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쾌한 탭댄스

연령 10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09년 8월 25일 | 정가 8,500원

  샤론 크리치의 『정어리 같은 내 인생』은 무지막지하게 재미있는 책이다.『아주 특별한 시 수업』에서 작가의 유머감각이 어느 정도 느껴졌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번역도 흠잡을 데 없이 너무 유려해서 마치 우리나라 창작도서를 읽는 듯했다. 하지만 이 책의 첫인상은  뭔가 우스꽝스러웠다. 표지에서 탭댄스 구두를 신고 책을 읽는 레오의 모습이 몽상에 잠긴 것처럼 멍한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오의 그림자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경쾌하다. 그래서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이 레오라는 아이는 어떤 아이일까 궁금했다.
 

  그러니까 정어리, 혹은 몽상가라 불리는 주인공 레오는 연극을 하는 평범한 소년이다. 하지만 언젠가 한 번 내뱉은 말 때문에 정어리라는 별명을 갖게 된 조금 불운한 소년이기도 하다. 레오네 가족은 정말, 웃긴다. 평범한 가족인데도 불구하고, 레오네 가족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일상적인 가족의 모습이 독자로 하여금 웃음 짓게 하는 것이다. 또 레오가 저지르는 실수나, 그럴 때마다 더 거대해지고 쑥쑥 크는 레오의 공상들이 우리를 웃음 짓게 한다. 하지만 레오의 공상은 건강하다. 레오는 세계 최고의 배우가 되어 모든 사람들이 레오에게 출연해 달라고 하는 장면을 상상한다. 자신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수하겠다던가 하는 마음은 품지 않는다.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위로하는 방법 중에 공상이라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작가는 이 작품에서 보여주고 있다. 레오는 이를 통해 많은 위안을 받는다. 이는 독자의 경험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도 때로는 슬픔을 이겨나가는 방법으로 그런 방법을 쓰니까. 보편성을 획득하면서도, 어린 아이의 순수함이 느껴지는 모습이 독자와의 유대감을 긴밀하게 형성하는 것 같다.
 

  누구에게나 살아간다는 것이 순탄치만은 않고 그것은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에게도 잘하고 싶은 것이 있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실수할 때는 두렵고, 부끄럽다. 하지만 그런 경험이 진짜 우리의 삶을 만들어 간다는 것을 작가는 알고 있다. 그렇기에 부끄럽고 우스꽝스러운 실수들을 정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아니, 오히려 밝게 유쾌하게 명랑하게 그려낸다. 이렇게까지 일상을 전복시킬 수 있는 웃음의 미학이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여기에선 어떤 역설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아내고 슬픔 속에서도 유쾌한 요소를 찾아내는 긍정의 힘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줄줄이 부상을 당해 실려 가는 피에르토, 콘텐토, 눈치오의 상황에서 작가는 웃을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놓는다.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가는 아빠를 향해 간호사는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가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든지 말이다. 분주한 가운데 경기장, 행사장으로 떠나는 가족의 모습은 어떤가. 반복될수록 너무 재미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한 번 크게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책을 읽으면서 깨달을 수 있었다.
 

  또 작가는 가족과 부모님에 대해 말한다. 아빠의 자서전이라는 소재를 통해 가족의 존재와 꿈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이로 인해 우리의 정어리, 아니 주인공 레오는 또 고민에 빠진다. 아빠의 열 세 살 자서전을 보고 행복할 때마다 탭댄스를 추었다는 아빠를 떠올려 보는 레오. 하지만 아빠가 이루고자 했던 꿈과 지금의 현실이 너무 다르다. 혹시 아빠는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닐까? 아빠의 탭댄스 구두는 상자 속에서 나온 적이 없고……. 레오가 보기에는 엄마의 삶도 힘겨워 보이기만 한다. 그렇기에 레오는 아빠와 엄마의 행복을 되찾아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로 인해 레오는 진실을 바라보는 법,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를 즐기는 법을 배우게 된다. 무엇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법도 배우게 된다.
 

  주제도, 소재도 튀는 것 하나 없는 데도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작가의 능력이 놀랄 만큼 뛰어나다. 일상을 연극으로 바꾸어 새롭고 신선한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함께 수록된 연극 <룸포포의 베란다>와 작품에 꼭 맞는 옮긴이의 말까지, 지금껏 만나지 못했던 동화의 새로운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평범한 가족의 이야기를, 정어리 같은 레오의 삶을 의미 있고 중요하고 소중한 이야기로 만들어 버리는 작가는 누구보다 삶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그 가치를 진심으로 인정하는 사람이다. 레오가 탭댄스를 추는 것처럼 유쾌하고 즐겁게 말이다. 삶이 지루해지고 보잘 것 없어 보일 때 읽어보면 힘과 용기가 솟는 아름다운 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