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심리 여행: 수줍음이 많은 아이,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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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활달하고 에너지 넘치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이런 저런 계획을 구상하는 한편,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기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엄마들을 많이 만납니다. 특히 아이가 수줍음을 많이 탈 경우 운동과 같은 단체 활동이나 스피치 학원, 리더십 프로그램에 보내 아이의 담을 키우고자 합니다. 그런데 엄마들의 이런 계획이 아이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혹시 알고 계신지요? 아이의 수줍음이 답답한 엄마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지 몰라도 아이에게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달에는 수줍음을 주제로 그림책 심리여행을 떠나 보겠습니다. 아이의 수줍음을 큰 문제로 여기거나 단점으로 여겨서는 안 되지만 유치원이나 학교생활, 일상생활에서 대인 관계의 불편함을 초래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수줍음의 원인과 상황별 대처 방법을 알아 두면 자녀 양육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수줍어서 친구들 틈에 끼지 못하는 아이 현진이
현진이(가명, 7세)는 낯선 곳에만 가면 긴장을 하는 데다 친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말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나 엄마들의 모임, 부부 모임에 아이를 데려 가야 할 때면 집에 자기 혼자 있겠다며 떼를 씁니다. 대형마트나 식당에 있는 놀이방, 아파트 놀이터에서도 선뜻 아이들 틈에 끼지 못하고 재미나게 노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쳐다볼 뿐이지요. 엄마는 자기 치맛자락을 붙잡고 뒤로 숨는 딸의 손을 잡고 가서 “얘들아! 현진이랑도 함께 놀아 주면 고맙겠어.” 하고 말합니다. 엄마가 기회를 만들어 주는데도 현진이는 ‘얼음 땡’ 놀이를 하는 아이처럼 구석에 가만히 서 있습니다. 이런 딸의 모습에 엄마는 답답하고 화가 납니다. 엄마가 보기에 현진이는 수줍음도 많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엄마를 더욱 속상하게 한 것은 현진이가 유치원 수업 시간에 소변이 마려운데도 “화장실 가고 싶어요.”라는 말을 못해서 참다가 결국 옷에 오줌을 싼 일입니다. 화장실 가고 싶다고 말하는 건 부끄러운 행동이 아니라고 아무리 얘기해 주어도 그 말을 하기 힘들었는지 몇 차례 옷에다 소변을 보았다고 합니다. 답답하고 속상해 하면서도 크면 괜찮아지겠거니 하고 스스로 위로해 왔는데 얼마 전 유치원 재롱잔치를 계기로 방법을 찾아야겠다 싶어서 상담을 의뢰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아이가 선택한 그림책 『까만 크레파스』로 마음 열기를 해요
현진이의 수줍은 행동은 첫 만남에서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제가 반갑게 맞이하며 인사하자 엄마 뒤에 숨어 버리더군요. 엄마가 “선생님께 인사해야지?”라고 거듭 말했는데도 아무 반응이 없자 “아휴! 얘가 이래요. 낯선 사람을 보면 이렇게 부끄러워해요.” 하고 나섰습니다. 많은 엄마들이 아이가 수줍어서 어른에게 인사를 하지 않으면 인사를 종용하거나 아이의 태도를 민망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현진이 엄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민망함을 감추기 위해 엄마가 하는 말이 현진이를 주눅 들게 할까 봐 “처음 만나는 사람한테 인사하는 건 쉽지 않지.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거든. 하지만 나중에 우리가 서로 친해지면 반갑게 인사를 할 것 같은 기분 좋은 느낌이 들어.” 이렇게 얘기하고는 엄마에게는 현진이가 이곳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로비에서 그림책을 보여 주면서 긴장을 풀어 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현진이가 로비에 꽂혀 있는 그림책들을 보면서 “우와! 책 엄청 많다. 도서관 같아.”라고 혼잣말을 하기에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 기회다 싶어 다가가 말을 걸어 보았습니다. “그치? 여기는 도서관처럼 책이 많아. 현진이는 책 보는 거 좋아해?” 하고 물었더니 “네.”라는 짧은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주저하며 그림책을 선뜻 꺼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책이라도 꺼내 봐도 좋아.”라고 말해 주었지요. “정말요?” 하고 되묻는 표정이 저에 대한 낯설음이 조금 사라진 듯했습니다. 그 사이 엄마는 제가 현진이와 편하게 얘기 나눌 수 있도록 세미나실로 자리를 피해 주었습니다.
