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이면 왕눈이 아저씨라니….

시리즈 블루픽션 67 | 앤 파인 | 옮김 햇살과나무꾼
연령 12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2년 9월 22일 | 정가 9,000원

만약 내 엄마가 이혼을 하고 키티의 말처럼 ‘끔찍하고 징그럽고 느물느물하고 메스껍고 토할 것 같은’ 늙은 남자친구를 만나면 어떨까? 상상이 안 간다. 키티처럼 ‘그냥’ 싫을 것 같다.그 사람이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사춘기를 겪는 나나 키티에겐 세상 모든 게 짜증거리인데 그런 아저씨가 좋을 리가 있나.

키티의 같은 반 친구 헬렌의 엄마는 이혼을 했는데, 새 남자친구인 늙은 ‘두꺼비 신발 아저씨’와 결혼을 하려고 한다. 헬렌은 그 아저씨를 너무나도 싫어하고, 학교에 온 이후 내내 기분이 안 좋다. 그런 그녀를 달래주라는 의미로 루피 선생님은 헬렌과 친하지 않은(!) 키티를 파견한다. 왜 그랬을까? 정작 헬렌과 친한 애는 따로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런 일에 대해서는 키티가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키티는 헬렌을 위해 자신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키티의 엄마인 로잘린드의 새 남자친구는 쉰 살이 넘은 제럴드 포크너 아저씨이다. 그는 머리숱도 없고, 뚱뚱하고, 눈은 커다랗다. 그리고 키티가 관심 있어 하는 핵무기 반대 운동에는 관심도 없고 경제 신문을 읽고 전기세 걱정만 한다. 그러니 키티가 싫어하지. 나중에는 키티네 집에 눌러 살며 온갖 일에 간섭한다. 나라도 싫겠다. 갑자기 웬 아저씨가 평화롭던 가정에 침입했으니.

하지만 내가 보기에 키티가 그를 싫어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일단은 엄마가 너무 확 바뀌어 버렸다. 자기가 알던, 익숙하던 엄마가 아닌거다. 아저씨가 엄마를 뺏어갔다는 생각도 들고, 나는 죽도록 싫은 그 아저씨가 엄마를 이렇게 바꾸어 놔서 놀랍지만 그래서 더 화가 날 거다. 많이 속상했을거다. 엄마는 영원히 자기 편이라고 생각했을텐데 한 순간에 이렇게 되어버려서. 둘째로 키티만 빼고 다 아저씨를 좋아한다. 모두가 그를 좋아하고, 편안해하고, 필요로한다. 키티만 빼고. 그러면 마치 키티만 이상한 애 같고, 못된 애 같이 보일거다. 이때 사춘기 청소년들은 소외감을 느낀다. 나만 남들하고 다를 때. 나만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고 그 공동체 안에 끼지 못할 때. 얼마나 짜증나고 속상한지 알 것 같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모든 것의 시작이 그 제럴드 포크너 아저씨여서 키티는 싫은 거다. 그래서 괜히 심통도 부리고 아저씨의 심기도 건드린다.

다행인 것은 점차 키티가 아저씨가 있는 그 가정 안에서 점점 행복을 느낀다는 점이다. 아저씨가 키티를 도와 준 적도 몇 번 있다보니 이제는 아저씨가 있어도 예전만큼 이상해하지 않는다. 심지어 엄마와 아저씨가 싸워서 아저씨를 한 동안 못 봤을 때는 그를 그리워했다. 다시 돌아왔을 때는 그가 붙박이 가구같고, 둘이 결혼을 하더라도 아무렇지 않을 거라나. 참 다행이다. 모든 것이 다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었을텐데. 이렇게 상황이 끝나는 경우는 참 드물고, 정말 잘 끝나는 해피엔딩인 것 같다. 키티와 같은 상황에 있는 10대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 주고 싶다. 그들도 이렇게 끝마무리 지을 수 있을거라고 용기와 위로를 건네기 위해.

이야기를 되짚어 보면, 제럴드 아저씨는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니다. 단지 사춘기 소녀 키티의 삐뚤어진(?) 시선으로 봐서 그렇지. 그래서 문득 내가 어떤 사람을 죽도록 싫어하거나 짜증을 심하게 내는 이유도 그것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오직 한 가지의,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으로 문제들을 바라봐서. 그렇지 않으면 짜증을 낼 일이 많지 않고, 사람을 그렇게 미워할 이유도 없을 것 같다.그러면 참 살기 좋겠지.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문제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성인군자처럼 인내하면 그건 이미 애가 아닌 것 같다. 내가 아직 이러는 이유는 아직 애니까, 일종의 어리광을 피우는 거라고 볼 수 있다. 청소년들이 부릴 수 있는 어리광. 아무리 심술이 나 있고 심통을 부려도 우리의 어리광을 어른들이 잘 받아줬으면 좋겠다.

이 작가의 책은 이번에 처음 만나봤는데 참 마음에 든다. 얼핏 재클린 윌슨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지만 이 사람 특유의 섬세함과 부드러움은 따라갈 수 없는 것 같다. 재클린 윌슨처럼 이혼이나 핵무기 같은 무거운 주제들을 가볍게 녹여낸 점도 좋고 무엇보다 청소년의 심리를 이토록 섬세하고 생생하게 표현한 글은 처음 읽는다. 다른 책들은 작가가 어떻게 해서든 청소년처럼 보일려고 한 것 같은데 이책은 그냥 청소년의 심리를 가져다가 살만 붙여서 써낸 것 같다. 너무 진짜 같아서 책을 읽는 줄도 몰랐던 것(?)같다. 그러니까 그냥 빠져들어가 버렸다.