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만큼 우리 민족에게 배척당하는 동물도 없을 듯 싶다. 야비한 남자를 늑대에 비유하고 동화책에 등장하는 늑대는 무자비하거나 어리석거나 힘만 센 단순무식형으로 줄곧 표현 된다. 실상 사람들이 늑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애완동물로 가장 많이 사랑 받고 있는 개의 조상이라는 정도일 것이다. 외국 동화책의 경우 고학년 용 책에서 조금은 사색적인 철학적 면모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표지의 한 쪽 끝에 비껴있는 제목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책의 문패와도 같은 역할을 하는 제목이 한 쪽에 치우쳐있기에 혹시나 하는 생각에 책을 활짝 펼쳐 뒷표지까지 한꺼번에 보았다. 역시 늑대의 안면을 중심으로한 늑대의 얼굴이 전체에 표현되어 있다. 흡사 사진 같은 그림에 탄성을 보내며 속지 속의 작가 소개를 펼쳐 보았다. 그림을 그린이는 수천 마일에 달하는 개 썰매 경주를 하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알래스카에서 개들을 훈련시키며 살고 있다고 하니 정말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표현할 수 없지 싶은 만큼 늑대의 세밀함에 감탄한다. 한올 한올 살아있는 터럭 뿐아니라 무엇보다 마음을 끈 것은 어딘가를 지그시 응시하고 있는 늑대의 눈이다. 표지를 넘기며 외줄로 나 있는 늑대의 발자국을 따라 책 속으로 들어갔다.
둥근 달이 떠 있는 밤, 짝을 잃은 회색 늑대는 사냥을 나간다. 회색늑대는 일부일처제로 가족단위의 생활을 한다고 하는데 이늑대에겐 가족이 없다. 아마도 가족을 이루기 전에 암늑대를 잃은 모양이다. 날씨만큼이나 추운 마음을 추스르며 늑대는 밤 사냥을 나선다. 둥근 달이 걸쳐져 있는 눈 덮인 설원이 실감나게 다가온다. 늑대의 발길을 따라 나선 산등성이며 개울가에서 찬바람이 이는 듯하다. 산 꼭대기에 이르자 늑대하면 떠오르는 울부짖음을 토해낸다. 산과 산을 타고 메아리가 귀에 울린다.
바람결을 타고 맡은 토끼 냄새를 따라 사냥을 하던 회색 늑대는 본능적인 위험 신호를 느끼고 토끼를 달아나게 내버려 둔다. 회색 늑대의 발끝에는 또다른 늑대들의 그림자가 걸려 있다. 황야의 결투를 보듯 달빛아래 이글거리는 두눈으로 마주보고 서 있는 두 늑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바로 그 순간 무리에서 쏟아지는 달빛같은 하얀 늑대 한 마리가 무리 속에서 걸어 나온다. 자신의 무리에서 회색 늑대에게로 다가온 하얀 늑대는 서로를 탐색하다 함께 길을 나선다. 자신의 안전을 회색 늑대에게 맡긴채 잠을 청하는 하얀 늑대가 너무나 평안해 보인다. 봄이 되면 이 늑대들은 자신들만의 새로운 무리를 만들 것이다. 순간 늑대가 일부일처라는 말이 언듯 떠오르며 이 회색 늑대 참 지조가 없구나하는 생각을 하다가 회색 늑대의 눈을 들여다 보며 깨달았다. 회색 늑대에게 있어서의 일부일처란 현재 자신의 유일한 배우자에게 충실한 일부일처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에는 세계 각지에서 들을 수 있었던 늑대의 울음소리를 지금은 들을 수 없다고 한다. 인간들은 늑대들과 함께 살아가기 보다 그들을 멸종시키기로 작정한냥 무자비한 늑대 사냥을 했다. 늑대들은 잔인하게 살해되고 독살되어 멸종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고 한다. 삶의 열쇠를 인간에게 맡긴채 개처럼 전락해가는 동물원의 늑대가 아닌 거칠고 사나운 울음 소리를 토해내는 늑대를 후손들에게 남겨주는 일을 생각해 봐야한다. 회색 늑대의 눈을 바라보며 그 숨소리는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