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센닥의 색다른 그림책

시리즈 비룡소의 그림동화 217 | 글, 그림 모리스 센닥 | 옮김 김경미
연령 6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1년 12월 2일 | 정가 9,000원
수상/추천 내셔널 북 어워드 외 4건

어떤 내용의 이야기를 쓰느냐에 따라 그림풍도 달라진다는 모리스 센닥의 그림책답게 

‘깊은 밤 부엌에서’, ‘괴물들이 사는 나라’와는 전혀 다른 풍의 그림이 나를 반긴다.

모리스 샌닥이 그렸다는 사실을 모르고 봤다면, 전혀 다른 작가의 작품이라 여겼을 것이다.

 

이 책은 미국의 유명한 비행사 찰스 린드버그의 아들이 집에서 유괴되었다가

결국은 주검으로 돌아온 참혹하고 안타까운 사건을 접한 모리스 샌닥이

린드버그의 아들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생계를 위해 배를 타고 멀리 떠나는 아빠,

그런 아빠를 기다리며 실의에 빠져 아기에게 무신경해져버린 엄마,

이런 엄마를 대신해 동생을 돌봐야 하는 아이다가

이 책의 주인공이다.

 

나팔 불기를 좋아하던 아이다는

무심한 엄마를 대신해 동생을 보다 지쳤는지

한눈을 팔게 되고, 그 순간을 기다리던 고블린에 의해 동생은 납치를 당한다.

 

고블린은 잉글랜드의 신화에서 추한 난쟁이의 모습을 한 심술궂은 정령이다.

숲이나 동굴에 산다고 하며, 어린이와 말을 좋아하고, 갈기를 빗거나 나쁜 어린이를 잡아간다고 믿었다.

옛날에 유모들은 “고블린이 잡아먹으러 왔다”라고 하며 어린이를 재웠다고 한다. 

 

엄마처럼이나 무표정한 얼음아기에게 사랑한다를 속삭이던 아이다는

자신이 고블린에게 속을 것을 알고 동생을 찾아 나선다.

이때 챙겨가는 것이 엄마의 커다란 노란 비옷과 나팔이다.

 

창문을 뒤로 나가는 바람에 고블린의 동굴도 못 보고 지나치자

바다 멀리 있던 아빠가 노래를 불러 고블린이 있는 곳을 알려주고

나팔을 연주해 고블린을 잡고, 동생의 결혼식도 막으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드디어 고블린의 소굴로 뛰어든 아이다는 나팔을 불어

고블린의 기분을 좋게 해준다.

처음에 칙칙한 보랏빛 망토를 뒤집어 쓰고 있던 시커먼 고블린들은

어느새 동생 또래의 아기들이 되어  아이다의 나팔 소리에 맞춰 춤을 춘다.

어쩌면 이 아기들 가운데 린드버그의 아들 모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기가 된 고블린은 유괴를 당해 목숨을 잃은 어린 영혼을 상징하는 존재로 보여진다.

 

신나게 춤추는 고만고만한 아이들 가운데

유일하게 알껍질 위에 가만 앉아있는 아기를 발견하는데,

그 아기가 바로 아이다의 동생이었다.

그런데 요기에  웬 뜬금없는 알껍질?

이 부분에서 난 데미안에 나온 한 구절이 떠오른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고블린이 아기로 변한 순간부터 그림에 알껍질이 나오기 시작한다.

알껍질은 뭔가 한계를 넘어선 존재를 상징하는 그 무엇이다.

유괴의 아픔이라는 알껍질 속에 자신을 꽁꽁 가둬두었던 아기들이

아이다의 나팔소리와 엄마의 정을 느끼게 해주는 황금빛 비옷에 감싸여

불안과 걱정에 휩싸인 알껍질을 깨고 나온 것을 말하는 건 아닐까?

 

고블린이 그렇게 춤의 물결 속에 빠져있는 동안

아이다는 알껍질 속에 얌전히 앉아 박수를 치고 있던 동생을 데리고

무사히 탈출한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보니

엄마는 아빠에게서 온 편지를 들고 즐거워하고 있다.

아빠가 떠난 뒤 처음으로 생기에 넘친 모습이다.

자신의 아이가 유괴되었다가 겨우 구출되어 돌아왔다는 사실도 모른 채

즐거워하는 엄마의 모습이 왠지 얄밉지만

그러나 중요한 건 이제 동생은 안전해졌다는 것이다.

아빠가 돌아오실 때까지 한동안은 언니의 보살핌이 필요하겠지만

아이다는 이제 잘해낼 것이다.

 

책을 읽고보니,

모리스 센닥의 그림책이 지닌 공통점이 보인다.

주인공이 어디론가 여행을 떠난다는 점, 부모의 관심을 벗어나 있다는 점.

그림톤은 달라졌어도 작가의 생각하는 범위는 비슷함을 반증해준다.

 

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은 딸에게 책 읽은 소감을 물었다.

그런데 나보다 책내용을 잘 짚어내돈 딸은

이 책에 대해서만은 도대체 뭔 소린지 모르겠다고 한다.–;;

글이 몇줄 안 되는 짧은 그림책이지만

그 안에 이중삼중의 의미가 녹아있는 거라 이해가 쉽지 않았으리라.

초등 고학년은 되어야하고, 엄마나 선생님의 지도가 있어야 제대로 이해가능한 그림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