를 버티는 사람들을 떠올릴 것 같다.
그 전, <킬리만자로에서, 안녕>은 지금 여기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세계 그 어느 곳보다 공부에 지치고 경쟁에 시달리는, 그렇다고 성공이 보장되지도 않아 미래의 불학실성 앞에 무너지기 직전의 대한민국 학생들 말이다. 그런 고등학교 2학년생, 윤성민은 가방 하나 둘러메고 킬리만자로를 향해 떠난다. 과감하게 “엄마,돈 좀 주세요.”를 외치고 이유도 묻지 않고 아무 의심 없이 현금 카드를 내주는 엄마를 외면한 채. 독자가 의아함을 막 품고 있을 때 7음절의 두 문장을 보여준다.
“아 버 지 도 죽 었 다.
진 수 회 도 죽 었 다.”…10p
그 이후 서술을 통해 성민이의 짧은 생을 되감기 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대한민국 고등학교 2학년생 윤성민의 이야기는 조금 지루하다. 지금까지 어디서나 들을 수 있었던 흔하고 흔한 이야기로 들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한민국 청소년 소설에서, 이웃집을 통해서, 뉴스를 통해서… 무척이나 일반화된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혹은 잘 사는 집과 비교하여 조금은 가난한 우리를 변명 혹은 정당화하기 위해 꾸며내기 좋은 이야깃거리랄까. 너무 흔한 그 이야기가 힘을 갖게 만드는 것이 바로 킬리만자로행이다.
자신을 꼭 킬리만자로로 데려다 달라는 여자친구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무작정 여행길에 오른 성민은 케냐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만난 여대생과 동행을 하게 되고 그녀와 함께 킬리만자로로 향하면서 만나게 되는 아프리카 사람들, 사건들을 맞딱뜨리며 조금씩 자신을 확인해간다.
어떤 일이 있어도 “폴레폴레(천천히)”라고 외치는 그들 사이에서 처음엔 그들의 여유를 배웠다가 답답함, 억울함 속에서도 폴레폴레를 외치는 사람들에게 화도 냈다가 극한의 가난함 속에서도 여유를 가지고 행복하다는 가족을 만나 삶을, 자신의 위치를 되새겨본다.
청소년기에는 많은 것들이 고민으로, 힘듦으로 다가온다. 억측하게 되고 자기 연민에 빠지기도 하지만 바깥에서 자신을 찬찬히 들여다볼 여유가 없다. 아는 분이 그래서 청소년기에서 힘들게 사는 나라를 방문하면 좋다는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다. 내가 있는 곳이 얼마나 행복하고 편안한 삶인지 깨닫게 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 꼭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만 힘든 건 아니라고, 깨닫게 해 줄 필요는 있는 것 같다. 성민이가 킬리만자로행 이후로 부딪혀 살아보자고 마음 먹은 것처럼.
수능이 끝났다. 불수능이라고 그 어느 때보다 긴장 속에 하루하루를 보낼 아이들에게 이 하루의 결과가 너희의 인생 전체를 결정짓지는 않는다고 말해주고 싶다. 결국은 너희들이 가장 원하고 하고 싶은 것을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살면 된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