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의 초상화같은 엔디미온 스프링

연령 11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09년 3월 5일 | 정가 16,000원

내가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을 때, 그러니까 중학교 때에 친구에게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내가 친구에게

“야, 넌 어떤 장르의 책이 제일 좋냐?” 물었더니, 친구가 말하길 어휘력이 좋은 판타지 가 제일 좋단다.

 

엔디미온 스프링은 그 친구가 밤잠을 설치고 읽을 만큼 어휘력과, 묘사력에 있어서 탁월하다.

하나의 장면으로 그려지는 마인츠, 겹치지 않으면서 현재의 옥스퍼드로 시선이 부드럽게 이동하곤 했다.

 

수 백, 수 천의 초상화로 이루어진 ‘비밀의 책 엔디미온 스프링’.

도서관의 모습을, 인물의 말과 행동을 포착하는 작가의 글솜씨는 정말 놀라웠다.

 

특히 책 속에서 구성된 옥스퍼드의 도서관이나, 중세의 인쇄소와 그 주변의 것들은 작가가 그 분야에 있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거란 것은 책을 읽은 나와 책을 읽게 될 사람들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실제로 작가는 직장을 그만두고 책에 필요한 정보를 찾으러 여행을 다닐 정도로 이 책에 공을 들였다고 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호흡이 긴 책의 문장들은 내가 쓰는 문장들과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다. 내 글은 기나긴 관형어구와 그런 것들이 마치 잡초가 뽑히지 않고 자라서 잔디밭을 뒤덮을 만큼 길어져서 좀 뽑아내고 싶단 생각이 들게끔 했다. 그래서 난 ’칼의 노래’나 김 훈 작가의 다른 작품을 보며 짧게 치는 간결한 문장을 보며 배우려고 노력했었다.

 

내가 읽은 거의 모든 판타지가 그랬듯이 엔디미온 스프링 역시 스토리를 지지하는 글줄기의 힘이 허약하단 느낌이 들었다. 대개 상황이 전개되고, 또 갈등이 심화되면서 근육이 이완되는 듯한 팽팽한 느낌이 부족했다. 그렇기 때문에 시선이 글 단락단락에서 맥이 풀리곤 했다. 그리고 17세기의 소년과 21세기의 소년을 이어주는 결속감이 부족하단 생각이 들었다. 구성에선 비록 절반 씩 나눠져 조명하고 있지만, 현대의 소년인 블레이크에게 조명이 집중되어 있고 17세기의 독일 마인츠에서는 엔디미온 스프링보다 다른 것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바람에 책의 과거가 독자들에게 강한 임팩트를 주지 못한다. 두 아이의 교감이 없는 것 같아서, 블레이크와 엔디미온 스프링이 의식적인 소통의 과정이 텅 비는 바람에 책을 읽으며 단지 보물찾기 이상의 만족은 얻지 못했던 것 같다.

 

묘사가 탁월하나 묘사가 책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것은 분명히 문제다. 원문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게 번역되는 과정에서 간결한 묘사가 너저분해지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든다. 하나의 장면을 보여주는데에도 많은 문장이 필요했다.

 

“푸스트가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그의 눈이 홀 맞은편에 있는 내 쪽을 향했다. 나는 그만 움찔하고 말았다. 마인츠에서 이곳으로 오는 내내 그는 내 목덜미에 거친 숨을 내뿜어 댔다. 마법 종이에서 아무것도 읽을 수 없는 게 나 때문이기라도 하다는 투였다. 그가 연장주머니에 감춘 종이들을 찾아낸 다음 내 목을 조를까 봐 무서워서 연장주머니를 내내 몸에 지니고 다녔다.”

 

엔디미온 스프링 232쪽 中

 

위에서 봐도 알 수 있듯이 중요하지 않은 내용임이 분명하지만 글쓴이는 가볍게 문장을 쓰기엔 아쉬운게 많아 보인다. ‘그리고 그의 눈이 홀 맞은편에 있는 내 쪽을 향했다.’는 ‘그는 맞은 편에 있는 나를 보았다.’ 식으로 바꾸는게 집중도 떨어뜨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부분의 비중을 높여줄 수 있을 것이다.

 

책은 이런 실수를 꽤 많이 범하고 있다. 같은 쪽에서 예시를 찾아보면,

 

“그는 마스터가 신기한 기적을 선물하기라도 한 것처럼 뾰족한 뿔테 안경을 허공에 흔들어 보이기도 했다.”

엔디미온 스프링 232쪽 中

 

라는 문장에서는 명사를 꾸미는 형용사가 빠지지 않으며, 완전한 문장이 또 하나의 완전한 문장을 직유법으로 꾸미고 있다. 책을 읽으며, 이런 부분이 자주 보였다.

