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시경을 생각하면 미안한 점이 많은 사람입니다.
지금도 글을 쓰고 있지만 글을 쓸 때 참 헷갈리는 부분이 많더라구요.
맞춤법에 맞게 썼는지… 띄어쓰기는 잘 하고 있는지…
그러면서 바르게 쓰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어요.
그래도 우리말이니 의미는 통하겠지… 하면서 그냥 넘어갈 때가 많았구요.
주시경같은 분은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고 다듬는데 평생을 바치셨고
훌륭한 책도 많이 펴내셨는데
나는 지금 우리말과 글을 제대로 쓰고 있는지… 문법책은 찾아보는지…
그러고보니 국어사전을 들여다본 지도 꽤 되는 것같고…
생활 속에서도 거친말과 앞뒤가 안 맞는 말들을 해가면서 살아온 것이
《주시경》을 읽으면서 급 반성이 되더라구요.
평생 한글을 아끼고 사랑한 주시경의 일생과 업적을 통해
한글의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해보았고
지금 우리가 편히 모국어인 한글을 어법에 맞게 사용하는 것도
주시경같은 국어학자들이 있었기때문에 가능하지않았나도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어요.
주시경은 1876년 황해도 봉산군에서 서당 훈장님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어요.
그런 아버지 밑에서 어려서부터 한문을 공부했구요.
열여덟 살이던 무렵에 서당에서 <시전>을 공부할 때의 일이에요.
벌목정정, 나무 찍는 소리는 쩡쩡 울리고. 조명앵앵, 새들은 짹짹 울음을 우네.
라는 글에서 나무찍는 소리 쩡쩡을 정정으로 새소리 짹짹을 앵앵으로
어려운 한자로 쓰고 우리말로 다시 풀이하는 것을 보고
‘처음부터 우리말로 하면 바로 알아들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게 되요.
그러고는 몇 해 전 배운 훈민정음을 흙바닥에 끼적이며
‘훈민정음은 소리 나는 대로 글자가 돼고, 간단하고 쉬워 누구나 빨리 배울 수 있지
한자와 달리 어떤 소리도 글자로 쓸 수 있어.’라는 생각도 하게 되요.
그날 이후 주시경은 점점 훈민정음에 빠져들었고
훈민정음을 제대로 공부해서 우리말을 바로 잡기고 마음먹었어요.
그리고 날마다 밥을 먹듯이 우리글을 연구했어요.
주시경은 사람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우리글 문법책’을 만들기로 마음먹었어요.
주시경은 연구를 거듭할 수록 우리말과 글이 매우 훌륭하고 아름답다는 걸 깨달았어요.
싱긋싱긋, 실실, 시실시실, 방실방실, 배시시, 키들키들, 히죽히죽……
우리말에는 웃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도 참 풍부하고
이 말들을 모두 글자로 나타낼 수 있음에 뿌듯할 때가 많았어요..
독립운동가 서재필이 독립신문을 만드는데 힘을 보태고자 교정을 봐주기도 했어요.
1896년 4월 7일, 드디어 우리나라 최초의 우리글 신문인 <독립신문>이 나왔어요.
독립신문은 사람들에게 술술 읽혔어요.
어려운 한문대신 쉬운 우리글로 쓰인 데다, 주시경이 매끄럽게 다듬어 놓아서 읽기에 편했거든요.
사람들은 신문 기사를 읽고서 나라 사정을 더 잘 알게 되었고,
대신들의 잘못을 목소리 높여 비판하기도 했어요.
이런저런 이유로 서재필은 다시 미국으로 보내졌고
주시경도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기도 했지만
서재필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더욱 열심히 <독립신문>을 만들었어요.
1898년 12월 31일, 주시경은 드디어 <대한국어문법>의 첫 번째 원고를 완성했어요.
이 책에서 주시경은 우리말 자음과 모음의 특징을 밝히고 어떻게 발음해야하는지를 정리했고.
또 훈민정음이 만들어진 과정을 실어 우리글에 얼마나 큰 뜻이 있는지도 알렸어요.
<대한국어문법>을 완성할 무렵에는
새로운 문물을 익혀 나라를 발전시키려는 움직임이 거세었는데
서울에만도 열 곳이 넘는 신식 학교가 문을 열었어요.
그곳에서 주시경은 <대한국어문법>을 교과서 삼아 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1910년 8월,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나라를 다스리는 권리인 주권을 일본에 빼았기게 되요.
일본의 지배를 받는 동안 주시경은 우리말과 글을 더욱 더 열심히 연구했어요.
먼저 품사 이름을 우리말로 지었고.
자신의 이름을 ‘크고 맑은 샘’이라는 뜻의 우리말 ‘한힌샘’으로 새롭게 지었어요.
훈민정음의 이름도 ‘하나이자 크로 바른 글’이라는 뜻의 ‘한글’이란 이름으로 다시 지었어요.
주시경은 한글 문법을 정리한 책들도 꾸준히 고쳐 썼어요.
<대한국어문법>을 <국어문법>으로 다시 <조선어문법>으로 이름을 바꾸어 다듬고 새로 펴냈어요.
우리말의 소리에도 관심을 가져 말의 뜻을 구별하는 가장 작은 소리의 단위인 음운을
과학적으로 풀이해 <말의 소리>라는 책을 썼어요.
그리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우리나라 첫 번째 국어사전인 ‘말모이’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주시경이 ‘말모이’를 만든다는 것을 안 일본은 주시경을 더욱 간섭하고 방해했어요.
일본의 간섭이 덜한 외국에서 ‘말모이’를 쓰며 우리말 연구를 계속할 생각으로 준비를 서둘렀지만
떠날 날을 코앞에 두고 갑작스럽게 병으로 쓰러지고 말았어요.
1914년 7월 27일, 주시경은 영영 눈을 감았어요.
주시경의 국어 문법 연구는 한글이 더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어요.
주시경이 세상을 떠난 지 이십여 년이 지난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발표됐어요.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구나 우리말과 우리글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요.
한글을 아끼고 사랑한 많은 이들의 노력 덕분이지요.
이제 한글은 가장 아름답고 과학적인 글자로 널리 인정받아요.
★
이렇게 《주시경》을 줄거리를 따라 죽 읽다보니
국어학자 주시경같은 분이 없었다면
지금 현재 한글의 모습이 어떨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고
요즘 아이들이 주시경처럼만 한글을 아끼고 사랑해준다면
훨씬 아름다운 대화를 주고 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한글의 아름다움과 과학성, 우수성을 세계가 더욱더 알아주어
영어처럼 만국공통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는데요
그럴려면 한글을 더욱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바르게 사용할려는 자세가 필요하겠지요.
부록
사진으로 보는 주시경 이야기
본문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생생한 사진과 함께 자세한 설명으로 볼 수 있답니다.
가갸날이 처음 생겨난 과정과 한글날의 유래를 알 수 있고요
주시경과 함께한 국어학자들-지석영, 김두봉, 최현배에 대해서도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았어요.
비교하면 더 재미있는 역사의 순간
주시경의 생애와 한글의 역사가 연표로 보기쉽게 정리되어있어
비교해가며 보는 재미가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