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들이 떴다.
이 세상은 때로 너무나 단순해 보인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지만 모두에게는
한결같은 꿈이 있고 한결같은 길이 있을 뿐이다.
오직 한 가지 길로 모든 사람들이 몰려가고 있으며 그 길 밖의 사람들은 철저히
무시되고 소외되는 세상이다. 그 원칙(?)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그 한가지 길 밖에 서 있다면 세상의 시선은 따갑고 차갑다.
길 밖에서 맞는 것은 세상의 구박과 멸시뿐이다. 아이들은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냉랭한 시선에 길들어 가며 맴돌 뿐 아무것도 참다운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서성이며 그렇게 성년을 맞는다.
춘천기계공고 3학년 손재웅과 그의 친구들.
온 세상이 인정하는 그 한 가지 길로 가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진학에서 일찌감치 빗겨나 공고에 진학한 아이들이다.
공부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아이들은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니다.
비난과 멸시에 익숙해가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아이들은 스스로의
자존감도 형성되지 못했고 그저 심심하지 시간을 떼우고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라는 자괴감에 젖어 하루하루를 보낸다.
자격증이 있고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은 이미 취업현장에 나가고
점심때가 되어 밥이나 먹으러 학교를 찾아오는 나머지 아이들이
무료하게 교실을 채우는 공고 3학년 교실의 풍경이 냉정하게 펼쳐진다.
엄마와 아침부터 용돈문제로 실랑이를 벌이다 피시방에서 오전시간을
보내고 어슬렁어슬렁 학교에 밥 먹으로 찾아간 아이들. 생각지도 못한
취업의뢰가 아이들에게 찾아왔다. 멀리 원주까지 가야하는 것이 맘에 걸리지만
아이들은 모처럼 큰 기쁨을 느끼며 설레는 맘으로 첫 직장을 향해 달려간다.
추동리. 급여 90만원이라는 말에 세상을 얻은 듯 큰 희망을 가지고
달려갔던 그들이 일하게 된 곳은 첩첩산중 작은 시골마을이다.
핸드폰도 안 터지고 하루세끼 된장국에 더덕무침만 먹고 지내야 하는 곳.
공장에서 우아하게(?) 일할 것을 기대했지만 날마다 험한 산길을 올라
송전탑 설치를 위한 기초공사를 해야 하는 고된 노동이 끝이 없다.
아이들을 부리며 감시하는 양대리라는 인간에게 증오심이 쌓여가고
아이들은 불만과 억울함만으로 하루 하루를 보낸다.
그렇게 그야말로 지옥과 같은 곳에서 오로지 탈출하는 것만이 목표였던 아이들에게
차츰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그저 하루하루 무료함을 달래려 말초적인 즐거움만을
추구하며 보내던 날들 대신 끔찍하게도 싫었던 공사판이 노동이 몸에 익어간다.
함께 일하는 나이 많은 아저씨들의 삶에도
마음을 열게 되고 탈출시도가 좌절되며 배신자라고 미워하던 친구의
어려움도 이해하게 되고 그저 나를 벌레처럼 여기는 줄만 알았던
가족들의 사랑에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한다. 서울에서 다니러 와서
탈출만이 목표였던 재웅이의 마음을 흔들어버린 은향이, 알고보니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였던 양대리, 비열한 김과장, 기초반 공사팀을 무시하는
조립팀 직원들, 이장님, 구멍가게 할아버지, 근처 절에서 몇 년째 고시공부중인 육법대사…
이전이라면 손톱만큼의 관심도 주지 않았을 추동리 사람들과 만나
갈등하고 화해하며 아이들은 세상의 여러 모습을 배운다.
다양한 부류의 ‘어른’들이 펼쳐내는 세상 살이에서 아이들은
눈물과 웃음, 갈등과 화해, 신뢰와 배신을 직접 경험하고 자신의 삶속에 꼭꼭 다져 넣는다.
송전탑 공사로 산사태와 물난리를 겪는 추동리 주민과 회사와의 갈등이 벌어지자
아이들은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뜻을 펼치며 뛰어든다.
아무런 존재감 없이 늘 무력하던 아이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힘을 얻게 되었다. 걷잡을 수 없이 뻗어나가던
갈등과 절망스런 상황이 해결되고 아이들이 이 마을에 들어오면서
처음 만났던 옷자락을 풀어헤치고 방긋 웃으며 벽에 기대어 앉아계시던
희진이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다.
마을 사람들이 정성스럽게 꾸민 고운 상여를 타고 저 세상으로 떠나는
할머니의 장례식을 함께 준비하고 치루며 성년을 바라보는 ‘꼴찌 아이들’의
가슴속에 한 가지 길만이 인정받는 세상 속에서 떳떳하게 살아갈 단단한 힘이
작게 자라고 있음을 행복하게 느낀다.
배경과 사건이 큰 스케일로 펼쳐지며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실감나는 글이다. 한 번 잡으면 마지막 장까지 놓지 못하고 단숨에 읽게 하는
재미와 감동을 부족함 없이 갖추었다. 누가 봐도 부족한 마이너리그의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환경, 교육, 농촌, 실업, 정치,경제, 사회… 세상의 모든 문제를
넌지시 들춰내며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그러나 그 안에 세상을 향한 따스한 시선과 희망을 놓지 않는다.
한 해를 보내며 가슴 뿌듯하게 읽은 멋진 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읽고 한 가지 밖에 서 있는 꼴찌들의 삶, 바로 우리들의 삶을
보듬고 응원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