 

“엄마는 악을 바락바락 쓰며 아빠에게 맞섰다.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욕설과 상소리가 분개한 엄마의 입을 통해 그대로 터져 나왔다. 비난이 총알처럼 방을 가로질러 벽을 때리고는 다시 가구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블레이크와 더크는 숨을 곳을 찾아 몸을 던졌다. 하지만 어린 두 아이에게는 방 안의 공기마저도 유리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당장이라도 깨져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공기.”

엔디미온 스프링 220쪽 中

 

들리는 것과 들려주는 것의 차이가 여기서 극명히 나타난다. 이런 첨예한 상황은 시끄러운 소리가 고막에 바로 전달되어야 현장감이 살테지만 책은 음소거를 한 채 장면만을 소곤소곤 들려준다. 치명적인 것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 다는 것이다. 정말 안좋은 문단이다.  

 

“그 쪽에는 안개처럼 희미한 단어 몇 개가 블레이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엔디미온 스프링 267쪽 中

 

잉크가 아까운 문장이다. 느끼한 음식을 억지로 먹는 기분이다. 간단하게 할 수 없을까? 우린 이런 어줍잖은 문장구조에도 감탄할만큼 감수성이 풍부하진 않다.

 

 

같은 문장에서도 삭제하면 좋을만한 단어나 글귀도 많았다.

 

“신기하게 책을 집어 들었을 때에도 아무런 느낌이나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책이 아니라 책의 기억, 아니 책의 유령을 잡은 느낌이 이럴 것 같았다.”

엔디미온 스프링 277쪽 中

 

너무 깐깐하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집어 들다’ 또한 ’집다’로 바꿨으면 좋겠다. ‘책이 아니라 책의 기억, 아니’ 모두 사라졌으면 좋겠다. ‘책이 아니라’ 만이라도. ‘책을 집었을 때 아무런 느낌이 없어 신기했다. 난 책의 유령을 잡은 것 같았다.’ 로 바꾸면 훨씬 수월하게 읽히지 않을까? 한 문장에서도 관형어나 쉼표로써 끊임없이 제동을 거는 것이 불편하다.

 

사실 외국작품을 읽는 데는 번역자가 책에 미치는 영향이 작가만큼 크다고 생각한다. 군데 군데에서 빛을 발하는 묘사라면 정말 좋았겠지만, 사실 이 책은 많은 부연과 사족을 안고 있다. 책 내용 또한 짧지 않기 때문에 글의 전개가 느렸던 것이 집중을 떨어뜨린 것 같다.

 

탁월한 묘사력이 제 곳에 적절하게 발휘된 곳도 있었다.

 

“주인은 이빨이 아니라 상아가 달린 멧돼지 같은 남자였다.”

엔디미온 스프링 236쪽 中

 

이 문장을 보면 술집 주인에 대한 더 이상의 다른 설명이 필요할까?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완벽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 문장에는 촘촘하게  짜여진 옷을 잡아당기면 나는 팽팽한 소리가 난다. 술집 주인의 얼굴이 아닌 몸 전체나, 옷차림이나, 술집의 분위기까지 느껴지게 하는 묘사다.

   

“마치 핀으로 긁어 놓은 피부에서 서서히 피가 맺히는 것 같았다.”

엔디미온 스프링 264쪽 中

 

이 묘사는 ‘엔디미온 스프링의 글자’ 를 독자에게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와 같은 많은 묘사들은 책이 그리는 그림을 더욱 ‘줌 인(zoom in)’하여 보는 것 같다. 비록 ‘줌 아웃(zoom out)’을 하고 다시 전체를 보기에 시간이 걸리게 됐지만 섬세하고 꼼꼼하게 색을 그리고 덧칠했다.

 

“더크는 망가진 시계추처럼 다리를 흔들어 놓고 있었다.”

엔디미온 스프링 215쪽 中

 

내가 고른 좋은 묘사들의 경향을 보면, 대체로 짧은 것이 특징이다. 짧으면서도 다른 긴 묘사들보다 더 밀도높은 장면을 현상해 내기 때문이다. ‘망가진 시계추처럼’ 이라는 간단한 비유가 문장에 숨을 불어넣은 것 같다. 문단과 페이지 전체에 흔들리는 느낌이 전해진다.

 

 

책을 읽을 때 때론 멀리서 지켜보기도 하며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눈앞에서 보기도 한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멀리서 지켜보는 쪽에 가깝다. 전개가 느릿느릿하다가도 어느 순간 보면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가장 애석한 부분이다. 가볍게 넘겨야 할 부분에는 너무나 스포트라이트를 주면서도 책의 심장부분에 가서는 번갯불에 콩을 구워 먹다니.

 

책을 읽으면서 하나 하나씩 영감을 얻고, 안목을 얻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난 원문과 번역문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보았으며, 문장의 길이에서 글의 호흡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계속 추적해가며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