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파랑 덕분에 눈까지 맑아지는 그림책입니다.
마지막 장까지 글자가 하나도 없는 책이에요. 글자가 없는 책은 어른보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유리합니다. 어른들은 괜히 엉뚱한 곳에 끼워맞추려 하고,그러다 헛다리 짚기 마련이지요. 아이에게 그림만 있는 그림책을 보여주면 말이 많아집니다. 혼자서 중얼거리는데 가만히 듣다보면 정말 그 말이 맞구나 라고 맞장구 치게 됩니다. 오히려 아이에게 배울 점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되지요.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에는 독특한 색이 나와요. <나의 명원 화실>에서는 노란 연두빛이 화사함을 더해주었는데, <파도야 놀자>에서는 시원한 파랑이 마치 바닷가에 와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해주어요. 그냥 파랑이 아니고 하늘빛 파랑이에요. 파랑, 회색, 먹색, 그리고 여백이 전부이지만 그림책 자체는 꽉 차있는 느낌이 들어요. 단순한 색으로도 낯과 해질 무렵, 그리고 밤이 오는 순간까지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합니다.
그림책을 한 장씩 넘겨보면서 아이의 엄마는 어디에 갔을까 떠올려 보았어요. 아이가 파도와 장난도 치고 물벼락을 맞고, 조개와 새와 파도와 어울려 노는 동안 무얼 하고 있을까, 생각해 보았어요. 제가 엄마라면 일곱 번째 페이지 쯤에서 짠~ 하고 나타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아이가 파도를 향해 돌진하는데 가만히 있을 엄마가 몇이나 있을까요. 하지만 책 속 엄마는 아이 곁에 나타나지 않아요.더 큰 파도를 뒤집어쓰고 몸과 머리가 젖어 쭈그리고 앉아 있어도 엄마는 오지 않아요. 아이는 잠깐 앉아서 젖은 몸을 웅크리고 있지만 다시 일어나서 더 신나게 놀아요. 큰 파도가 가져온 조개와 이런저런 바다생물들과 함께요. 새도 신나서 펄럭거립니다. 너무 신나게 놀았더니 이제 해가 가물거리기 시작합니다.
그때 바로 엄마의 양산 한 부분이 살짝 보여요. 엄마는 아이 주변에 머무르면서 아이를 그저 바라보기만 한 거예요. 엄마가 곁에 없었기에 아이는 재미와 슬픔과 의기소침, 다시 일어남, 행복을 모두 느껴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저처럼 일곱 번째 페이지에서 양산을 쓰고 아이 시야에 나타났다면 아이는 신나게 놀 수 없었을 겁니다. 엄마의 바른 마음과 올바른 자세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는 책입니다.
바닷가에 대한 추억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많을 거예요. 여름 휴가를 바다로 떠나 본 아이들이라면 아마 책을 보면서 이거 내 얘긴데..공감할 겁니다. 유진이도 가끔 바다에 가서 실컷 놀다 와요. 파도를 무서워해서 가까이 가지는 못하지만 모래 장난치는 걸 좋아합니다. 앞으로는 책 속 아이처럼 용감하고 과감하게 파도와 함께 놀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그리고 저는 책 속 엄마처럼 아이를 믿고 마음껏 놀 수 있게 지켜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겠구요.그림만 있는 책인데도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책입니다. 바다에 대한 추억과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 그리고 씩씩하게 맞서면 더 큰 행복이 찾아온다는 진실에 대해서요.
파랑과 흰색만으로도 움직임이 강하고 무시무시하게 큰 파도를 표현한 것이 참으로 신기합니다. 새들의 힘찬 움직임, 아이의 순수함, 시원한 파도를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었어요. 아이와 그림을 보면서 바다와 파도에 대한 소중한 추억을 하나씩 떠올려 보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