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른한 잿빛 오후 지루한 일상에 무시당하고 있던 상상력이 휴가를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 추억의 조각들에 매달려 보려 하지만 추억이란 낡은 모자일 뿐이고 상상력은 새 신발이다. 잃어버린 새 신발을 찾아 집을 나선다. 마지막 휴양지, 잃어버린 상상력을 찾아 나선 화가의 빨간 자동차가 도착한 그곳. 이곳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아주 수다스러워지거나 아예 침묵하는 두 가지 극단적인 방법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렇게 리뷰를 쓰기 시작했으니 내 손은 침묵하는 쪽을 애초에 포기한 모양이다.
이 그림책은 당연히 유아용 그림책이 아니다. 하지만 그림감상을 목적으로 유아에게 보여주고자 한다면 말릴 생각은 없다. 아는 만큼 보이는 그림책이 바로 이 책이다. 우선 이 책을 손에 들고 심호흡을 한번 하고 입맛도 한번 다셔보고 손도 몇 번 비벼보고 약간의 뜸을 들이다가 어디 한번 들어가 볼까 하는 심정으로 시작했던 책이다. 이 책에 대한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니 내가 이 책속의 인물들을 얼마나 알아볼까 스스로도 참으로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마지막 휴양지>, 이 책은 로베르토 인노첸티가 문학에 바치는 헌사이다. 작가의 잃어버린 상상력의 해답을 문학 작품들 속에서 찾으려 한다는 발상이 탄생시킨 그림책이다. 이 책의 1차 재미를 느낄 수 있으려면 그동안 문학작품들과 가까이 교류한 세월들이 있어야 한다. 그 세월 동안 안데르센의 ‘인어 공주’,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 허먼 멜빌의 ‘백경’, 스티븐슨의 ‘보물섬’,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이탈로 칼비노의 ‘나무 위의 남작’…을 만난 적이 있다면 작가인 로베르토 인노첸티와 만나 악수 정도는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작품으로 만나기는 어려웠어도 추리소설계의 전설적 인물 메그레 경감과 여류시인 에밀리 디킨슨에 대해 주워들은 이야기까지 보탠다면 인노첸티와 악수를 나누며 통성명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몇몇 정체가 불분명한 인물들의 실체 파악을 못했더라도 마지막 휴양지에서 만난 인물들이 상상력으로 무장한 인물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는 신호를 보낸다면 아마도 인노첸티와 가벼운 허그 후 어깨 한번 툭 치면서 “그런데 그 미키마우스 그려진 줄무늬 잠옷 입은 그 남자 말이예요…”하면서 대화를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위에서 언급한 책들을 못 읽어봤더라도 걱정은 접어둬라. 친절하게도 책 뒤편의 덧붙이는 말에 친절한 설명이 곁들여져 있으니까…
그럼 숨은그림찾기 같은 1차 재미를 뒤로 하고 2차 재미를 찾고자 한다면 1차 재미에 상상력을 보태보자. 낡은 추억의 모자라도 쓰고 마지막 휴양지의 곳곳을 헤집고 다녀보자. 마지막 휴양지의 사람들은 누구 하나 평범한 사람이 없다. 호텔의 하녀도 우람한 간호사도 키 큰 신비한 방랑자도… 지금까지 내가 읽어왔던 책들과 영화적인 상상력을 동원해서 이미 나와 있는 정답 말고 나만의 해답을 찾아내 휴가 떠난 내 상상력을 놀래켜 보자. 1차, 2차의 재미 위에 부수적인 재미를 더 보태자면, 마지막 휴양지의 손님들이 등장하는 모험 가득한 상상의 세계를 아직 모르고 있다면 직접 책을 통해 확인해 보는 방법도 있다. 계속해서 또다른 모험과 상상의 세계로 열린 책 속으로의 여행을 멈추지 않으며 내 안의 상상력이 지루함을 못 견뎌 휴가를 떠나는 일이 없게 만들어야 함은 잊지 말아야한다.
내 낡은 모자는 마지막 휴양지에서 코지모를 만나 무척 반가워했다. 달팽이 요리를 먹으라고 강요하는 아버지에 반항의 제스처로 나무 위로 올라간 후 죽음의 그 순간까지 내게 즐거움을 선사했던 코지모에 이어서 나는 이제 메다르도 자작을 만나러 간다. 반쪼가리 인간이라니…칼비노의 상상력에 발을 한번 맞춰봐야겠다.
잃어버린 상상력을 만날 수 있는 그곳, 호기심을 씨 뿌리고 상상력을 거두어들이는 그곳으로 떠나보시라. 특히 내가 찾고 있는 것이, 내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몰라 불현듯 불안감에 휩싸일 때 위로가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