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들을 때, 저는 멜로디보다는 가사에 더 비중을 두어 듣는 편입니다.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아도 절로 그렇게 되어집니다.
그래서 시간이 흘러 어떤 노래를 떠올렸을 때 가사만이 떠오르는 경우가 많지요.
제 성향이 그러하다 보니 아이에게 그림책을 줄 때도 그림보다 글에 더 비중을 둘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림의 기법이니, 구도니 하는 것은 잘 알지도 못할 뿐더러 오래 기억되지도 못하지요.
당연히 느낌으로 그림을 볼 뿐입니다.
눈으로 보아서 좋고 가슴으로 느끼기에도 좋은 그림이면 족하다는 게 제 나름의 그림 감상법이지요.
달구지를 끌고
이 책은 글보다는 그림에 더 비중을 둔 듯한 책입니다.
글의 내용을 먼저 구상하고 그에 맞게 그림을 그렸다기 보다는 좋은 그림을 두고, 그 그림을 설명하는 듯한 내용으로 보여집니다.
그렇다고 내용면에서 소홀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한 해를 열심히 살고, 또다른 한 해를 살기 위해 준비를 하는 가족의 얘기니까요.
그렇습니다.
이 책은 가족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농촌에 사는 가족 이야기이지요.
농부는 일년내내 가족들이 일해서 모은 것들을 달구지에 싣습니다.
4월에 농부가 깎아 둔 양털 한 자루,
농부의 아내가 베틀로 짠 숄,
농부의 가족 모두가 만든 천,
농부가 직접 쪼갠 널빤지,
농부의 아들이 부엌칼로 깎아 만든 자작나무 빗자루,
밭에서 캐낸 감자,
사과 한 통,
꿀과 벌집,
순무와 양배추,
단풍나무 설탕이 든 나무 상자,
아이들이 모은 거위털 한 자루.
그렇게 달구지에는 농부 가족의 일년이 담겼습니다.
일년이 담긴 달구지를 끌고 마을 시장에 가서 지나온 일년을 팔고, 다가오는 일년을 위해 필요한 물건들을 삽니다.
벽난로 불 위에 매달아 놓을 무쇠솥,
딸에게 줄 수예 바늘 하나,
아들에게 줄 주머니칼 하나,
그리고 가족 모두를 위해 앵두 맛 박하 사탕 2파운드.
돈이 생겼다 하여 욕심부리며 허튼 곳에 쓰지 않고 꼭 필요한 것만 구입한 농부.
그리고 가족들중 누구 하나 다른 것을 더 사오지 않았다고 투정부리는 이 없군요.
그렇게 가족은 또다른 일년을 만들어 갑니다.
모두 함께.
너무도 바삐 돌아가는 도시 생활.
일 분 일 초가 아까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또 누르지요.
걸어서 5분 거리도 차를 타며 항상 좀 더 빨리를 외치지요.
이제 얼마남지 않은 2007년을 준비하면서 가족들과 생활의 기준 단위를 한 단계씩 위로 잡아보는 것은 어떨까 싶네요.
초가 아닌 분으로, 분이 아닌 시간으로, 시간이 아닌 하루, 한 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