  가장 보고 싶은 그림책을 골라 봐도 괜찮다고 했더니 『까만 크레파스』(웅진주니어)를 찾아 달라고 하더군요. 저는 책꽂이 상단에 꽂혀 있는 『까만 크레파스』를 꺼내 주었습니다. 이 책이 유치원에도 있고 집에도 있는데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책이라고 했습니다. 왜 이 그림책을 제일 좋아하는지 궁금하다고 했더니 저를 빤히 쳐다보며 말하기를 주저하더군요. 저는 재빨리 “아! 미안 미안해. 선생님이 자꾸 말 걸어서 귀찮지?” 하고 사과했습니다. 그랬더니 현진이는 “까만 크레파스가 나중에는 행복해져요. 처음에는 친구가 없어서 슬펐는데 샤프형이 도와줘서 친구가 많이 생겼어요. 그래서 친구들이랑 불꽃놀이도 하고 행복해졌어요.” 하고 그림책의 줄거리를 압축해서 얘기하는 겁니다. 여섯 살짜리 아이가 그림책 한 권의 내용을 이처럼 정리해서 얘기하기가 쉽지 않은데 말이지요.
  친구들이랑 어떤 놀이를 할 때가 가장 재미있는지, 현진이한테도 친구가 많은지, 어떤 친구가 좋은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이의 마음에 조금씩 다가갔습니다. 아빠 엄마 놀이가 제일 재미있고 친구가 많으면 좋겠는데 유치원에서 가장 친한 아이는 두 명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랑 놀자고 얘기해 주는 친구가 좋다고 덧붙였습니다. “현진이가 먼저 같이 놀자고 말하면 친구가 훨씬 많아질 텐데…….”라고 했더니 자기도 그러고 싶지만 말이 나오지 않는다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현진이가 수줍음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엄마 생각처럼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하는 아이는 아니었습니다. 가족이나 자주 만나는 이모, 가까이 지내는 친구와 있을 때는 말을 많이 하고 감정 표현도 잘할 뿐더러 집단 속에 어울려 놀고 싶어 하는 마음도 컸습니다. 하지만 낯선 곳이나 친하지 않은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부끄러워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할 뿐이었지요. 현진이는 스스로도 이 점을 답답해하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 아이가 되고 싶다고 하더군요. 저는 현진이의 말을 지지해 주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보자는 말로 마음을 토닥여 주었습니다.

『너무 부끄러워!』를 함께 보며 수줍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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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만남에서는 현진이가 어떤 상황에서 수줍음을 많이 타는지 구체적으로 탐색하고 도와주기 위해 그림책 『너무 부끄러워!』(비룡소)를 활용했습니다. 이 책은 수줍음이 많은 아이들이 학교생활에서 주로 겪는 불편함을 레아라는 아이를 통해 간결하게 보여 줍니다. 무조건 부끄럼을 극복하고 활발해져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고 오히려 부끄럼이 많은 성격의 장점을 일깨워 준다는 점에서 부끄럼 때문에 고민인 아이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지요. 아이들은 제각각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마냥 다른 아이를 부러워하면서 자기 성격의 단점을 탓하기보다 장점을 먼저 보아야 한다는 메시지, 나아가 자신은 물론 타인의 장점과 개성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는 태도의 중요성을 알게 한다는 점에서 치유용 도서로써 가치가 높습니다.
  레아는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입니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못 해 옷에 실수를 하고, 여자애들한테 나비춤을 가르쳐 주지도 못합니다. 운동장에서 신나게 놀고 싶지만 친구에게 새치기를 당하는데도 “이번엔 내 차례야.”라고 용기 있게 말하지 못합니다. 남자 친구 넬슨한테는 좋아한다는 말도 못 하지요. 용감하고 씩씩하게 행동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늘 ‘너무 부끄러워!’ 하고는 멈칫거립니다. 그러다 한번은 레아가 마음을 굳게 먹고 용기를 냅니다. 아이들 앞에서 그림자 토끼를 얼마나 잘 만드는지 보여 주기로 했지요. 그런데 그만 뭐든지 잘하는 비올레트한테 기회를 뺏겨 버리고 말아요. 레아는 자기와는 다른 비올레트가 무척 멋져 보이고 부럽습니다. 비올레트는 부끄러워하거나 무서워하는 법이 없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비올레트는 여느 때처럼 학교 식당 아주머니 흉내를 내며 장난을 치다가 아주머니에게 들킬 뻔했는데, 눈치 빠른 레아 덕분에 위기를 모면하게 되지요. 이 일을 계기로 비올레트는 레아가 정말 대단하다고 한껏 치켜세워 줍니다. 조심성이 없어 덤벙대고 문제를 일으키기 일쑤인 자신과 달리 레아는 항상 조심스럽고 빈틈이 없는 아이니까요. 이렇게 해서 부끄럼이 많지만 신중한 레아와 활달하지만 실수투성이인 비올레트는 서로가 가진 장점을 인정하는 사이좋은 친구가 되었답니다.
