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일관 던지고, 쓸고, 닦는 것뿐. 파이팅할 의지를 한순간의 비질로 말끔히 없애 버린다. 보면 볼수록 힘이 쪽쪽 빠진다. <본문 p28>
차을하에게 ‘컬링’은 동계올림픽 정식 종목답지 않았다. 오히려 올림픽 정신에 정면으로 저항하고 있는 어떤 집단의 몸부림처럼 혼자만 딴짓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하는 생각.
그렇게 까맣게 잊혔던 컬링이 불쑥 차을하 인생 원 안으로 쏙 들어와버렸다.
평범한 고등학생이던 차을하는 ‘제2의 김연아’라 불리는 피겨 유망주 여동생을 둔 덕분(?)에 대전에서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된다.
재능을 가진 동생 연화에 비해 어느것에도 흥미도, 재능도 없는 그저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지각한 벌로 복도청소 를 하고 있던 차을하에게 난데없이 나타난 비쩍 마른 몸에 딱 멸치처럼 긴 며루치 서인용과 엄청난 덩치와 포스는 지닌 산적 강산에 의해 컬링 팀에 스카우트가 된다.
컬링? 파마머리가 웬 말이냐며 알지도 못했던 스포츠였지만 스톤이 원 안으로 쏙 들어가듯이 컬링의 세계로 점차 빠져드는데…
그저 국내 컬링 대회에 한번 나가 보겠다고 모인 이들, 단순히 공부 외에 딴짓이 하고 싶었던 걸까 싶었지만
처음 컬링을 시작한 후 팥죽색 멍이 들고, 파스 냄새를 솔솔 풍기던 차을하의 엉덩이는 어느새 차가운 빙판 위 훈훈하게 피어나는 우정의 열기를 느끼게 된다.
‘그냥, 컬링’ 팀의 목표는 전국 컬링 대회에 정식 출전하는 것. 강원도 감자밭에서 벌어지는 이들의 처절한 전지훈련은 코믹하면서도 눈끝이 아리기도 하다.
(이 장면에서 영화 ‘국가 대표’가 생각나던지.)
다짜고짜 폭력을 행사하는 폭력교사 학주와 아이들 말을 전혀 믿지 않는 담임, 돈 없고 빽 없고 부모도 없는 강산을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희생양으로 만든 민중이 지팡이라는 말이 무색한 경찰과 학교.
“법이란 게 말이야, 힘없는 사람이 만든 게 아니라 힘 있는 사람들이 만든 거거든. 너희도 조금은 눈치챘겠지만. 그게 세상이야.” <본문 p241>
추리닝의 말에 뒤통수를 맞은 듯 실망 가득했지만 어른들의 나쁜 세상과 타협도 합의도 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힘으로 힘차게 세상의 법칙에 정면 승부하는 아이들의 반짝이는 에너지를 발견하기도 한다.
컬링으로 모인 이들은 하나같이 다른 개성과 다른 아픔을 지니고 있다.
왕따의 아픔을 꼭꼭 숨기고 있는가 하면 가난과 집나간 엄마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이 가득차 있기도 하다.
경쟁 사회에서 1군 선수보다 2군 선수에 더 가까운 이들은 폼 안나고, 답 안나오는 청소년처럼 보이기도 한다.
있는 듯 없는 듯 주목받지 못하는, 화려한 이력이나 수식어가 붙지 않는 이들이 하필이면 느리고 폼 안나는 빙상 스포츠 컬링일까?
“왜 하는 거냐, 컬링?”
“숨통이 툭 트이더라. 왠지 모르지만, 그냥.” <본문 p274>
야구나 축구도 하닌 하다못해 이목을 이끌 수 있는 인기있는 스포츠나 돈이 되는 스포츠가 아닌 비인기 종목 컬링일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전혀 중요치 않은 일이다. 그래도 우리는 하고 있다, 컬링. 이 어둠 속, 혼자가 아니라서 좋다. 달려간다. 함께하기 위해서, 아마도 그래서 하는 것이다. 컬링. 우리는 하고 있다. <본문 p277>
시종 쓸고, 닦고, 열심히 비질을 하지만 화려한 기술도, 관중의 환호도 없는 올림픽 정식 종목 같지 않은 스포츠 컬링으로 아직 깨어나지 않은 세상앞에서 씩씩하게 정면 승부를 하기 위해 달려들고 있는 것이다.
작전과 기술은 좀 부족하지만 팀워크만은 최고인 그냥 컬링팀. 저 청춘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