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채의 장편소설 그 여름, 트라이앵글은 열일곱살 청소년기 세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우리 아이가 이제 열일곱살이라 그런가 유독 세 아이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 같지 않음을 가슴 깊이 느끼며 읽게 되더라구요.
그러면서 나의 학창시절을 돌아보게 되며 잠시 추억에 잠겨보기도 합니다.
소월이는 할아버지와 사는데요. 엄마는 돌아가시고 아빠는 소월이 어릴 적 소월이를 두고 도망가듯 떠나버렸죠.
굉장히 불우할 것이라 생각되지만 구두방을 하면서도 사랑으로 소월이를 돌봐서일까 우리가 생각하 듯 그런 환경은 아닌 것 같아요.
아빠를 굉장이 미워하고 증오하면서도 아빠를 많이 그리워하고 기다려 온 듯 합니다.
할아버지를 위해서라고 핑계를 대지만 그렇게라도 아빠를 받아들이는 모습이 무척 대견하더라구요.
바랄 것도 없고 사고만 치는 아빠지만 엄마의 소중한 추억을 간직한 아빠, 소월도 엄마의 그리움을 구형 카세트로 달래는 중이었으니까요.
자신이 진정 원하지 않는 일을 할 때 어른이 되어서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가 봅니다.
아빠가 진정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도 찾아주는 소월이는 정작 본인은 아직도 찾고 있습니다.
미술을 전공하기 바라며 예술고등학교를 보내려고 재수까지 하고 있는 형태, 그건 엄마의 꿈입니다.
정작 형태는 미용을 하길 원하며 엄마 몰래 미용실 아르바이트까지 하며 꿈을 위해 다가갑니다.
형태의 엄마의 모습에서 요즘 우리 주변의 대부분의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고 할까요?
자식을 위해 강연을 들으며 억척같이 돈도 모으며 자식을 위해 사는 모습이죠. 그러나 아들만을 위해 살았는데 그 아들이 미용을 한다니 과연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부자집에 부족할 것 없이 자란 시원이, 형태가 가지 못한 예술고등학교에 다닙니다.
남들이 보는 것이 다가 아니란 말이 딱 떠오른는데요. 배부른 고민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건 일부만 보았을 때이겠죠.
시원이는 어릴적부터 바이올린을 했고 바이올린으로 예고 수석 입학도 했고 성적도 늘 우수합니다.
그러나 하면 할수록 기대가 커져가는 시원이 엄마, 그리고 이중적인 시원엄마의 모습, 화가나면 죽도를 들고 시원이를 때린다는 모습이 노랍기만 합니다. 교수라지만 아이들 교육은 모르는 척 하는 시원 아빠도 그렇고요.
시원의 어깨가 자꾸만 짖눌리는 모습이 상상이 갑니다.
나의 꿈을 자식에게서 바라는 부모들이 많지요.
형태엄마가 느꼈던 것처럼 자식을 위해서 말고 나를 위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우리 아이들과 많은 대화를 하며 아이들의 행복을 찾아주고 싶네요.
‘산다는 것은 권리가 아니고 의무다’
자꾸만 곱씹어 생각하게 되는 문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