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가슴 뭉클한 책을 읽었다. ‘마지막 이벤트’ 자신의 죽음을 이벤트로 만든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리뷰: 할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이벤트. 제게 힘을 주시는 분의 선물. 기억하시죠? ㅎㅎ) 그 책의 작가 유은실님이 따스한 동화책을 냈다. 제목도 화사한 ‘내 머리에 햇살 냄새’
4명 아니 5명의 아이가 나온다. 도를 좋아하는 아이 지수와 짝 현우, 동생의 백일 떡을 돌려야 하는 지민, 햇살 가득한 날 해바라기를 하는 예림, 아이스크림이 너무 먹고 싶어 긴 기도를 참는 선미.
도를 좋아하는 아이
무슨 말을 하면 나도, 이모도, 누구도, 우리 집도 등을 찾아 ‘도’를 좋아하는 아이로 불리는 지수, 그런 지수가 너무 싫은 짝꿍 현우는 엄마에게 괴롭다고 하소연을 하고 현우 엄마는 엄마의 도로 지수를 눌러보겠다며 데려오라고 한다. 현우 엄마는 지수를 눌러버린 듯하지만 지수는 어른들은 자기가 싫어지면 아줌마처럼 그런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고 현우 엄마는 지수가 싫어서 그런 거 아니라고 하자 숙모도 싫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고 말하고 학원에 간다고 나간다. 그런 지수를 바라보는 현우. 현우는 내일 짝을 바꿀 수 있을까?
아이가 친구 문제로 고민을 하면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가 점차 내 말이 더 많아짐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 ‘멈춰’라고 스스로에게 말을 하고 다시 아이의 말을 듣는다. 간혹 친구의 의도가 그게 아니지 않을까 라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기도 하고 그 앤 왜 그러냐고 아이를 응원하기도 한다. 여튼 아이의 일은 아이 스스로 해결 할 수 있게 살짝 다리만 걸쳐야 한다는 걸 많이 느끼고 있다. 지수의 모습을 보면서 지수가 참 외롭구나 느꼈고 한편으로 다른 사람들의 일에 관심이 많구나 느꼈다. 얼마나 외로우면 모든 사람들의 일을 다 관심있게 바라볼까 ‘나도’ 라고 맞장구는 치지만 결국 자신의 의견은 없다. 자신이 외로운 것도 모르고 왜 친구들이 자기와 어울리지 않는 것도 모르고 어른들이 자신에게 똑같이 대하지만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은 안다. 지수의 모습을 보면서 내 아이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더 따스하게 대하야겠다 생각한다.
백일 떡
토실토실 살이 오른 백일 된 동생 보배를 예뻐라 하며10년을 기다리게 했다는 아빠의 말에 4학년 지민이는 자신은 얼마나 기다렸냐고 엄마에게 묻자 ‘너는 덜컥 생겼어’ 라는 말을 듣고 그래서 낯가림이 심하다고 난 왜 그렇게 일찍 세상에 나왔을까 속상해한다. 백일 기념 가족사진을 찍은 다음 날 보배가 아파서 엄마, 아빠는 병원으로 가고 혼자 백일 떡을 받는다. 백 명이 먹어야 오래오래 건강하게 산다는 그 백일 떡을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는데, 이웃 규호 엄마가 와서 ‘미움 받으면 애가 아프다는데 누가 미워하나’ 슬쩍 한마디를 하고 엄마의 부탁으로 가방 2개 가득 떡을 담아 가져가고 나머지는 지민이에게 부탁을 한다. 한 사람에 하나씩 나눠줘야 하는데.. 떡을 다 돌리면 내 정성으로 동생이 나을 거라는데..
백일 동안 아이를 키우면 점차 살이 오르고 눈을 맞추고 웃음을 주는 아기가 많이 사랑스럽기도 했지만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그저 우는 걸로 의사표현을 하는 아기가 답답하기도 했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친정 어머니 덕에 나도 백일 떡을 주문했고 나누어 먹었다. 그 아이들이 벌써 11살 7살이 되었고, 7살 꼬마도 취학통지서를 받고 학교에 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참 세월 빠르다.
내 머리에 햇살 냄새
모처럼 눈이 부시도록 마당 한 가득 햇살이 환한 날. 예림이와 이모는 방의 창문을 모두 열고 마당에 빨래를 널고 이불을 널고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얼굴도 널고 마음도 넌다. 예림이 가족의 해바라기와 지하실 냄새를 지워주는 햇살냄새.
요즘엔 주택가 골목에 반지하 집들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내가 사는 집도 1층은 주차장으로 쓰고 2층부터 집이 시작된다. 반지하라는 말을 참 싫어했다. 집의 대문을 열고 들어가 내려가는 그 기분은 사춘기가 시작되는 아이들에겐 상처를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파트 평수에 따라 어떤 아파트에 사느냐에 따라 아이들이 서로를 평가하는 시대에 예림이 가족의 햇살 즐기기는 콧등이 찡하게 한다.
기도하는 시간
선미는 쉰 살이 넘었지만 열 살인 자기를 자매님이라 부르는 전도사님이 부담스럽다. 사랑하는 남자가 죽어서 평생 결혼을 안하고 산다는데 뽀글뽀글 아줌마 파마를 한 뚱뚱한 전도사님의 젊은 모습이 상상이 안 된다. 선미 먹으라고 아이스크림을 사오신 건 좋았는데 기도하고 먹으라는 할머니의 말에 전도사님은 기도를 시작한다. 마음을 모아 기도를 해야 하는데 아이스크림 때문에 마음이 모아지지 않는다. 선미의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더니 급기야 친척들까지 이어진다. 아이스크림은 점점 녹고 선미의 발도 저리고.. 전도사의 기도에 할머니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급기야 할머니와 전도사는 울고 선미도 운다.
발이 저려도 끝까지 참았지만 녹아버린 아이스크림.
믿음이 있다는 건 사람의 마음을 참 편히 해준다. 믿음이 있고 기쁨과 슬픔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주위에 있다는 것도 참 축복이다 생각한다.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은 안타깝지만 그래도 기도를 참고 기다린 선미가 대견하다. 선미는 가족의 현실보다 아이스크림이 녹아버린 걸 더 속상해했겠지? 정자매의 모습이 겹친다. 정자매가 선미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꾹 참고 기다렸으려나? 내일 물어봐야겠다.
작가의 말
어른들이 저지른 환경파괴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메마른 세상을 생각하면 답답하다. 어린 독자들 보기 부끄럽다. 미안하다. 도대체 난 뭘 할 수 있을까 막막할 때가 많다. 하지만 백일 떡을 나눈 지민이처럼 내 몫의 떡을 끝까지 나누겠다고 마음먹는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땐 열심히 울기라도 하겠다.
따스함을 느끼게 해주는 유은실 작가가 고맙고 그 따스함을 그림으로 잘 표현해준 이현주 작가님도 고맙다. 오늘은 아이들을 기분좋게 재워서 나 또한 기분 좋게 하루를 마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