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9-12 할머

연령 11~13세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1999년 3월 10일 | 정가 9,000원
수상/추천 독일 청소년 문학상 외 5건

2007-09-12
할머니
/ 페터 히르틀링 / 비룡소 일공일삼 06

책 안에서 다른 성의 관점에서 심리적인 상황을 잘 묘사한 책을 보면 소름이 돋을만큼 흥분되곤한다. <내인생의 스프링 캠프 /정유정/비룡소청소년문학> 이나 하이타니 겐지로의 작품을 보면 말로도 표현할 수 없고 몸은 벌써 저만치 달려가 온통 숨을 몰아쉬는 그런 짜릿한 숨막힘이 있다. 페터 히르틀링은 그 만치는 아니다. 하지만 인물을 중심으로 상황을 설정하여 관계에 중심을 두는 것이 그의 색깔인 것 같다.
<그 아이이는 히르벨이었다>에서는 정신지체아와 세상의 소통, <아빠를 위한 연주>에서는 가족간의 소통을 주제로 심리적인 부분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히르틀링의 작품을 다 읽으면 –못읽은 것이 대부분 –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처방전을 받을 거 같아 몹시 기대가 된다.

<할머니>를 읽으면서 교통사고로 부모를 읽은 손자와 손자를 어째든 억지로 떠 맡게 된 할머니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단편동화처럼 한 토막씩의 이야기와 그 사건을 겪으며 할머니가 느끼는 이야기가 일기처럼 담겨져 있는데, 마치 내가 우리아이를 키우면서 후회하고 고민하는 모습인 것 같아 내가 이런 일기를 꼭 써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천과 결심은 별개라는 사실 모두들 아시죠?
할머니는 칼레에게 후하다. 칼레가 거짓말을 해도 학교에 가서 칼레를 감싸주고 할머니의 실수인양 말한다. 칼레는 할머니가 너무 고마웠다. 이미 죽은 엄마를 싫어해서 말만 하면 엄마욕을 하는 할머니를 점점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 사실 할머니가 칼레를 키우는 것이기도 하지만 할머니는 모든 일에 칼레를 앞세우며 의지하고 있다., 칼레에게 부당한 일을 걸걸한 욕지거리를 해대며 따져주고, 데려온 친구가 맘에 들지 않는다며 잔소리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엄마의 모습이다.

할머니를 읽으면서 나는 우리집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진이와 나 사이의 일련의 사건들과 몹시 흡사한 흐름에 깜짝 놀랐다. 모든 가정에서 부모와 아이 사이의 보편적인 공식인지 아님 우연의 일치인지 아직 분간은 안되고 있다.
체벌이 주무기인 선생님께 몹시 크게 혼난 첫째 아이에게 나는 요즘 제 스스로 세상사는 법을 가르치려 –책가방 챙기기, 준비물 챙기기에 불과하지만 – 진통을 겪고 있다. 내가 내 아이를 보호하는 틀은 한해 한해가 지날수록 희미해지고 아이는 벌거벗긴 채 세상과 맞선다는 생각이 든다. 칼레와 할머니가 ‘할머니의 병’으로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면 우리는 ‘내가 알고 있는 큰 아이의 비밀’로 서로를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아이와 내가 서로 엉엉 울며 “하찮은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너 맞는 꼴 못본다. 너에 관해선 엄마가 가르치고 싶다. 많이 맞을 각오하고 정신 바짝 챙기고 살아라” 라며 협박아닌 협박을 하며 가슴이 많이 아팠다.
아이는 그 사건으로 날 이해하게 된 것 같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 같다.
그래도 밝은 아이가 참으로 고맙다. 내가 낳은 아이라 나 스스로에게도 고맙다.

할머니의 병환의 한 고비가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듯 우리에게 서로 가슴 아파하고 쓸어주었던 손길이 서로에게 다가서는 큰 기회가 되었길 바란다. 모든 인생의 이야기에는 결말이 없다는 듯 책도 그렇게 결말이 없이 끝난다. 결말이 없는 게 정상인데도 나는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없으면 항상 어찌나 섭섭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