  저는 그림책을 보여 주기 전에 “이 책에는 부끄러움이 많은 여자 아이가 나오는데 현진이랑 같은 고민을 하고 있어.”라는 식으로 그림책의 주제를 먼저 얘기해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를 다룬 주제의 그림책에 몰입하면서 주인공의 상황과 감정에 동일시하고 위로도 받습니다. 한편으로는 문제를 직면하기 두려워하며 회피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상담자와 아이 사이에 충분히 라포 형성이 이뤄진 다음, 아이가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될 때 문제에 직면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하지만 현진이는 첫 만남에서 이미 부끄러움으로 인한 답답함을 호소했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아이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기에 시간을 지체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현진이는 그림책을 천천히 꼼꼼하게 눈으로 읽어 나갔습니다. 그림책의 플랩을 펼쳤다 접었다 하면서요. 엄마 말에 의하면 현진이는 한글을 일찍 깨쳐서 여섯 살 때부터 혼자 그림책을 보았다고 합니다. 글자 한 자 한 자를 빠짐없이 읽는지 시간이 꽤 많이 걸렸습니다. 책장을 덮으면서 현진이는 “휴!” 하고 한숨을 내쉬더군요. 그 한숨이 안도에서 나온 것임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현진이는 책을 무척 꼼꼼하게 보는구나! 참 예뻐.”라고 칭찬해 줬더니 “엄마는 거북이처럼 책을 본대요. 만날만날 빨리 읽으라고 해요.”라고 답합니다. 제가 엄마처럼 빨리 책을 보라고 재촉할까 봐 불안했나 봅니다.
혼자서 그림책을 다 본 현진이에게 다른 읽기 방법을 한 가지 제안했습니다. “수업 시간에 레아는 선생님한테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라고 말하고 싶어. 하지만……” 하고 상상하는 레아의 생각을 제가 먼저 읽으면 현진이가 접힌 플랩을 펼쳐 그 안에 담긴 현실 속 레아의 모습을 보며 뒷이야기를 잇는 식으로 읽기로 했지요. 현진이는 상상 속 레아의 모습을 볼 때는 표정이 환했지만, 부끄러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현실 속 레아의 모습을 보며 뒷이야기를 이을 때는 표정을 찡그렸습니다. 레아에 대해 안타까워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속이 상한 탓이지요. 한 번 더 읽기를 마친 후 현진이와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상담사 : 레아는 정말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야.
현진이 : 부끄러워서 하고 싶은 말을 못해요.
상담사 : 그래. 맞아! 레아는 부끄러워서 하고 싶은 말을 못했지. 어떤 말을 못했을까?
현진이 : 선생님한테 화장실 가고 싶다고 말을 못했어요.
상담사 :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졌어?
현진이 : 옷에 오줌 쌌어요.
상담사 : 옷에 오줌 쌌을 때 레아의 기분은 어땠을까?
현진이 : 창피해서 울고 싶었어요.
상담사 : 레아가 많이 힘들었을 것 같은데 현진이 생각은 어때?
현진이 : 많이 속상했을 거예요. 오줌 쌌다고 엄마한테 혼났을 거예요. 나는 엄마한테 야단맞았어요.
상담사 : 현진이도 유치원에서 옷에 오줌 눈 적이 있었나 보구나.
현진이 : 세 번이요. 선생님한테 얘기 안 했다고 엄마한테 혼났어요.
상담사 : 왜 선생님한테 화장실 가고 싶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현진이 : 친구들이 이상하게 쳐다볼까 봐서요.
상담사 : 친구들이 왜 이상하게 쳐다볼 거라고 생각했어?
