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대한 기본 지식 없이 앞부분을 읽으면서 작년에 읽었던 캐더린 스터의 『매리앤의 꿈』이 떠올랐다. 신비한 연필로 그림을 그리면 꿈에 고스란히 나타나는 매리앤의 꿈과 현실의 여정, 다 읽은 후에도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었는데, 『비밀의 저택 그린노위』또한 내겐 그렇게 다가왔다. 아이의 상상인지, 현실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 이야기, 노아의 방주가 다시 살아나고 물로 인해 고립된 저택에서 조용히, 어떨때는 깔깔거리는 아이의 모습으로 움직이는 400년전의 아이들. 현실과 환상이 공존하는 집, 그린노위는 아무나 볼 수 없지만,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는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온다.
‘이게 대홍수라면, 그래서 지금 내가 노아의 방주로가는 중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정말 재미있을 거야! 서커스 같을 거야.’ (p.8)
엄마가 돌아가신 후 방학에도 기숙학교에서 교장 선생님과 선생님의 연로한 아버지와 함께 지내야만 했던 토즐랜드는 올드노 증조할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서 페니 소키(Penny Soaky, 흠뻑 젓은)의 ‘그린 노아’라는 저택을 찾아가는 열차안에서 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여덟살 어린 아이답게 쏟아지는 비가 대홍수였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데, 아이가 찾아 간 그린노아는 대홍수 속 노아의 방주보다 훨씬 더 근사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깜깜한 밤, 배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는 저택이라니.. 많은 비가 내릴때마다 저택외에 공간은 호수로 변하는 곳. 그곳에 있는 엄청나게 나이많은 증조할머니를 톨즐랜드가 ‘혹시 증조할머니가 마녀라면 어떡하지”(p.19) 라고 생각하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올드노 가문 사람들이란다. 네 가문이기도 하지. 사슴 옆에 있는 아이는 토비, 플루트를 두고 있는 아이는 알렉산더, 꼬마 여자아이는 리넷이야. 일곱 살이지. 파란 드레스를 입은 사람은 세 아이 엄마고.” (p.37)
1954년에 발표한 작품이니 여덟살 토즐랜드를 요즘의 아이들과 동격으로 생각하면 안되겠지만, 멀리 떨어진 부모 대신 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던 톨리는(여러명의 토즐랜드중 여덟살 토즐랜드의 애칭)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은 다른 아이였을것이다. 노아의 방주를 떠올리고 마녀 할머니를 생각하는 아이에게 저택안에서 만나게 되는 400년 전 초상화는 아이의 상상력을 광폭시켰을 수도 있고, 으스스함에 몸을 떨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외로웠던 아이에겐 할머니도 초상화 속 아이들도 친구로 다가온다. 어째서였을까? 할머니의 말씀으로는 초상화 속 아이들이 몇 백 년 전 대역병으로 죽었다는데, 아이들은 여전히 할머니와 톨리, 그린 노아 주변에 살아 있는 존재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톨리의 방에 있는 물건들이 밤마다 살아 움직이고 새들이 추위를 피해 방으로 들어오는 이곳은 대홍수 속 노아의 방주처럼 동물들에겐 안락함을 느끼게 해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할머니가 전해주는 초상화 속 아이들의 이야기는 어떤 아이의 이야기인지 알 수가 없다. 토비, 알렉산더, 리넷의 이야기지만, 400년 전 죽은 아이의 이야기인지, 100년 혹은 50여년 전에 살다간 아이들의 이야기인지 동일한 이름을 사용하는 집안의 내력은 독자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불러일으키지만, 톨리에게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동명이인이었을지 모르는 아이들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하나의 인물들로 받아들이고 있다. 아이들의 존재를 인지하는 증조할머니와 조금씩 초상화 속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톨리. 이제 톨리에게 친구가 생긴걸까? 할머니가 들려주는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는 톨리에게 아이들의 죽음을 인지하게 만들지만 톨리 눈에 보이는 아이들은 이야기와 함께 톨리를 점점 올드노 가문의 일원으로 동화시키고 있다. 게다가 아이들만이 함께 공유하는 환상 속 그린노위의 비밀은 점점 과거와 현재에 살고있는 아이들을 하나로 엮어주는 튼튼한 고리 역할을 한다.
분명 이야기는 딱 부러지게 풀어내고 있는데, 내게 다가오는 느낌은 물 속에 잠겨있는 저택이 물 밖으로 나오면서 훨씬 더 몽환적으로 다가온다. 현실인지 환상인지 구분이 되어지지 않음에도 톨리가 느끼는 감정들은 아무런 여과없이 받아들여지고, 증조할머니와 함께 400년 전 아이들에게 보내는 크리스마스 선물또한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여진다. 톨리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들과 할머니가 전해주는 액자 속 사진같은 과거의 이야기들은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는 것처럼 하나의 이야기로 ‘비밀의 저택’을 완성해 가면서 톨리의 어린시절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톨리에겐 행복으로 다가오고 있고, 증조할머니 역시 행복한 모습으로 보이지만, 증조할머니와 톨리에게만 보이는 세상과 사라졌음에도 사라지지 않은 아이들의 이야기는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내겐 정신과를 생각하게 만든다. 물론, 아이들의 눈엔 아니다. 울집 작은 녀석만 해도 책을 읽고 그린노위를 꿈꾸고 있으니 말이다. 2000년대를 살아가지만, 여전히 우린 꿈을 꾼다. 노아의 방주 속에서 동물들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노아를 꿈꾸는 아이 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