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하이드’가 ‘지킬 박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조마조마하다 못해 쿵쾅거린다. 살인사건을 저지르고도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유유히 사라지는 장면은 뉴스에서나 볼 수 있는 싸이코패스 같아서 등골이 오싹해졌다. 짙은 안개가 낀 런던의 밤거리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장면을 상상하다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다 볼만큼…
치명적 유혹에 끌려 인간 스스로 선과 악을 분리할 수 있다고 믿었던 ‘지킬 박사’의 행동은 용서받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 ‘지킬 박사’ 자신이 가장 괴로웠겠지만 ‘하이드’로 분한 그가 저지른 살인사건과 잔인한 행동들은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하이드’가 이끄는 쾌락과 즐거움에서 떨쳐 나오지 못하고 또 다시 약을 마시는 그의 행동을 보며 ‘인간은 참으로 나약한 존재’라는 걸 세삼 느끼게 된다. 좋은 것보다 나쁜 것에 더 강하게 끌리는 인간의 본성을 어찌 하면 좋으랴….
‘하이드’는 살인과 폭력을 즐기며 갈수록 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다.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으며 용서도 구하지 않는다. 흉악 범죄나 살인 사건에 나오는 범인들을 보며 ‘하이드’를 떠올리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지킬 박사’에게로 향하는 동정과 연민도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밖에… 지킬 박사의 말처럼 선과 악이 각각 제 갈 길로 가게 되는 날이 있을까? 선과 악이 칼로 자른 듯 분리되어 완벽하게 통제 할 수 있다고 믿는 것부터가 인간의 오만이 아닐까? 선과 악을 분리한다는 건 인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서야 가능한 일이 아닐지….
인간의 본성에 관해 누구도 명확하게 정의를 내릴 수 없지만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 늘 따라붙는 ‘인간의 양면성’에 관한 이야기라는 수식어를 생각하면 인간은 선과 악을 왔다갔다하며 고민하는 존재가 틀림 없는 것 같다. 누구나 선과 악의 경계선에서 매일매일 줄타기를 하듯 살아가지만 어느 면이 더 많이 표출되는가는 전적으로 개인에게 달린 문제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야 말로 실로 대단한 존재가 아닐까?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를 제대로 읽게 되어 반가웠다.
이따금씩 지킬 박사가 겪었던 갈등과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때마다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내 안의 또 다른 힘을 믿고 싶다.
내 안의 ‘하이드’를 사랑하고 잘 달래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