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부터 문고까지 아이의 책을 먼저 만나보고 있는 저로서는 아무래도 어른의 시선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책은 조금 어려워서 아직은 밤톨군이 안좋아하겠군. 이라고 섣부르게 단정해보았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거나, 우와 이 책 녀석 취향이야! 하고 들이밀었는데 시큰둥한 반응이 돌아오는 등 쉽사리 판단하기가 쉽지 않아요. 대부분 아이들의 사랑을 받는 스테디셀러의 경우는 성공률(?)이 높은 편이지만 신간의 경우는 참 어렵습니다. 결국 전문가들의 조언도 함께 살펴보게 됩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을 위한 이야기 한국사 시리즈로 꾸준히 출간되고 있는 「마법의 두루마리」시리즈를 뒷 권부터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마법의 두루마리」시리즈는 시간여행이라는 기본적인 얼개에 권마다 전하고자 하는 역사적 상식을 엮은 동화입니다. 각 권마다 그 시대를 전문 분야로 하는 역사학자의 고증을 거쳤다고 하는군요.
언젠가 들었던 아이들을 위한 독서지도 강좌에서 문학( 대부분의 창작 그림책이나 동화) 를 제외한 비문학관련 책의 선정에 대해 이렇게 조언해주었습니다.
비문학 독서자료 중 역사/인물책의 선정에 있어 다음과 같은 부분을 고려하면 좋다.
– 역사에 대해 알고자 하는 지식욕을 불러 일으키고, 읽는 어린이에게 상상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
– 스토리가 역사적 사실에서 지나치게 벗어나지 않아야 하며 단순하고 생동감이 있으면 좋다.
– 극적 요소가 있고 전체의 균형이 잘 잡혀 있어야 한다.
– 역사와 픽션, 시대감각, 그 시대를 특징짓는 문제에 대해 균형있는 시각을 보여주어야 한다.
– 제재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저자의 상상력이 잘 발휘되어야 한다.
이번 책은 시간 여행을 떠난 준호, 민호, 수진의 이야기를 통해 공룡이 살던 백악기 한반도의 자연환경이 어떠했는지, 육식 공룡과 초식 공룡은 생김새며 살아가는 모습에서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공룡들 간의 싸움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등을 자연스럽게 알려주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전 편의 에피소드를 접하지 않은 친구들을 위해 그동안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요약해준 페이지를 먼저 읽어보고 시작해야겠죠.
책의 도입부에서도 두루마리의 신비로운 능력이 새롭게 밝혀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전 모험에서 무엇인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안고 있는 듯 합니다. 과거에 가있는 할아버지에게 메시지를 전하려고 애쓰고 있거든요. 이 책만 읽어도 공룡들의 세상으로의 여행은 문제없지만 궁금해서라도 이전 편들을 차례대로 읽어야 할 듯 싶습니다.
과거의 물건은 과거에, 현재의 물건은 현재에, 두루마리는 생각할수록 정말 신비로워. 전에 할아버지가 그러셨지. 역사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
할아버지를 만나러, 혹은 메시지를 전하려고 과거로 출발했는데 무엇인가 이상합니다. 이곳은 어디일까 고민할 새도 없이 공룡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어버리거든요.
위의 장면을 보면서 떠오르는 그림책이 한 권 있네요. 책장을 뒤져 공룡에 관하여 아이가 좋아하던 그림책을 꺼내봅니다. 근경과 원경을 넘나드는 다채롭고 역동적인 화면 구성과 쥐라기 시대의 희한한 식물들, 다양한 곤충들이 등장했던 「네 등에 집 지어도 되니?」라는 그림책이요.
▷ 네 등에 집지어도 되니? / 장선환 글.그림 / 비룡소
공룡에 관해서라면 제법 배경지식이 많이 쌓여있는 녀석이니까 「마법의 두루마리」의 이번 에피소드에 쉽게 다가가는 듯 했어요. 이 그림책을 들여다보면서 「마법의 두루마리」속에서 전하는 공룡, 식물 등의 특징을 찾아보기도 해보았네요. 페이지 옆 쪽에 박스 형태로 공룡시대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들이 깨알같이 설명되어 있거든요. 이것들만 읽어봐도 알찹니다.
우리나라에도 공룡이 살았을까?
우리나라는 1972년 경남 하동에서 공룡 알 화석이 발견된 것을 시작으로 공룡의 알, 발자국, 뼈, 이빨, 발톱 등 다양한 공룡 화석이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경남 고성, 남해, 진주, 마산, 경북 의성, 전남 해남, 여수, 화순 일대에서 다양한 공룡 발자국이 풍부하게 발견되어 세계적으로 공룡 연구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하네요. p116
이런 내용들이 책의 뒷부분에 ‘준호의 역사 노트’ 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번 요약되어 정리되어 있습니다. 지질 연대표를 통해 선캄브리아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지구 생명체의 역사를 살펴보고, 공룡의 출현과 진화, 멸종에 대해 설명하죠.
그리고 전남 해남 우항리, 경남 고성 덕명리 등 대표적인 공룡 유적지를 소개하고, 한반도 고유의 공룡에 대해서도 알려 주는 등 우리나라의 공룡 연구에 대해서도 폭넓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속에서는 우리나라의 공룡인 ‘코리아노사우루스 보성엔시스’ 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건의 전개와 주인공들의 대화 속에서 다양한 역사 정보가 자연스럽게 제시되는 점이 좋았네요. 어른인 저도 전혀 몰랐던 사실이라 미리 읽어두었기에 망정이지 아이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할 뻔 했습니다. 코리아노사우루스 보성엔시스외에도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 부경고사우루스 같은 한반도 고유의 공룡도 발견된 바 있다고 합니다.
그나저나 할아버지에게 메시지를 전하고자 그 지역의 바위에 메시지를 써놓은 주인공들. 그렇게 써놓으면 후대에 전해질 테니까요. “급, 집으로 문화재 반환” 이라고 써놓았는데..
할아버지는 “급. 집으로. 문화재 반란” 이라고 읽으셨군요.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인식하신 듯 하지요. 다음번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될 지, 아이들에게는 또 어떤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지 절로 궁금해지게 하네요.
공룡의 이야기에 대한 아이의 반응은 여전히 좋습니다. 반면 뒷권부터 먼저 봐서인지 시간여행이라는 ‘모험’ 에 대한 흥미는 그다지 높지는 않았던 듯 해요.
저는 저대로 나름대로 전문가들이 조언한 내용들에 맞춰봅니다. 우선 읽는 어린이에게 상상을 불러 일으키는 점, 제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함께 한 점들은 참 좋았습니다. 사람들이 등장하지 않는 시대에 대한 이야기라 역사적 사실과 시대감각에 대한 부분은 다른 편들을 좀 더 읽어보아야 와닿을 듯 했지요. 이번 에피소드에는 극적 요소는 그다지 크지 않았고 전체적 균형에 대한 부분도 살짝 아쉬웠던 것 같습니다. 다만 이제 전체 시리즈의 한권을 이제 접해보았으니 앞으로 더 읽어보고 생각해봐도 늦지 않을 듯 하네요.
고성 박물관에 아이와 함께 나들이하고 싶지만 우선은 가까운 과천과학관의 자연사관에 있던 공룡 화석 모형들이 떠오르네요. 다시 이곳이라도 밤톨군과 함께 둘러보러 가봐야 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