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언덕, 르완다 이야기

시리즈 블루픽션 66 | 한나 얀젠 | 옮김 박종대
연령 14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2년 8월 20일 | 정가 13,000원

중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호텔 르완다라는 영화를 보여주고, 잘 쓴 감상문을 뽑아 상을 준 적이 있었다. 그때 르완다의 분쟁에 대해 잠깐 관심을 가졌지만, 곧 잊어버리고 말았다.

3차 미션 도서로 이 책을 받아든 뒤에야 그 사실이 다시금 기억이 났다.

 

옛날에 본 호텔 르완다는 한 호텔 지배인이 분쟁으로 생긴 난민을 호텔에 피난시키고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라면, ‘천개의 언덕은 전적으로 학살당하는 자의 입장에서 글을 써내려 갔다. 주인공인 잔(또는 데데)는 르완다 소수민족 투치족 출신의 8살짜리 여자아이다. 사립학교의 교사인 부모님, 동생과 잘 놀아주는 오빠, 얄밉지만 귀여운 여동생과 함께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았던 이 아이는 자신의 생일 직후 일어난 대학살으로 온 가족을 잃는다. 오빠는 자신이 보는 앞에서 죽고, 함께 도망가던 아빠는 어디론가 잡혀간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 잔에게 잔뜩 감정이입이 되었다. 그 애가 갈대밭에 숨어 있다 들켰을 땐 나도 조마조마했고, 폐허가 된 자신의 옛 집 마당에 열린 열매는 아무렇지 않게 따먹는 병사를 보며 느꼈을 분노도 함께 느꼈다. 그런 점에서 책이 끌어내는 흡입력은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 책은 비단 작가의 상상에 의한 허구가 아닌, 실화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작가인 한나 얀젠은 독일인으로, 세계 각지의 분쟁지역에서 온 아이들을 14명 입양해 가정을 꾸리고 있다. 주인공 도 그 아이들 중 한명이다. 이야기는 크게 총 3부로 나뉘어져 있고, 그 안에 여러 개의 소제목들을 두는데, 소제목이 새로 시작할 때마다 소설 속 이야기가 나오기 전, 누군가가 잔에게 보내는 편지가 실려 있다. 이 편지가 바로 작가가 입양한 딸 잔에게 보내는 글이다. 이 짧은 글들을 통해 구출된 후의 잔의 회복기를 볼 수 있다. 깊은 상처를 받은 딸을 다시금 일어날 수 있게 노력하고,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이 너무나 잘 드러나 감동을 주는 부분이었다.

그렇지만 잔의 아픔은 아물어가고 있다는 작가의 귀뜸에도 글을 읽는 내내 쓰린 마음을 달랠 수 없었다. 리뷰라서 좋은 말만 쓰고 싶어서가 아니라, 정말 나도 모르게 이야기에 몰입되어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잔은 근본적으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을 깨닫고 구역질이 났다. 세상은 그저 위치만 거꾸로 바뀌었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고, 부자가 빈털터리가 되었다. 그리고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모두 자신의 이익만 챙겼다.’

당하기만 하고 있던 투치족이 반란군을 만들어 진격해올 때, 나도 잔이 느낀 안도감을 함께 느꼈다. 동시에 결국 폐허가 된 집의 열매를 따먹는 도둑또한 반란군인 것을 알았을 때 나도 화가 났고, 잔의 행동이 백번 이해가 갔다.

 

십일 동안 백만명이 죽었다. 그 죽음의 소용돌이 속에 가족을 몽땅 잃고 홀로 살아남은 한 소녀의 이야기였다. 이게 실화라는 사실이 끔찍하고, 이때 상처받은 모든 이들에게 별 볼일 없지만, 진심으로 위로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