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를 교통사고로 잃고

연령 11~13세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1999년 3월 10일 | 정가 9,000원
수상/추천 독일 청소년 문학상 외 5건

엄마 아빠를 교통사고로 잃고 칼레는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된다. 이야기의 첫머리부터 호기심 가득한 할머니의 캐릭터와 아이의 동거는 순탄하지만은 않다. 우선 할머니는 칼레와 나이 차이가 많다. 당연히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먼저 할머니는 칼레가 그토록 사랑하는 어머니에 대해서 험담을 한다. (그러면서도 며느리에게 좀 더 다정하게 대해 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기도 한다.) 재미있는 이야기 대신 추억에 잠겨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텔레비전도 칼레가 좋아하는 게임이나 스포츠 경기를 보는 대신 구닥다리 옛날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훔치고… 또 단 둘이 여행을 갔을 때는 주변 사람들에게 없는 이야기를 꾸며 대기도 하고(그렇지만 할머니의 이야기 솜씨는 일품이다. 재미없는 이야기도 할머니의 입을 거치기만 하면, 흥미진진하고 스릴 넘치는 이야기로 변해 버리니까) 이웃 사람들에게도 따뜻한 말을 건네기보다는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고.
무뚝뚝하고 자기주장이 강하고 남과 다른 자신의 차이를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할머니인 것 같아도, 단락 끝에 드러난 할머니의 마음은 여리고 손자를 사랑하는 여느 할머니와 같다.
할머니와 칼레의 동거는 복지 시설의 지원과 칼레의 숙제, 그리고 할머니의 병환 등으로 몇 번의 위기를 맞기는 하지만 그 때마다 둘의 끈끈한 정을 확인하게 된다. 비행기를 두려워하는 할머니를 위해서는 경품 회사 사장에게 편지를 보내 할머니에게 근사한 대체 선물을 받아 주고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어느 때보다 당당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할머니를 편안하게 안심시키고.. 할머니와 함께 한 몇 년 동안 칼레는 훌쩍 어른이 되어 버렸다. 여전히 할머니에게는 이해 못할 것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당당하게 이 세상을 즐겁게 살아가는 할머니를 칼레는 사랑한다.
페터 헤르틀링은 이 작품으로 독일 청소년 문학상을 받았다. 그럴 만한 것이, 책을 처음 잡은 그 순간부터 너무나 선명하게 캐릭터가 살아 있다. 할머니의 외모, 생각, 대화에서 고집불통이지만 연약하고 두려움 많고 그렇지만 어린 손자에게는 그런 걸 내색하기 싫어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너무나 잘 그려져 있다. 문장 또한 꾸미지 않고 간략하게 이야기의 상황이나 주인공의 내면을 그대로 드러낸다. 뚜렷한 갈등 상황이나 클라이맥스는 없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할머니의 담담함을 따라가게 된다. 무엇보다 단락이 끝나는 마지막 부분에 쓰여 있는 할머니의 독백은 이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와 다른 장점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할머니의 모습뿐 아니라, 실제로 할머니가 얼마나 삶을 신중하게 살아가는지, 또 칼레를 사랑하는지를, 그러면서 할머니 역시 손자 앞에서는 당차 보이지만 두려움 많고 나이 어린 손자를 잘 키우기 위해 고민하는 평범한 할머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건 바로 우리 할머니들의 모습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