현진이 : 그냥요.
상담사 : 그때 엄마는 어떻게 혼을 내셨어?
현진이 : “너 바보야? 손들고 선생님한테 화장실 가고 싶다고 말했어야지. 으이구 답답해.”
상담사 : 엄마한테 혼날 때 기분이 어땠는지 얘기해 줄 수 있겠니?
현진이 : 울었어요. 엄마는 내 편이 아니에요.
상담사 : 엄마가 혼을 낸 건 현진이가 옷에 오줌을 싸면 친구들한테 창피 당할까 봐 속상해서 그러셨을 거야.
현진이 : 아니에요. 엄마는 내가 하는 건 다 싫어해요.
상담사 : 정말 그렇게 생각해?
현진이 : 재롱잔치 할 때 엄마는 내가 춤 안 췄다고 말을 안했어요. 엄마가 너무 무서웠어요.
상담사 : 아! 사실은 엄마가 그때 얘기 해 주셨어. 현진이가 무대에서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고 말이야.
현진이 :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까 막 무서웠어요.
상담사 : 그래.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선생님도 사람들 많은데서 춤추라고 하면 아마 얼음처럼 굳어 버렸을 거야.
현진이 : 그런데 엄마는 내 마음 몰라요. 나는 거북이 아닌데. 나도 비올레트처럼 씩씩하고 싶은데 그런데 마음대로 안돼요.
상담사 : 그동안 많이 속상했구나?
현진이 : 네, 먹구름이에요.
상담사 : 먹구름?
현진이 : 네, 먹구름요. 마음이 캄캄해요.
상담사 : 아하! 그거 재미있는 표현인데…….
현진이 : 정말요? 엄마는 내 얘기 재미있다고 안 했는데……. 나는요. 친구들 앞에서도 얘기 잘하고 싶어요. 부끄럼쟁이는 안 되고 싶어요.
상담사 : 현진이가 정말 바라면 그렇게 될 수 있어.
현진이 : 어떻게요?
상담사 : 물론 노력이 필요하지.
현진이 : 어려운 거예요?
상담사 : 처음에는 조금 힘들어. 하지만 익숙해지면 밥 먹는 것처럼 아주 쉬워진단다.
현진이 : …….
상담사 : 레아가 부끄러움 없이 뭐든 잘 하는 아이가 되는 상상을 한 것처럼 현진이도 그렇게 해 보는 거야. 상상하는 건 아주 쉽지. 어떤 상상을 해 볼까?
현진이 : 화장실 가고 싶다고 큰 소리로 말하고 싶어요. 발표회 때 춤도 잘 추는 거요.
상담사 : 그래 좋아! 지금부터 눈을 감고 상상의 나라로 떠나 볼까. 수업 시간에 현진이가 용기 있게 “선생님! 화장실 가고 싶어요.” 하고 말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렴.
현진이 : …….
상담사 : 손을 번쩍 들고 선생님께 큰 소리로 얘기했어?
현진이 : 네.
상담사 : 기분이 어때?
현진이 : 후련해요. 친구들이 나를 쳐다봤어요. 그런데 안 부끄러웠어요.
상담사 : 그래! 잘했어. 현진이가 용기를 냈구나. 친구들이 현진이를 쳐다본 건 용기 있게 말하는 모습이 부러워서야. 그러니까 앞으로 수업 시간에 화장실 가고 싶으면 선생님한테 당당하게 말해. 그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거든.
현진이 : 히히.
상담사 : 이제 발표회 때 다른 친구들처럼 몸을 움직이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두 팔을 벌리고, 몸을 흔들면서, TV에서 춤 잘 추는 가수들처럼.
현진이 : …….
상담사 : 어떤 기분이 들어?
현진이 : 모두들 나를 쳐다보고 칭찬하는 것 같았어요. 엄마가 박수쳐 줬어요.
상담사 : 그래! 이번에도 잘했어. 이제 눈을 떠도 좋아. 이렇게 현진이가 하나씩 상상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거야.
현진이 : 아휴! 그런데 또 못하면요.
상담사 : 그럼 숨을 크게 한 번 내 쉬고 속으로 이렇게 말하면 돼. ‘나는 용기 있는 현진이야. 부끄럽지 않아.’ 자! 선생님을 따라해 볼까. 나는 용기 있는 현진이야. 부끄럽지 않아.
