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둘 다 초등학셍이지만 아직도 좋은 그림책을 만나면 일단 사고 본다. 그야말로 필 받은 책은 주저없이 사는 편이다. 어느 때인가 문득 바바라 쿠니에 대한 책들을 살펴보다가 깨달았다. 그녀의 책은 거의 다 있구나… 바로 얼마 전까지도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세월도 그녀를 비껴가지는 않았다. 2000년에 작고하셨으니 말이다. 그녀의 그림은 잔잔하고 정이 느껴지며 어느 달력에서 본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리고 요즘은 이런 그림풍으로 된 직소퍼즐도 많다. 그래서 더 익숙한 것일까. 아니다. 그런 직소퍼즐에 있는 그림들이 바바라 쿠니의 그림을 보았기 때문에 익숙하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실존 인물인 에밀리 디킨슨을 모델로 에밀리의 삶을 그려낸다. 에밀리 디킨슨? 글쎄… 시와 별로 친하지 않은 나로서는 생소했다. 찰스 디킨슨은 알아도 에밀리 디킨슨은 못 들어 봤으니 그럴 수밖에. 그러다가 언젠가 로베르코 인노첸티의 <마지막 휴양지>라는 ‘난해한’ 책을 읽다가 거기에 에밀리 디킨슨이라는 시인이 언급된 것을 보았다. 그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하며 내가 워낙 시인을 모르니 별 관심도 두지 않았었다. 단지 인노첸티가 말하기를 ‘이 시대의 가장 뛰어난 시인’이라는 수식어가 있기에 대단한 사라이었나 보다라고만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다가 얼마 안 있어 이 책을 보았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인데… 하다가 문득 인노첸티가 생각나기에 그의 <마지막 휴양지>를 다시 들춰보았다. 그랬더니 동일인이란다. 그 사실을 알고는 신비감에 휩싸여 이 책을 읽었다. 아니 주저없이 샀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한테 인노첸티의 책과 함께 이 책을 소개하곤 한다.
평생 은둔생활을 한 시인. 마지막 25년은 집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다고 하니 과연 보통 사람 맞나? 하는 의문이 든다. 우리는 하루만 밖에 안 나가도 굉장히 답답하고 허전하고 그런데 말이다. 은둔생활을 했기에 그녀의 시는 살아 있을 때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죽고 나서야 많은 시가 발견되었다고 하니… 아무 욕심도 없는 진정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나 보다. 비록 낯선 사람들은 두려워 했지만 어린이들은 좋아했다고 한다. 그녀가 어린이처럼 순수한 마음을 가졌기에 서로 통한 것이리라.
이 책에서는 꼬마 여자 아이의 눈으로 에밀리를 묘사한다. 주위 사람들은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에밀리를 이상한 사람이라느니 심지어는 미쳤다느니 하지만 꼬마는 믿지 않는다. 엄마와 에밀리의 집을 방문하면서 비로소 에밀리와 대면하게 되는 장면은 신비롭다 못해 조심스럽다. 혹시나 꼬마도 만나지 않고 숨어버리면 어쩌나… 그러나 다행히 아이와는 말도 하고 시도 지어 주고 선물까지 준다. 역시 아이들과는 이야기 했다더니 작가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꼬마가 거실에서 엄마와 있을 때는 역시 에밀리가 나타나지 않는다.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두려움에 떨게 했을까. 갑자기 에밀리에 대한 많은 것들이 궁금해진다.
그림책이지만 글이 결코 적지 않다. 그렇다고 위인전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 보다 더한 감동을 주는 책이다. 아이들에게도 인물에 대한 업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감성으로 접근을 하면 더 많은 것을 느끼지 않을까. 아이들이 마음으로 느낀 것을 일목요연하게 말이나 글로 표현하지 못한다고 해서 느낀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너무 성급한 판단으로 아이들을 몰아부치지 말고 기다려주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아니 나부터 그래야겠다.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어느 한 분야에서만이라도 인정받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풀어가는 책이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 아, 언제 봐도 편안하고 푸근한 바바라 쿠니의 그림! 그녀가 그렸기에 책의 감동이 배가 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