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시골 바닷가에 두 소년과 한 엄마가 이사를 왔다.
열 다섯 살 열무와 두살위의 형 나무. 성이 소씨이니까 소나무와 소열매. 희한한 이름이다.
형인 나무는 자신만의 세상이 갇힌 아이이다. 아마도 나무의 존재가 부모님의 별거와 상관이 있지 않았을까.
늘 병신이라고 놀림을 받는 서울이 싫어 엄마는 나무와 열무를 데리고 시골 바닷가로 옮겨온 것이다.
하지만 그 한적한 시골 바닷가마을에 그들외에도 아주 독특한 남자가 살고 있다.
매일 같은 시간 산책을 나와 지나가는 그에게 ‘칸트’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늘 하얀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고 검은 코트를 입고 절벽위에 서있는 남자의 정체를 알기위해
나무와 열매는 마치 관처럼 지어진 그 남자의 집을 찾아가게 된다.
아무 장식도 없이 덩그라니 지어진 ‘칸트의 집’.
창문이 하나도 없는 그 집 한 쪽 벽에는 책이 그득하고 이층에는 잠겨져 있는 방 하나와 욕실이 있다.
늘 그림을 그리는 나무는 칸트의 집에서 그림을 그리고 열무는 숙제를 하거나 칸트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그를 염탐하지만 늘 표정이 없는 칸트에게서 알아낼 만한 일은 없다.
엄마의 절친인 윤미 아줌마를 통해 ‘칸트’아저씨가 꽤 유명한 건축가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왜 건축가일을 그만두고 바닷가로 오게 됐는지는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된다.
칸트 아저씨는 어느 날 두 아이에게 자신이 살 집을 그려보라고 말한다.
‘집이라는 건 말이지, 꼭 필요한 것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필요하지 않은 것을 빼는 것도 중요하지.’ -135p
창문도 없는 관처럼 생긴 이상한 집을 지은 ‘칸트’아저씨가 유명한 건축가라는게 이해가 되진 않지만
나무와 열무는 칸트아저씨에 의해 마음이 열리고 희망을 가지게 된다.
칸트아저씨에게 슬픈 비밀이 있다는 것도 알게된다. 정작 자신의 집때문에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다는 자책으로
괴로워하던 칸트아저씨는 사실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칸트아저씨는 마지막 선물로 나무가 살고 싶다는 새둥지같은 집을 지어놓고 먼 세상으로 떠난다.
자신만의 세상에 갇힌 형을 늘 보살펴야 하는 무거움으로 짓눌린 열무는 한 뼘쯤 성장했고 이제 자신의 집을 짓기
전까지 나무의 집에서 한가족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문을 여는 순간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고 가족들이 둘러앉아 된장국을 먹을 수 있는 그런 집이 참다운 집이 아닐까.
누군가의 집을 지어주느라 정작 자신의 집과 가족을 지키지 못했던 칸트는 외로운 두 소년에게 멋진 집을 지어주고
떠났다. 책을 읽지 않는 아이들에게 읽히고 싶어 글을 쓴다는 작가답게 조금은 어둡고 비밀스런 아픔을 지닌 아이들에게
슬며시 손을 잡아주는 최상희작가다운 작품이다.
‘당신은 어떤 집에서 살고 싶습니까?’
내 가족과 다정하게 얼굴을 맞대고 따뜻함을 나누는 그런 집이 내가 원하는 집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