현진이 : 나는 용기 있는 현진이야. 부끄럽지 않아.
상담사 : 아까 선생님이 처음에는 힘들 거라고 말했었지. 하지만 익숙해지면 밥 먹는 것처럼 쉬워진다고 한 말을 꼭 기억해 주면 좋겠어.

현진이에게 잘할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 주고 당당하게 자기 생각을 말해도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주기 위해 이야기 바꾸기 활동을 했습니다. “레아를 용기 있는 아이로 만들어 주는 거야. 선생님이 먼저 해 볼게.” 하며 첫 페이지 이야기를 바꾸어 읽었습니다. “수업 시간에 레아는 선생님한테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라고 용기 있게 말했어. 그러자 선생님은 다정하게 웃으며 말씀하셨어. 그래! 현진아. 지금은 수업 시간이니까 화장실에 살짝 다녀오렴.”
  그러자 현진이는 “쉬는 시간에 레아는 여자애들한테 나비춤을 가르쳐 주고 싶어. 그래서 레아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멋지게 나비춤을 췄어. 모두들 부러워했어.”라고 이야기를 바꾸더군요. 현진이는 무척 재미있어 하며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이날 두 번째 만남을 마무리하면서 소감을 물었더니 부끄러움이 조금 사라진 것 같다고 하더군요.
  다음 번 만남에서도 수줍음이 많은 아이가 등장하는 그림책을 활용해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빨간 풍선』(상)에 나오는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교실에서도, 바닷가에 소풍가서도 혼자 노는 외톨이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우연히 서커스를 보러 갔다가 부끄러움이 너무 많아서 서커스를 할 수 없는 코끼리를 만납니다. 유치원 재롱 잔치 때 무대 뒤에서 울고 있는 자신을 위해 엄마가 빨간 풍선을 주신 일이 떠올랐지요.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자기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코끼리가 자꾸 생각나 코끼리를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아이는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다음 날 코끼리의 얼굴을 가릴 수 있을 만큼 큰 풍선을 선물합니다. 코끼리는 풍선으로 얼굴을 가린 채 멋진 묘기를 보여 주지요.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아이의 가슴은 두근거립니다. 힘든 상황에 빠진 코끼리를 도와줘 기쁘기도 하지만 자신감을 얻으면서 느낀 설렘이 큽니다. ‘이제 나도 또 다른 용기가 필요한 때인 것 같아.’ 아이는 풍선을 날려 보냅니다. 언제까지나 풍선에 의지해 자신의 부끄러움을 가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드디어 아이의 옆얼굴이 나타납니다. 아직까지는 풍선 없이 정면으로 세상과 마주할 용기가 없습니다만 놀라운 성장을 이뤘습니다. 현진이에게 『빨간 풍선』을 읽어 주며 한 번에 부족한 점을 채울 수는 없다고, 달라지는 데는 시간이 걸리므로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그 뒤로도 만남이 시작될 때마다 지난 한 주 동안 현진이가 어떤 상황에서 용기를 내어 자기 생각을 얘기했는지, 그때의 기분이 어땠는지에 관한 얘기를 나누면서 격려하고 용기 내는 행동을 강화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현진이는 화장실 가고 싶다고 얘기하는 건 여전히 못할 것 같다고 얘기했지만 상담이 진행되는 석 달 동안 옷에 오줌 누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수줍음, 있는 그대로 받아 주고 존중해 주는 자세가 필요해요
현진이와 상담하면서 엄마가 자주 딸을 긴장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재롱잔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침묵으로 아이를 대한 것이나 책을 보는 아이를 거북이에 비유하며 빨리 보라고 재촉한 행동 등이 딸을 긴장 속으로 몰아넣은 것이었지요. 긴장과 불안은 부끄러움을 더 크게 느끼게 하므로 아이의 수줍어하는 행동이 엄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답답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저와 처음 만나던 날에 현진이가 인사를 하지 않자 무안함을 감추고자 “아휴! 얘가 이래요. 낯선 사람을 보면 이렇게 부끄러워해요.”라고 엄마가 말하던 순간을 상기시키며 이러한 말은 아이로 하여금 수줍음을 마치 큰 문제나 잘못인 것처럼 여기게 한다는 사실도 일깨워 주었습니다.
