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
글 케이트 디카밀로 · 그림 배그램 이바툴린
임 하 늘
나는 이 책에 나온 토끼인형을 보며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았다. 나도 어릴 때 엄마가 사주신 펠릭스 (펠릭스의 세계여행에서 따온 이름)라는 인형이 있었다. 그 인형과의 추억이 있어서 이 이야기는 나의 가슴에 더 와 닿을 수 있었다.
이 책의 주인공 토끼인 에드워드는 처음에 부잣집에서 주인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고 있었다. 부자 딸의 인형이었는데 그 딸은 에드워드를 너무도 좋아해서 돈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해 주었다. 비단옷과 중절모가 자신의 개인 옷장에 겹겹이 쌓여 있었고 반짝반짝 빛나는 구두도 많았다. 에드워드는 매일 비단옷을 입고 식탁에 같이 앉아 식사하는 장면을 보고 있기도 하였다. 그리고 매일 창가의 소파에 앉아 딸이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며 멋진 시계를 바라보았다.
이 한결같은 인형의 삶에 모험이 닥쳐온 것은 그의 가족들과 배를 타고 여행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바로 딸의 친구들이 에드워드를 바다에 떨어뜨리고만 것이다!
그 후 에드워드는 해변으로 실려 와서 여러 가지 일을 겪게 된다. 부랑자, 할머니, 그리고 병든 아이의 인형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 거리에서 공연을 하기도 한다. 이런 여행을 하면서 그는 병든 자들을 보며 자신의 편안한 삶을 되돌아보았고 부랑자를 보며 딸아이의 으리으리한 집을 떠올려 보았다. 그동안 에드워드는 우리에 갇혀서 세상을 내다보지도 못하고 살아왔던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같은 토끼인형이라도 펠릭스를 에드워드처럼 대하지는 않았다. 비단옷을 입히거나 여행에까지 데리고 가지 않았다. 그 대신에 오히려 인형과 함께 스파게티를 먹으며 온 몸에 국수 가락을 휘감았고 같이 작은 욕조의 거품에 휩싸여서 장난을 쳤다. 그리고 거리를 지나다가 조금이라도 무서운 것이 있으면 토끼의 귀를 잡고 눈을 가렸다. 매일 집에서 귀를 꼭 잡고 있었으며 가끔 씩 리본이나 다른 인형들의 식탁보를 입혀주고 내 헌 옷으로 옷을 만들어 입혀 주었다. 어쩌면 펠릭스는 에드워드보다 더 행복했을 것이다. 에드워드는 매일 하는 일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고 생활의 활력소나 재미있는 일들 없이 살았다. 그렇지만 펠릭스는 어린 시절 나와 많은 것을 같이 느꼈고 경험했다. 안전하고 매일 편안하기만 한 것이 인형들에게 좋기도 하겠지만 스스로 존재감을 못 느끼고 심심하며 지루할 것이다. 사람도 그런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약간의 모험을 해 보기도 하며 흥미로운 일들도 경험하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에드워드가 오히려 바다에 빠진 것이 잘된 일 이라고 생각한다. 에드워드 자신도 나중에 진짜 세상을 알게 되면서 자신을 던진 주인의 친구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을 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흔히 어린아이들이 인형들에게 살아있는 것처럼 대하고 진짜 인형이 살아있다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서 글로 풀어냈다. 나 같이 한번 쯤 인형을 가지고 놀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더 쉽게 공감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평범한 면이 있다. 부잣집에서의 호화로운 생활을 자세히 묘사하지 않아서 한 눈에 보았을 때 부자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또 바다에 빠지는 사건 뒤로는 누구나 생각 할 수 있는 우리 삶의 일부분의 일밖에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이야기가 느슨해진다.
내가 만약 작가였다면 할머니를 만나는 대신 청소부 할아버지를 만나 도시의 더러운 쓰레기들을 보게 되며 느끼게 쓸 것이고, 병든 아이를 만나는 대신 응급실의 간호사의 인형이 되어 사람들의 아픔을 직접경험 하게 할 것인데. 조금 더 과장한 이야기로 풀어내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생활의 소박하고 여러 사람들의 일상을 나타낸 것도 나름대로 아름답게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과하고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와 펠릭스를 떠올렸다. 또 토끼인형의 생각을 묘사하여 나도 같이 느낄 수 있는 책이어서 두고두고 읽고 싶은 책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