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꼼히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아이…
할아버지는 옛날 이야기를 잘 해주십니다.
“얘야,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못했단다………”
이렇게 시작되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아이와 저는 깊은 생각에 잠겼답니다.
아침마다 학교에 갈 때 지나쳐가던 광장 한 가운데에 있던 커다란 천사 동상!!
하마터면 버스에 치일 뻔 했던 때도, 움푹 파인 구덩이를 만나거나 으슥한 곳을 지날 때에도…
거위들이 꽥꽥대며 달려들어도 할아버지는 무서운 것이 하나도 없었답니다.
높은 나무에도 잘 올라갔고, 깊은 호수를 보면 겁 없이 풍덩 뛰어내렸지요.
덩치 큰 개도 할아버지만 보면 무서워서 벌벌 떨었답니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조금씩 어른이 되어갔고 전쟁이 터졌고 배고픔에 시달렸고 여러 가지 일을 해야만 했어요.
때로는 잘하지 못하는 일도 할 수 없이 해야만 했구요…
그러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아빠가 되고, 집을 짓고, 자동차도 사고 손자도 생겼어요.
생각해 보면 정말 멋진 인생을 사셨다고 할아버지는 말씀하십니다.
조용히 밖으로 나와 생각해보니 정말 멋진 하루라는 생각이 듭니다.
책을 읽는 내내 엄마 생각이 났습니다.
아버지 생각도 나구요.
할아버지의 천사가 광장 한 가운데에 있던 동상의 천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평생 할아버지 곁을 따라다니며 든든하게 지켜주고 함께 한 천사라면 저는 할아버지의 천사는 할아버지의 어머니, 아버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책의 내용도 너무 잔잔하고 좋았지만 함께 읽게 되는 그림을 보는 내내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지워지질 않았어요.
이 세상에서 가장 나를 지켜주고 나를 지탱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부모님일 거란 생각이 듭니다.
내가 가장 나약할 때도, 내가 가장 힘들 때도, 사람들이 모두 나에게서 등을 돌릴 때도 끝까지 내 옆에서 나를 지켜주고 내 편이 되어 주실 분들…
한 아이의 엄마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도 부모님은 제게 든든한 지원군이십니다.
지금까지 저를 키워주시고, 지금의 저를 있게 해 주신 것도 모자라 직장맘인 저를 위해 저의 아이까지 돌봐주고 계시답니다.
딸이다 보니 친정엄마와의 사이가 각별합니다만 이제 저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버지에 대한 생각도 갈수록 애틋해집니다.
작년 정년을 맞으신 아버지…
평생을 힘들게 일하시고 우리 남매를 정성껏 길러주셨는데 막상 일을 그만 두게 되니 요즘 아버지가 많이 울적해 보입니다. 며칠 전에는 친구분의 아내가 갑자기 돌아가셨답니다. 급성 암이 너무도 빨리 진행이 되어 손쓸 겨를도 없었다고 하더군요.
그렇지 않아도 일을 놓으시고는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을 많이 보이시는데 주변에 이런 일까지 겹치니 자꾸만 우울해지시는 것 같아요.
할아버지의 천사처럼, 그리고 지금껏 저에게 천사가 되어 주셨던 아버지, 어머니처럼 저 역시 우리 아이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주어야겠죠. 이제 거기에 더해 제가 부모님의 천사가 되어 드리고 싶어요. 그럴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