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보면 묘하게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포그’가 가진 병이 혹시 강박증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에게서 느껴지는 무표정과 침착함에서 80일 만에 세계 일주를 마치지 못할까봐 초조해지는 건 내 쪽이다. 로탈역에서 끝나버린 선로 탓에 더 이상 갈 수 없을 때도 ‘포그’가 멋진 방법을 반드시 찾아내리라 기대하게 된다. 엄청난 값을 치른 코끼리를 타고 인도의 밀림을 지나지만 ‘사티’라고 불리는 브라만교의 장례 행렬에서 본 가엾은 여인이 ‘포그’의 발목을 붙든다. 죽은 남편을 따라 산 채로 아내를 화장시키는 ‘사티’라는 장례 풍습을 보고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우리나라 고대의 순장 풍습도 끔찍한데 산 사람을 불에 태워 죽이는 사티야 말해 무엇하랴. 대마와 아편에 취해 끌려가는 여인을 구하기 위해 ‘필리어스 포그’와 ‘파스파르투’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과감하게 덤벼든다.
자오선이 바뀔 때마다 시간을 조절해야 하지만 미처 그 사실을 챙기지 못해 오히려 세계 일주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으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형사 ‘픽스’의 방해 공작만 없었어도 느긋한 마음이었겠지만 그의 어이없는 오해가 이야기의 긴장감을 높이는 역할을 했음은 두 말할 나위 없다.
‘쥘 베른’의 이야기는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즐겨읽는 고전으로 특히 <80일 간의 세계 일주>는 포그의 여정을 따라가며 여러 나라의 다양한 풍습과 생활상을 만나볼 수 있어 더욱 흥미롭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가 동인도 회사에 땅을 빼앗기는 과정을 보며 신사라고 자부하는 영국의 위선적인 얼굴과 마주하게 되며 양키로 불리던 미국인들의 거친 모습 이면에 갈망하는 자유를 느낄수 있다.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인디언들의 고통은 외면한 채 달리는 기차에 뛰어들어 약탈하는 장면만을 그려내 아쉽기는 하지만.
비행기 덕분에 손쉽게 해외로 나갈 수 있게 되었지만 가까운 곳조차도 쉽게 나서지 못 하는 게 현실이다. 더군다나 세계 일주는 감히 꿈조차 꿀 수 없는 먼 얘기가 되어 버린지 오래지만 기회가 된다면 언제라도 세계 곳곳을 둘러보고픈 열망을 품고 있다. 떠날 수만 있다면 1년 365일을 돌아다닌다한들 불만이 있을쏘냐!! 절대로 80일 안에 돌아오기 위해 기를 쓰는 일은 없을 것이다.
모험을 즐기는 아이들과 함께 신 나게 상상의 세계로 떠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읽다 보면 재미에 빠져 하루 만에 세계 일주를 마치고 돌아올 지도 모르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