  또 수줍음에 대처하는 엄마의 양육 태도에 일관성이 없는 것도 현진이를 힘들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같은 행동을 했는데도 엄마가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은 심하게 야단치고, 기분이 좋은 날은 못 본 척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 것이지요. 특히 딸의 수줍음에 대해서는 더욱 일관성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현진이는 엄마의 기분을 살피며 눈치를 보는 아이가 되었고 어떤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엄마에게 가장 필요한 변화는 수줍음이 많은 딸을 나약한 아이로 보는 시선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현진이 엄마는 수줍음이 많으면 내향적이고 나약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수줍음은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 중 하나일 뿐인데 마치 그것을 아이의 전부인양 생각해 왔으니 딸의 장점이 눈에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지요. 쉽지는 않겠지만 수줍어하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존중해 줄 것을 거듭 당부했습니다. 수줍음 많은 아이는 행동이 다소 느려서 다른 사람들 눈에 답답해 보이지만 신중하고 꼼꼼한 면이 있으니 장점을 부각시켜 주면서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이끌어 주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대신 현진이가 수줍음 때문에 스스로도 답답해하고 불편함을 느끼고 있으니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엄마가 옆에서 격려하고 다독여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약 아빠, 엄마도 어릴 적에 수줍어하는 아이였다면 그 때의 경험과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들려주면서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마리 퀴리처럼 어린 시절 수줍음이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위대한 업적을 남긴 위인들의 얘기를 통해 자신감을 심어 주는 방법도 현진이한테 도움이 될 거라고 조언했습니다.
  한 가지 더 현진이가 아빠 엄마를 따라 모임에 가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도 짚어 보았습니다. 어른들은 모이기만 하면 아이들한테 자꾸 노래 불러 보라고 시키는데 현진이는 그게 너무 싫다고 했습니다. 부끄러워서 노래를 할 수 없으니까요. 수줍음이 많은 아이에게는 참 힘든 요구 사항이지요.
  한번은 어떤 아저씨가 “에이! 현진이 별로네……, 노래도 못하고.”라는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 말이 현진이 마음에 큰 상처로 내내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임에 억지로 데려가기보다는 가까운 친척에게 돌봐 달라고 하고, 상황이 여의치 않아 아이를 꼭 데려가야 한다면 모임 시간보다 일찍 가서 아이가 낯선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것을 권했습니다. 또 억지로 노래를 시키거나 춤추게 하고 용돈을 주는 행동으로 아이들의 경쟁 심리를 부추기지 않도록 사전에 어른들끼리 조율해 놓는 것도 필요하다고 알렸습니다.
  엄마는 제 얘기를 듣고는 자기 성격이 급하고 활달하다 보니 그동안 현진이의 마음을 잘 헤아려 주지 못한 것 같다고 하더군요. 자기가 무심결에 한 말들이 현진이를 얼마나 수치스럽게 했는지 알지 못했고 아이의 말을 귀담아 듣기보다 자기 말을 더 많이 했던 모습을 떠올리며 부끄러워했습니다. 반성하는 것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별개이므로 엄마의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함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현진이한테는 무엇보다도 엄마의 친절한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현진이 엄마를 보면서 저는 세계적인 사회학자이자 인간생태학 분야의 최고 권위자인 칼 필레머 교수가 쓴 책『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토네이도, 2012)의 한 페이지(128p)를 떠올렸습니다. 필레머 교수는 일곱 아들의 아버지이자 전 미국 노동부 장관인 로버트 라이시가 한 잡지에 썼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란 제목의 글을 인용했습니다. “아이들이란 조개 같아서 평소에는 껍데기를 꽉 닫고는 딱딱한 모습을 보여 주지만 그 속은 더 없이 연약하고 상처받기 쉽다고 설명한다. 예기치 못한 순간 아이들이 단단한 껍데기를 열 때가 있는데 바로 그 순간 부모가 그 자리에 없다면 ‘달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그는 말한다.”

 

d_img4글 : 김은아 (마음문학치료연구소 소장, 행복한그림동화책연구소소장)
대학에서 국어 국문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아동가족상담과 문학치료학을 공부했습니다. 현재 행복한 그림동화책 연구소와 마음문학치료 연구소를 운영하며 대학에서 아동상담과 아동문학, 부모교육 등의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어린이책 기획자, 특별 기고가로서 어린이책의 매력을 전하기도 합니다. 그림책으로 마음 나눔을 실천하고자 행복한 도서관 만들기 운동과 다문화 가정 그림책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