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가 완성되지 않아 반쪽다리라 불리는 곳. 그 다리와 도로 사이 모퉁이에 차가 다리로 떨어지지 않게 도와주는…….대신 박아주는 집이 있다. 다리가 끊어진 줄 모르고 곧장 내달리던 차들이 급커브 때문에 모퉁이 집을 들이박는 것. 사람보단 집을 더 사랑한다면 절대로 이곳에 집을 지어서는 안될 만큼 평안할만하면 차가 집을 뚫고 들어오는 이 불안한 집에 우리 또래의 불만 넘치는 소녀가 살고 있다. 할머니는 치매가 찾아오고, 일은 안하고 빈둥빈둥 노는 아빠에 그런 아빠를 원망하는 엄마. 그리고 질투심 많은 레즈비언 친구. 요 소녀는 비관적인 현실에 하루하루를 벤야민이라는 남자와 행복하게 사는 상상에서 살고 있다. 그때 소녀또래의 정체모를 남자가 차로 집을 들이박는데…….
톡톡한 표지와 뒤에 칭찬 글 덕분에 기대가 생겼지만 다 읽고 나서는 기대가 떨어져 (표지에는 긴 머리의 여자애가 나오지만 정작 주인공은 짧은 머리라는 사실 또한 유쾌하지는 않았다.) 다른 책과는 달리 그렇게 사랑을 주고 싶은 책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원조교제, 마약, 성문화 등 다른 세상의 반쪽다리, 그 소설 안에 녹아있는 그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 몽상소녀 주인공에게는 친구 쑤가 있다. 쑤는 남자머리에 남자처럼 옷을 입는 주인공과는 달리 요조숙녀처럼 예쁜 소녀로, 주인공이 친구가 있다는 말에 질투를 내는 개성강한 동성애자이다. 처음에 레즈비언인 친구 쑤가 자신의 가슴을 만져도 태연하게 괜찮다고 하는 부분엔 경악했다. 한창 청소년 때는 성에대한 관심도 많고 자신의 정체성에 혼동이 들 시기이지만 이 책에서 호기심을 감추지 않고 서슴없이 나타내서 그런지 놀랄 노였다. 우리나라의 동성애자에 대한 선입견은 굉장하다. 무슨 벌레 보듯 눈빛도 달라진다. 외국에서도 그런 면이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보다 훨씬 개방적인 모습에 아직까지 내가 고지식한 관념에 틀어 박혀 있다는 걸 느꼈다. 내 친구가 동성애였을 때 괜찮다곤 하지만 그 친구가 내게 고백을 했을 때는 어찌해야 할지 막막하다. 주인공 또한 레즈비언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안 들지만 동성애자인 유일하게 친한 친구의 사랑고백으로 자신이 이성애자인지 동성애자인지 의구심을 들어 한다. 여기서 갈팡질팡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우리또래애가 고민을 털어놓은 것처럼 나타나 나도 갈팡질팡하게 된다.
반쪽다리, 할머니께서는 반쪽다리가 과거엔 사람들이 많이 놀러온 관광명소였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배로 관광객들을 이동시키는 사람이었고 그 옆에 할머니는 아이스크림을 팔았다고 한다. 할머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부터 계속 말이 없으시다. “당신이 죽으면 영원히 입을 열지 않을 거야.” 처럼 할머니는 예전 반쪽다리에서의 추억, 할아버지와의 사랑을 그린다. 할아버지가 반쪽다리에서 떨어지고, 그게 사고사가 아닌 자살임을 알았을 때, 나는 반쪽다리를 떠날 수 없다는 편지를 받았을 때 할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무너졌을까. 딸 앞에서는 덤덤하게 말했지만 가슴속이 찢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가족만큼 할아버지는 반쪽다리가 더 소중 했던 걸까?
반쪽다리. 반쪽다리는 주인공이 부모님 몰래 구경 간 유일한 세상사이자 과거 활발했던 쉼터, 유원지이자 할아버지가 사랑한 곳이다. 그렇지만 주인공이 부모님 몰래 구경 간 유일한 세상사 반쪽다리가 마약을 몰래 팔고 원조교제를 하는 곳을 나중에 알게 됐을 때는 놀라웠다. 마약중독자들의 잔치가 유일한 세상사였던 주인공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반쪽다리는 희망을 담고 있으며 어두운 현실의 뒷배경이 되어져있다. 암울함과 우울함의 반쪽다리를 보며 밝은 양지에서만 자란 내가 음지를 너무 몰랐구나. 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또한 우리나라에도 내가 모르는 암울한 반쪽다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며 안타까운 이 책을 그만 내려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