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의 미술관 2 – 진정한 자아 찾기

연령 13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1년 6월 10일 | 정가 13,000원

종교와 과학은 적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서로를 보완할 수 있는 두 개의 서로 다른 관점이야.  1930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뉴욕타임스>에서 이런 말을 했어.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이고, 과학 없는 종교는 맹인이다.’ 이 말 속에는 겸허함이 깔려 있는 것 같아. P.322

진화론을 창시한 찰스 다윈의 이름을 즉시 떠올리게 하는 다윈 쇼우와 중성적인 느낌의 알렉스 다니엘스의 이름에서 예상되듯, 지구와 생명체의 기원에 대해 서로 다른 관점을 지닌 두 사람이 인류공동의 문화 유산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 그들이 만났을 때는 불신으로 일관되어졌던 모습들이 서로를 이해하면서 종교와 과학을 다른 관점이 아닌 조력자의 모습으로 보는 것처럼 그들은 파트너가 되어간다.

 

알렉스의 서재에서 본 사진 속 인물들의 정체가 하나씩 밝혀지기 시작하고, ‘두뇌’ 테오와의 두뇌게임이 책장을 넘기는 속도감을 멈출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1권보다 훨씬 빨라진 속도감으로 2권은 날을 넘기지 않고 읽어버렸다.  보통의 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과학용어와 미술작품들로 인해서 머릿속이 복잡해질만도 한데,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기 바빠서, 랄프 이자우가 알아서 해결을 해줬으리라 믿으면서 읽어 내려갔다.

 

키메라의 탄생과 함께 작가의 말을 통해서 작가는 에스트로겐이 다량 함유된 자외선차단제가 물속에 사는 동물군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알려주고 있는데, 수컷의 경우 불임과 여성화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는 연구결과가 있었다고 한다. 수컷이 암컷이 되는걸까? 아니면 반씩, 그렇다면 잡종으로 변하는 걸까?(P.395)라는 의문의 꼬리가 헤르마프로디테까지 이르게 됬다는 것이다.  진성 헤르마프로디테가 정말 있을까? 소설속 픽션일 뿐일까를 고민하고 있을때 작가는 미국에서 앤 포스토스털링의 조사를 예를 들어주기도 면서 그가 글을 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조사를 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그래서 그를 믿고 책을 읽는다.

 

픽션은 픽션이다. 그럼에도 이 글이 주는 파장은 언젠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알렉스가 가지고 있던 사진 속 인물들이 꿈꿔왔던 세상은 어렸을때 보왔던 <솔저>나 <아일랜드>를 떠올리게 한다. 인간의 욕망의 끝은 어디인지, 자신의 이익을 위한 행위에 거리낌이 없다.  신념을 믿기에 그렇게 할 수 있지만,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신념은 문제가 된다.  남성, 여성을 동시에 지닌 양성인간으로 설정된 알렉스는 과학 기술로 도달할 수 있는 인간의 완벽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하지만 이 뒤엔 “유전자 연구가 결국 우리 세계의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만든다.

 

책으로 다시 돌아가자.  다윈과 알렉스가 ‘두뇌’테오와 함께 따라가는 끝에는 <경솔한 수면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1권에서 처럼 ‘두뇌’는 예술 작품으로 그들을 불러들인다. 헨드릭 반 클레버의 <바벨탑 건설>과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앞으로 끌어들이면서 책을 읽으면서 액션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경솔한 수면자>,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같지 않은 이 그림속에서 간과하고 있는 상징들을 찾아야 한다.  너무나 가까워서 잊고 있었던 것.  수면자가 누워있는 나무 상자, 땅속에 묻혀있는 비석, 그리고 어두운 하늘.  누구를 말하는가?  숨어있는 듯 잠들었다 조용히 일어나 반격을 할 수면자. 그는 누구인가?  2권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만, 수면자의 정체를 아는 순간 숨을 멈추게 된다.  그리고 인간의 야욕을 보게 된다.

 

옳고 그림을 판단하는 문제는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그래서 작가 역시 작가의 말을 통해 슈테판 크렙스의 <껍질 벗기>로 말을 맺었는지 모르겠다.  자아탐구는 청소년 시절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니 말이다.

 

껍질벗기 – 슈테판 크렙스

조금씩 조금씩 / 낡은 피부를 벗고 / 내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가면을 벗고 / 가림막을 찢어 버리고

허상을 치워 버리고 / 어떤 역할을 맡지도 않고 /

나를 발견할 때까지 / 원래의 내 모습이 나타날 때까지

드러난 모습이 보잘것없을지라도 / 순수하고 진실하다

조금씩 조금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