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터니 브라운의 그림은 독특하다. 아니 아이들이 좋아하는 정감있는 그림이라기 보다 무언가 꼬집는 듯한 냄새가 난다. 특히 어른들의 아집과 욕심 그리고 덧없음을 이야기한다. 아마도 아이들도 딱히 말로는 표현하지 못해도 느낌으로 알지 않을까. 그러기에 더 열광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나는 엄마가 없나 보다. 너무 바빠서 딸고 이야기할 시간도 없는 아빠와 식탁에 앉아 있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썰렁하다. 그래서 푸른색으로 단순하게 처리한 것은 아닐까. 싱크대를 보면 아주 최소한의 것 외엔 아무것도 없다. 신문을 보고 있는 아빠의 모습은 또 어떻고.. 딸에게는 관심도 없는 듯 굳은 얼굴로 신문만 보고 있다. 저녁에 집에 와서도 항상 일만 하는 아빠. 아빠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 한나의 뒷모습이 너무 외로워 보인다. 나도 아이들에게 항상 바쁘다는 핑계로 한나 아빠가 하는 말을 종종 하곤 했는데 왠지 찔린다.
아빠는 일하고 한나는 커다란 방에서 혼자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그림을 보면… 한나가 너무 안스럽다. 방은 또 왜 이렇게 큰 것인지. 거기다가 쓸쓸하고 외로운 것을 극대화 하기 위해 한나를 구석에 앉게 해 놓았다. 이 또한 모두 작가의 의도겠지. 벽에 붙어 있는 지도는 아무래도 아프리카 같다. 고릴라를 만나고 싶어하는 한나의 마음이 담긴 지도.
고릴라를 좋아하는 한나는 생일 선물로 고릴라를 갖고 싶다고 한다. 한나가 이야기한 것은 진짜 고릴라였을 텐데 아빠는 인형을 사 준다. 역시 의사소통이 안되나보다. 하긴 아빠가 한나의 진짜 마음같은 것을 들여다 볼 여유가 있기나 했을까. 한나네 집은 온통 고릴라다. 앤터니 브라운은 이런 장치를 좋아하나 보다. 벽에도 고릴라 그림이 있고 전듣갓도 고릴라 그림이고 모나리자도 고릴라다. 정말 못말린다.
그런데 그렇게 좋아하는 고릴라와 한나는 신나는 모험을 한다. 동물원도 가고 영화도 보고 춤도 춘다. 한나가 아빠와 하고 싶었던 모든 것들을 하는 것이다. 고릴라가 한나를 끼고 날아갈 때 담장 위에 있던 고양이가 놀라는 모습은 너무 재미있다. 아이들은 이런 것 하나까지도 결코 놓치지 않는다. 비록 어른은 놓치더라도 말이다. 침팬지가 우리 안에서 슬프게 쳐다 보는 모습은 사진이 아닐까 의문이 들 정도로 자세하고 섬세하다. 역시 대단하다. 어쩜 피부까지도 이렇게 자세하게 그렸을까.
한나의 생일날 아침. 드디어 기적이 일어난다. 아니 기적 같은 일이… 드디어 아빠가 동물원에 가자고 하는 것이다. 어! 그런데… 아빠 청바지 뒷주머니에 삐죽 나와 있는 저 바나나는 뭐지? 아이들은 제각기 다른 대답을 한다. 하지만 희망을 이야기 하는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기에 아이들도 안심한다. 한나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한나와 아빠가 걸어가는 뒷모습은 정말 고릴라와 걸어가는 모습과 똑같다. 이제 아빠도 처음에 보았던 무표정하고 싸늘한 모습이 더이상 아니다. 이로써 아이들에게는 안도감을 주고 어른들에게는 따끔한 일침을 가하는 작가의 이야기가 끝난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가 필요로할 때 옆에 있어 주었을까. 혹시 나중에 나중에 하며 미루다가 그 때를 놓치는 실수를 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본다. 다행이다. 아직은 아이들이 그 정도로 자라지는 않았다는 것이… 그렇다고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앞으로 남아있다는 것이 너무나 다행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