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문의 기적 – 일상이 기적이다

시리즈 일공일삼 시리즈 67 | 강정연 | 그림 김정은
연령 10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6년 4월 29일 | 정가 15,000원
수상/추천 창원아동문학상 외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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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기적이다

분홍문의 기적, 강정연, 비룡소

띠지에 적힌 문장으로 글을 시작하고 싶다.

울고 웃고 화내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어쩌면 기적 같은 이야기’

그렇다. 강정연 작가의 ‘분홍문의 기적’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기적이라는 것을 은밀하면서도 노골적으로 전하고 있다.

‘평범한 일상이 기적’이라는 말을 경구로 여기는 사람들이 다수다.  살면서 이 말이 진리라는 것을 겪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평범한 일상이 어쩌면 기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망각하고 산다. 그리고 아주 가끔 미디어가 전하는 사건사고를 통해 이 경구를 꺼내어 자신의 삶에 감사하려고 하지만 그것도 순간이다. 대개의 경우 망각수를 마신 사람처럼 새까맣게 잊는다. 내 일이 아니니 그럴밖에.

‘분홍문의 기적’은 내게 닥친 일이 아니어서 평범한 일상에 무감각한 이들에게 평범한 일상이 어떻게 간절한 삶이 되는지 마음판에 새기게 한다.

“분홍문의 기적” 표지 그림은 따뜻하면서도 살짝 열린 분홍문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게 하는 힘이 있다.  기실 이 문은 일부러 열어 놓았을 것이다. 엿보고 싶은 충동이 격하게 생긴다. 평범한 집 내부에 날개달린 사람이 날고 있으니…..  그 나머지를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허겁지겁 책장을 넘기면

‘세상엔 믿을 수 없는 일이 종종 일어나기도 한다.

  중략

여기 무척 화가 난 두 남자가 있다.

이들에게 아무도 믿지 못할,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다.’

는 문장으로 다음 장을 재촉한다.

그리고 ‘분홍 문’에는 누가 살까?‘로 첫 장을 시작한다. 분홍에 대한 고정적인 느낌이 있다. 부드럽다. 행복하다. 온화하다. 여성스럽다. 사랑스럽다. 등.

독자들은 분홍 문에는 행복한 사람들이 살 것이라고 거의 확신한다. 더욱이 분홍 문에 걸려있는 집 모양 나무판에 ‘행복한 우리 집’이라고 쓰여 있으니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작가도 독자의 기대에 부응하듯 처음에는 분홍 문 안에 사는 행복한 사람들의 일상을 과장되게 그리다가 상상과 현실은 다르다며 분홍 문 안에 사는 전혀 행복하지 않은 형편없는 두 남자를 소개한다. 두 남자의 일상은 보기 부담스럽다. 외면하고 싶다. 집안은 더럽고 엉망진창이다. 아들 박향기는 향기라는 이름대신 냄새라는 딴이름을 얻은 지 오래고, 아버지 박진정은 밤낮으로 술에 쪄들어 제 가게임에도 나 몰라라해 상가에서 민폐 1호가 되었다.

산뜻하고 따뜻한 분홍 문, 더욱이 행복한 우리집이라는 가호가 붙은 이 집에서 어떻게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모두 피하고 싶은 분홍 문 식구들이 되었을까. 그 사연을 알고 기가 막힌다.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극적이어서 어이가 없다. 그러나 누구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박향기, 박진정 두 부자에게 일어났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더없이 행복한 일요일 아침이었다. 아빠는 소파에 늘어지게 누워 신문을 보고 아들은 제 방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고 엄마는 즐거운 마음으로 부엌에서가족을 위해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엄마는 된장찌개의 화룡점정 두부가 없어 두부를 사러갔다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3분이면 다녀오는 거리였다.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상황 아닌가.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던 엄마가 죽었다니….., 그러니 박향기, 박진정 두 부자 어떻게 일상을 제대로 살 수 있겠는가? ‘그래도’라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아버지인데’라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그렇게 살면 안되지’라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박진정, 박향기 두 부자의 생활을 비난 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의 삶이 옳은 것도 아니다. 그들이 사랑하는 아내와 엄마의 죽음에 잠식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그 죽음이 준비되지 않았고 왜 하필 내게 일어난 일인지 원망스럽고 현실을 부정하고 죽음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도 간절하다는 것은 알지만 각자에게는 주어진 삶이 있다.

그들이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방법은 없는가?

그들을 치유할 방법은 정말 없는가?

박진정, 박향기 남겨진 분홍 문 안의 남자들은 자신의 삶을 찾아갈 수 있는가?

이 책의 결말은 중요하지 않다. 작가의 말처럼

지금은 반짝반짝 빛나는 맑고 투명한 유리잔이지만, 똑. 딱. 1초 뒤에도 유리잔이 여전히 빛나고 있을지, 수천 개의 유리 조각으로 깨져 있을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피하고 싶은 아니 절대 오면 안 되는 일이지만 그 일이 누구에게나 분홍 문 사람들처럼 올 수 있기에 결과가 아닌 분홍 문 사람들의 삶을 통해 그들이 자신의 삶을 찾는 과정에 주목해야한다.

초록 문 사람들처럼 죽은 사람이 천사가 되어 내 앞에 나타나는 세상에 믿을 수 없는 일이 내게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72시간 살아 돌아온 지나씨의 등장은 데우스엑스마키나이다. 그럼에도 이것이 유효하고 결정적인 이유는 이 이야기의 주제가 죽음을 극복하는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평범한 일상이 기적이라는 것이 이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다. 지나씨의 등장은 일상이 얼마나 특별한 일이며 행복한 일인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장치이다.

우리가 이 책에서 읽어내야 할 것은 영원은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충실한 것이 영원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일지도 모른다. 1초. 뒤 유리잔의 운명을 알 수 없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